뇌제 이반은 왜 황태자인 자신의 아들을 죽여야만 했는가. 그 발단은 며느리의 옷차림 때문이었다. 중세 러시아의 여인들은 몸매를 드러내는 옷을 입지 않았다. 이로 인해 중세 러시아 여성의 복장은 넓고 자유로운 형식으로 되어 있었다. 겉옷은 허리띠를 매지 않는 대신 위에서 아래까지 빈틈없이 단추를 채웠다. 이 겉옷 속에 여성들은 아마포로 만든 것과 겉에는 실크로 만든 길고 넓은 상의를 입었다. 실내복이 이 의상 역시 몸매를 드러내지 않게 디자인되었음은 물론이다. 다만 겉옷과 다른 점은 허리와 가슴을 표시해 주는 띠를 사용한 점이다. 이 옷을 입고 외부에 나서는 것은 무례하다고 간주되었다.
1582년 11월 15일 이반 뇌제가 알렉산드로프Alexandrov 자유농민촌을 찾아 갔을 때 분만이 가까웠던 황태자비엘레나 쉐레메테바Yelena Sheremeteva가 속옷을 입은 채로 휴식을 취하다가 이반 뇌제를 맞이하였다. 이반 뇌제는 며느리가 분만일이 가까웠다는 사실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다면 그녀의 실책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반 뇌제는 자신이 며느리로부터 모욕을 당했다고 여겨 그녀를 때렸다. 이 소동에 황태자 이반Tsarevich Ivan Ivanovich이 끼어들면서 불운이 시작되었다. 황태자는 아내를 편들면서 아버지를 비난하였다. 이에 이성을 잃은 이반 뇌제는 들고 있던 기다란 지팡이로 아들 이반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런데 하필이면 관자놀이에 정통으로 맞아 버렸다. 황태자 이반은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버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였다. 이 소동으로 놀란 황태자비는 다음날 아이를 사산했고 황태자 이반 역시 황실의 회복을 염원하는 기도를 외면한 채 며칠 후-11월 19일- 사망하였다. 이반의 광기로 인해 러시아 황실은 한꺼번에 적법한 황태자 두 명을 잃어 버렸던 것이다.
뇌제 이반은 왜 황태자인 자신의 아들을 죽여야만 했는가. 그 발단은 며느리의 옷차림 때문이었다. 중세 러시아의 여인들은 몸매를 드러내는 옷을 입지 않았다. 이로 인해 중세 러시아 여성의 복장은 넓고 자유로운 형식으로 되어 있었다. 겉옷은 허리띠를 매지 않는 대신 위에서 아래까지 빈틈없이 단추를 채웠다. 이 겉옷 속에 여성들은 아마포로 만든 것과 겉에는 실크로 만든 길고 넓은 상의를 입었다. 실내복이 이 의상 역시 몸매를 드러내지 않게 디자인되었음은 물론이다. 다만 겉옷과 다른 점은 허리와 가슴을 표시해 주는 띠를 사용한 점이다. 이 옷을 입고 외부에 나서는 것은 무례하다고 간주되었다.
1582년 11월 15일 이반 뇌제가 알렉산드로프Alexandrov 자유농민촌을 찾아 갔을 때 분만이 가까웠던 황태자비엘레나 쉐레메테바Yelena Sheremeteva가 속옷을 입은 채로 휴식을 취하다가 이반 뇌제를 맞이하였다. 이반 뇌제는 며느리가 분만일이 가까웠다는 사실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다면 그녀의 실책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반 뇌제는 자신이 며느리로부터 모욕을 당했다고 여겨 그녀를 때렸다. 이 소동에 황태자 이반Tsarevich Ivan Ivanovich이 끼어들면서 불운이 시작되었다. 황태자는 아내를 편들면서 아버지를 비난하였다. 이에 이성을 잃은 이반 뇌제는 들고 있던 기다란 지팡이로 아들 이반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런데 하필이면 관자놀이에 정통으로 맞아 버렸다. 황태자 이반은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버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였다. 이 소동으로 놀란 황태자비는 다음날 아이를 사산했고 황태자 이반 역시 황실의 회복을 염원하는 기도를 외면한 채 며칠 후-11월 19일- 사망하였다. 이반의 광기로 인해 러시아 황실은 한꺼번에 적법한 황태자 두 명을 잃어 버렸던 것이다.
[@바부코리아]
이반이 유일한 왕위계승자는 아닙니다. 가장 사랑했던 아들이었죠. 그뒤에 즉위한 표도르도 이반4세 아들이에요.
아들과 관련해서 딱히 아는 건 없는데, 난폭한 이반4세가 일생에 부드러웠고 사랑햇던 사람이 딱 2명. 아내 아나스타샤와 아들 이반인데요. 아내 아나스타샤가 죽고나서 이반4세의 난폭한 성향이 불타올랐다고 합니다. 아나스타샤가 독살당했다고도 생각했고, 아나스타샤를 데려간 신은 잔인하다. 그러니 나도 잔인하게 행동하겠다 하면서 수많은 귀족을 숙청했죠.
그런데 나중에 아나스타샤의 묘를 보니, 기준치보다 높은 수은수치를 기록했습니다. 문제는 이반4세가 엄청난 수은중독이었습니다. (그 시절엔 수은을 영약으로 생각한건 동서 불문이었으니..) 수은을 먹기도 하고, 방안에서 계속 끓이기도 했는데..
아나스타샤의 묘에서 수은 수치가 높게 발견되것을 생각하면. 아나스타샤도 수은 중독이 죽음의 원인일 수 있고, 그 이유는 바로 수은중독이었던 이반4세의 행동에서 찾을 수 있겠죠.
결국 전 세계에서 오직 2명만을 사랑했던 폭군이, 그 사랑하는 사람 2명을 모두 잃은 건 바로 자기 자신 때문일수도 있으니..
Best Comment
백지에 점하나 붓으로 크게 찍고 십몇억하는게
왜 예술인지 평생 모를거같다 나는
뇌제 이반은 왜 황태자인 자신의 아들을 죽여야만 했는가. 그 발단은 며느리의 옷차림 때문이었다. 중세 러시아의 여인들은 몸매를 드러내는 옷을 입지 않았다. 이로 인해 중세 러시아 여성의 복장은 넓고 자유로운 형식으로 되어 있었다. 겉옷은 허리띠를 매지 않는 대신 위에서 아래까지 빈틈없이 단추를 채웠다. 이 겉옷 속에 여성들은 아마포로 만든 것과 겉에는 실크로 만든 길고 넓은 상의를 입었다. 실내복이 이 의상 역시 몸매를 드러내지 않게 디자인되었음은 물론이다. 다만 겉옷과 다른 점은 허리와 가슴을 표시해 주는 띠를 사용한 점이다. 이 옷을 입고 외부에 나서는 것은 무례하다고 간주되었다.
1582년 11월 15일 이반 뇌제가 알렉산드로프Alexandrov 자유농민촌을 찾아 갔을 때 분만이 가까웠던 황태자비엘레나 쉐레메테바Yelena Sheremeteva가 속옷을 입은 채로 휴식을 취하다가 이반 뇌제를 맞이하였다. 이반 뇌제는 며느리가 분만일이 가까웠다는 사실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다면 그녀의 실책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반 뇌제는 자신이 며느리로부터 모욕을 당했다고 여겨 그녀를 때렸다. 이 소동에 황태자 이반Tsarevich Ivan Ivanovich이 끼어들면서 불운이 시작되었다. 황태자는 아내를 편들면서 아버지를 비난하였다. 이에 이성을 잃은 이반 뇌제는 들고 있던 기다란 지팡이로 아들 이반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런데 하필이면 관자놀이에 정통으로 맞아 버렸다. 황태자 이반은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버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였다. 이 소동으로 놀란 황태자비는 다음날 아이를 사산했고 황태자 이반 역시 황실의 회복을 염원하는 기도를 외면한 채 며칠 후-11월 19일- 사망하였다. 이반의 광기로 인해 러시아 황실은 한꺼번에 적법한 황태자 두 명을 잃어 버렸던 것이다.
(지극히 내 주관적인 견해임)(소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