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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志 ep 9. 유비가 놓쳐버린 최고의 명장, 전예 P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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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예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는데, 둔영을 세우고 소똥과 말똥을 모아 태우는 기행을 벌입니다. 이민족들은 똥들이 불타는 걸 보고 전예가 그 위치에 그대로 있는 줄 알았으나...




전예가 수십리나 도망가고서야 알아채고, 분노한 선비족들은 추격해서 마성현에서 따라잡아 10겹으로 포위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정기(旌旗)를 세우고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며 보병과 기병을 거느리고 남문으로 나가는 척..




하다가 선비족이 남쪽에 몰려가니 북문으로 나와서 ​남문의 병력과 합세해서 공격!




비족들이 놀라서 활과 말을 버리고 달아나고, 전예가 20리를 추격해서 시체로 땅을 뒤덮는 대승리를 합니다.



이렇게 잔꾀의 대가의 면모를 보여주는 전예는 다음에는 맹장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오환왕 골진(骨進)이 전예에게 깝죽거리자 전예가 100여 기를 이끌고 나가서는 골진의 부(部), 본진으로 돌격합니다. 골진이 무슨 생각인지 전예를 맞이하자 그를 베어버리고는 그저 골진의 동생에게 오환왕을 대신하게 하고는 유유히 빠져나옵니다.


그 뒤로 전예의 위엄에 이민족들은 쫄았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전예용인술도 나오는데, 고애(高艾)라는 산적이 설치니까 소리(아까 나온 소리선비족)를 보내서 고애의 목을 베어 황도로 보내고, 조정에서는 



공로를 칭찬하며 장락정후(長樂亭侯)에 봉합니다.


후 오환교위로서 무려 9년 동안 전예는 북방의 이민족들을 이후로도 이간질시키고 위나라에 의지하도록 막후공작을 계속하는데, 이를 완전히 끝내기도 전에 유주자사 왕웅의 일당이 왕웅에게 그 자리를 주려고 전예를 헐뜯자, 조정에서는 전예를 여남태수(汝南太守)로 임명하고 진이장군(殄夷將軍)에 봉합니다.( 음 승진인가?)



놀랍게도 전예는 다음 등장에서는 예지력 만땅의 신통방통한 모습도 보여주는데...


태화 말​1​, 요동의 공손연이 반란을 일으키자, 중령군 양기의 추천으로 전예가 진압군 사령관으로 출격합니다. 황제는 전예에게 청주제군사라는 직함과 부절까지 주며 일을 맡겼는데, 마침 오나라가 위나라의 배후를 견제함과 군마구입의 목적을 가지고 공손연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합니다.


전예는 오나라 군선이 이제 연말이라 바람이 세차므로 풍랑에 표류할까 두려워하며 동쪽으로는 연안항해를 할 해안가가 없으므로 성산(成山),산동반도의 동쪽 끝의 산으로 올 것이라고 예측하고 그냥 대기합니다.


제장들은 텅 빈 산동반도에서 오나라 배를 기다리는 전예를 미쳤다며 비웃었는데...




오나라 배들이 산에 부딪혀 침몰하고 사람들이 해안으로 떠밀려오자 사로잡습니다.





그러나.............


전예가 청주제군사로 부임하면서, 청주자사 정희(程喜)와는 사사건건 충돌이 많았다고 합니다. 황제인 조예가 명주(진주)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몰래 상주하기를,


“전예에게 비록 전공(戰功)이 있으나 금령(禁令)이 느슨하니, 노획한 기장(器仗,무기), 진주, 금이 매우 많았으나 모두 (군사들에게) 흩어주었고 관(官)에 납부하지 않았습니다.” 



황제에게 진상할 것을 마치 명령을 어기고 아랫사람들에게 준 것처럼 묘사해 모함합니다. 괘씸죄가 통했는지 전예의 이름이 공로에서 삭제되는 불운을 겪습니다.




시간이 흘러 234년 5월, 제갈량이 마지막 5차 북벌을 할 때, 손권이 자칭 10만 대군을 이끌고 합비 신성으로 쳐들어오는데...


이번에는 전예가 제대로 전략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양파같은 남자..)


정동장군(征東將軍) 만총(滿寵)이 구원하려고 하니까 이렇게 말합니다.


“적(賊)이 모든 부대로 대거 출군한 것은 단지 작은 이익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신성(新城)을 담보로 하여 (우리의) 대군(大軍)을 끌어들이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공성(攻城)하도록 내버려두어 그 예기를 꺾어야 마땅하고 그들과 더불어 (적극적으로) 쟁봉(爭鋒)해서는 안 됩니다. 성이 함락되지 않아 적군은 필시 파태(罷怠,피로하고 나태함)해질 것이니 파태(罷怠)해진 연후에 적을 공격하면 크게 이길 수 있습니다." 



여기에 심지어 후속대책도 내놓는데,



"만약 적(賊)이 우리의 그런 계책을 알아챈다면 필시 공성(攻城)하지 않고 형세상 스스로 달아날 것입니다. (그럴때) 만약 곧바로 진병(進兵)하면 적의 계책에 그대로 빠져드는 것입니다. 또한 대군이 서로 상대할 때는 응당 (적군이 우리의 계책을) 알기 어렵도록 해야하며 자획(自畫,스스로 계획을 꾸밈?)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오군은 예측한대로 도망갑니다.




정시 초​2​, 전예는 사지절, 호흉노중랑장, 진위장군, 병주자사라는 긴~ 직위를 받았습니다.


나중에 위위​3​가 되었다가 노령을 이유로 여러 번 사직을 청했지만 사마의가 사직서를 수리해주지 않는데요. 





전예가 심지어 


“나이가 70을 넘어 벼슬을 차지하고 있으니 이는 비유컨대 종이 울리고 물시계의 물이 다하였는데도 그치지 않고 밤길을 나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죄인(罪人)(의 행동)입니다.” 


라고 까지 하자 태중대부(太中大夫)로 임명하는데, 결국 252년 82세로 사망합니다.


(그래도 사마의는 251년에 죽었으니 속으로 고소해 했을라나?)


이렇게 그의 관직 생활에 대한 기록은 끝이지만, 늘 청렴하고 검소하게 생활했다고 합니다. 포상을 받으면 모두 휘하 장졸들에게 나누어주고, 이민족들이 선물을 보내면 죄다 장부에 적어서 관청에 보관할 뿐 개인적으로 유용하지 않아서 그와 맞지 않는 사람들도 모두 전예의 절의를 높게 여겼다고 합니다. 그에 관련된 일화도 3개나 있어서 존경을 자아내게 합니다.


1. <위략>에는  전예가 파직하고 돌아가 (기주 위군) 위현(魏縣)에 머물렀다고 하는데, 여남(汝南)에서 건보(健步,걸음이 빠른 자)를 정북(장군)에게 보냈는데 그가 전예의 옛 은혜에 감사하여 그에게 들러 인사했다고 합니다. 전예가 그를 위해 닭을 잡고 기장밥을 해주고는 길가에까지 전송하며 그에게 말하기를,


“파로(罷老,피곤하고 쇠로함)한데도 네가 힘들게 들렀구나. 도움될 바도 없는데 어찌 그랬는가?” 

건보(健步)는 그가 가난하고 쇠약해진 것을 가엾게 여겨 눈물을 흘린 뒤에 떠났고 (여남으로) 돌아와 (전예의) 옛 관리와 백성들에게 이에 관해 말하였다. 여남(汝南)에서 재물(과 비단) 수천 필을 갖추어서 사람을 보내 전예에게 주었으나 전예는 일체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재물과 비단 수천 필이면 곡식으로 못해도 수만 섬은 될 테고, 그 정도면 어지간한 태수 1년 봉록의 몇십 배에 해당하는 거금입니다.)



2. 전예가 죽을 때가 되자 아내에게 


“나를 꼭 서문표(西門豹)의 사당 곁에 묻어 주시오.”


이렇게 부탁하자 아내가 물어보는데 

“서문표(西門豹)는 옛날의 신인(神人)이니 어찌 그의 곁에 묻을 수 있습니까?” 

그러자 전예가 답하기를,

“서문표의 이행(履行,행적)이 나와 적등(敵等,대등)하였으니 죽은 자에게 영(靈)이 있다면 필시 나와 친할 것이오.” 


연 자신의 삶의 행적이 과거의 위인과 비슷했다고 느꼈는지 그렇게 살기를 바라며 살아온 자신에 대한 평가인지는 몰라도 정말로 서문표의 사당 옆에 묻혔다고 합니다.



3. 역시 <위략>에 보면, 소리 선비가 예전에 소나 말을 선물했는데 전예가 그저 관청에 보내자, 몰래 금 30근을 품고가서 


“좌우 사람들을 물러나게 하길 바랍니다. 제가 할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나서


“제가 공(公)이 가난한 것을 보았으므로 전후로 공(公)에게 소와 말을 보냈으나 공(公)은 곧바로 관(官)으로 보내버렸습니다. 이제 몰래 이것(→금)을 공에게 올리니 집안의 재산으로 삼으십시오.” 


전예는 일단 선물을 받고 그를 돌려보내고는 역시 바깥에 이를 맡기고 조정에 보고합니다.


조정에서는 


“옛날에 위강(魏絳)은 가슴을 열어(開懷) 융(戎)의 뇌물(예물)을 받았는데 이제 경(卿)은 소매를 들어 적(狄)의 금을 받았으니 짐은 이를 매우 가상히 여기노라.”

 



이러면서 비단 500필을 하사합니다. 전예는 심지어 그것도 절반은 소부에 간직하고, 나머지 절반은 금을 준 이민족이 오자 그에게 또 주었다고 합니다.. 전예 당신은 도덕책...



이렇듯 무예도 뛰어나고, 전략에도 밝으며 처신도 잘하고 청렴한 이미지까지 가진 명장 전예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1. 태화 말: 227~232년 간의 연호의 말기


2. 정시 초: 240~248년 초기


3. 위위: 황실과 궁성 수비를 담당하는 사무직으로 구경(九卿)에 하나에 속하는 문관 최고위직

9 Comments
스티페 2018.03.26 11:25  
사기캐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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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at 2018.03.26 12:28  
[@스티페] 보통 무력이든 지략이든 행정이든 직언이든 한 가지만 잘하는데 전예는 4가지 다 잘하면서 처신도 잘한 관리의 모범 중의 모범 케이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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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우유 2018.03.26 11:27  
능력자에 처신까지 잘하는 청렴한관리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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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at 2018.03.26 15:14  
[@불량우유] 사마의 사망전까지도 현역이었으니 거의 60년을 활동한 셈인거죠. 말년에 위위로 활동한 것도 비록 작은 가능성이지만 황제가 친정이라도 하거나 전선에 내보낼 경험많은 숙장이 부재중일 경우 대신 나갈 수도 있는 보직이기 때문에 궁성수비 사무직1 의 수준이 아니라 현대로 치면 예비역 참모총장겸 청와대 보안실장이라고 봐도 되겠습니다.
한무쇠 2018.03.26 17:09  
정성 가득한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ㅎㅎ
전예를 주인공으로 삼국지 드라마 나오면 재밌을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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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바휘바 2018.03.26 18:57  
삼국지 게임하면
전예가 뒤늦게 평가된인물이라
삼국지8 때부터인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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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lqkfsusdl 2018.03.26 20:30  
늘 꿀잼으로 잘 읽고 있습니다.
삼국지 인물들의 생애최후에 대해선 사료들이 많이 없는가요?
난 항상 생애 최후가 어땠는지 당대를 호령하고 천하를 손아귀에 쥐었어도 삶의 마지막이 어땠는지가 궁금하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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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at 2018.03.26 21:33  
[@tlqkfsusdl] 자세히 서술된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보통 최후가 안좋은 경우거나 편한 죽음을 맞지 못한 위인들입니다. 일전에 리뷰한 심배가 대표적이죠. 

그 외 인물들은 언제 죽었다고만 나오거나 생몰년도도 없는 경우가 태반이라 어느정도는 추측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저번에 리뷰한 법정은 한중공방전 후 1년만에 사망한 기록으로 볼 때, 지병이 있었거나 과로로 갑자기 죽었다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고, 하후무의 경우는 조용히 살았는지 아니면 기록이 유실된 건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조예 등극 후의 활동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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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느 2018.03.27 03:00  
가후도 기다리겠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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