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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 수나라 전쟁

주성치 3 1175 3 0
1.png 고구려 - 수나라 전쟁

고대부터 이어져온 중국의 대외정책 철학.
1. 주변의 강한 국가들은 사전에 처리한다.
2. 만주에 통일국가를 두지 않는다.
가장 신경쓴 지역 만주.
"만주에 통일국가가 세워지면 반드시 침략해올 것이다."

2.png 고구려 - 수나라 전쟁

중앙아시아와 몽골의 유목민족들은 공격을 해도 정착을 하지 않지만
만주의 민족들은 정착해버린다고 한다.
만주가 중요한 이유
1. 현재도 그러한 중국 최대의 철광, 석탄 산지
2. 세계 4대 평원중 하나로 땅이 비옥한 만주평야
3. 몽골 유목민족의 말 공급의 최적지  

3.png 고구려 - 수나라 전쟁

고구려는 철이 풍부했다고 전해진다.
일반 보병에게도 철제 갑옷을 입힌 것
개마무사(중장갑기병)의 철 사용량을 감당한 것도 이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와 돌궐과 친하다는 명분으로 수나라는 고구려 공격을 감행한다. 

4.png 고구려 - 수나라 전쟁

수나라 문제의 1차 침공
너무 멀어서 자연 소멸한다. 가는데 6개월.

5.png 고구려 - 수나라 전쟁

아들 수나라 양제의 2차 침공
전쟁사에서 군사수를 부풀리는 경우가 많은데
수나라의 100만명은 동원된 인원의 명부가 남아있다고 한다.
전투병 28만 8천명, 치중병+병참병등 기타 병과병 약 70만
100만 대군은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최대 규모의 군대라고 한다.
아쉽게도 고구려의 인구와 군사의 수는 기록이 없다고 한다.

6.png 고구려 - 수나라 전쟁

1차 방어선으로 가려면 건너야 하는 강 요하.
진흙투성인 곳에서 고구려군은 수나라 선발대와 정면으로 붙는다.
수나라의 수 많은 장수들이 죽어나가고
첫 전투에서 고구려군이 승리한다.

8.png 고구려 - 수나라 전쟁
1차 방어선을 뚫기 위해 1차방어선에 있는 수많은 성들을 공격하지만
어느 성 하나 함락되는 곳이 없었다.
가장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곳은 요동성.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요동성 방어 성공의 원인을
두가지로 유추할 수 있다. 
1. 단결력
2. 복합궁

9.png 고구려 - 수나라 전쟁

1. 요동성은 3개월을 버텨낸다.
3개월은 대단히 중요한 숫자다.
수성을 하는 입장에서는 아군은 죽어가고 원군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적은 끝도 없이 밀려드니 심리적 공포감은 날이 갈 수록 커져간다.
더군다나 성벽 아래에 100만명이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은
고구려군에게도 공포였을 것이다.
고구려군은 3개월동안 단 한명도 도망치지 않았다.

2. 고구려군의 복합궁은 일반 활 사정거리의 두배에 이른다.
철을 다루는데 능숙했던 고구려는 화살촉도 잘 만들었는데
고구려의 화살촉은 길이가 긴것이 특징이다.
긴 화살촉은 갑옷을 뚫고 적군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7.png 고구려 - 수나라 전쟁


수나라 양제는 초조해진다.

수도를 비우고 왔을 뿐더러 돌아가는 시간도 6개월이 걸린다.

이에 수양제는 무리수를 둔다. 곧장 평양성으로 수군과 함께 진군한다.


11.png 고구려 - 수나라 전쟁

30만의 전투병력을 별동대로 보낸다. 

수군 사령관 내호아의 군대가 평양성에 도착해 기다리면 별동대와 함께

싸운다는 작전이었다.

역사상 유래 없는 보병으로 전격전을 한 수나라이다.


10.png 고구려 - 수나라 전쟁

100일치 보급품을 포함해 약 50KG의 군장을 지고 평양성 까지 걸어간다.

평지에서 살고 요동성까지 평지였던 수나라 병사들은 공황상태에 빠진다.

산넘어 산인 산지지형이 나오면서 무거운 무게를 버티지 못한 병사들은

밤에 지휘관 몰래 보급품과 무기를 버리고 평양성으로 간다.

어차피 보급은 수군에게 받으면 되니.


12.png 고구려 - 수나라 전쟁

평양성 코앞에 수나라 수군이 온 것을 본 고구려는 당황한다.

그러나 고구려의 영웅 을지문덕 장군은 병력을 둘로 나눈다.

압록강 상류, 대동강 하구

상당히 도박적인 수이다.

전세는 요동성, 평양성 둘중 하나만 함락되어도 지는 상황이 되었버렸다.


13.png 고구려 - 수나라 전쟁

을지문덕 장군은 공격해 오는 내호아의 수군에게 져주는 척 하며

평양성 안으로 끌어들인다.

평양성에 들어온 내호아의 수군은 비어있는평양 시가지를 보고

약탈을 하기 시작한다.

이때, 고구려의 태자(훗날 영류왕)는 기병500기를 이끌고

내호아의 수군을 학살하기 시작한다.

수군은 특성상 갑옷을 입지 않고 기병 500명이면 보병 1만도 상대한다고 한다.


14.png 고구려 - 수나라 전쟁

선박에서 항전하지 않고 바로 퇴각한 것으로 보아

내호아의 수군은 괴멸된 것으로 보고있다.

이때 별동대가 도착한다.


15.png 고구려 - 수나라 전쟁

평상성으로 가는 도중 우중문과 우문술은 의견을 달리하였으나

수군이 승전하고 있다는 보고가 계속해서 들어온다.

결국 별동대는 평양성으로 진군한다.

그리고 을지문덕 장군은 만족하고 돌아가라는 유명한 시를 써 주신다.


16.png 고구려 - 수나라 전쟁

물(水)로 공격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고 한다.

유추하건데 청천강을 건너는 수나라 군을

공격한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기술로 강을 막는 둑은 불가능 하고

만들었어도 최소 10년전에 전쟁을 예측하고 둑을 만들었어야 했다.


17.png 고구려 - 수나라 전쟁

별동대는 패닉상태에 빠졌고 국경까지 도망가는 수나라군을

공격했다고 한다.

30만의 병사중 살아남은 병사는 2700명으로 전해진다.


방탕하고 향락에 취한 폭군 양제는 다시 3차 공격을 시도하지만

각지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우문술의 아들 우문화급에게 목이 졸려 사망한다.


그후 중국에서는 이연(당고종)이 당나라를 세우고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황제, 가장 뛰어난 정치가, 가장 뛰어난 전략가인

아들 이세민(당태종)이 다시 고구려를 침략한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xxXHnQuL87k&t=184s

국방TV 토크멘터리 전쟁사

3 Comments
coway 2018.02.12 21:06  
역사과 정수기팔이로써 이런 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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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우유 2018.02.12 22:11  
저시대에 요동성 성벽이 30m라서 보병으론 못넘었다 카더라 ㅋ
게다가 양곡비축분이 몇십만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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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잡채 2018.02.17 21:36  
[@불량우유] 미친 30m? 콩주머니 던져도 죽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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