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 결과가 끼친 영향
러일전쟁의 결과는 엄청난 여파를 남겼다. 황인이 백인에게 승리한 전쟁이라는 것 자체가 당시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던 것.
중국에서는 이미 청일전쟁으로 인해 일본에 대해 재평가하는 시각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러일전쟁은 뒤이어 그 영향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 때 대표적으로 영향을 받은 인물이 바로 쑨원이다. 물론 당시만 해도 량치차오처럼 벌써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성에 대해 회의하고 돌아선 인물이 있기는 했지만 다수의 아시아인들이 일본을 추종하는 계기가 되었고 한국 역시 친일파를 대거 양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베트남에서도 일본에 대한 시각이 매우 좋아졌다. 일례로 190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베트남 독립 운동의 주축이 된 인물 중 한 명인 판쩌우찐은 러일전쟁을 위해 베트남 근해를 지나가는 발트 함대의 위용을 지켜보았고, 그 발트 함대가 일본군에게 무너졌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한다. 이후 베트남 민족 운동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자는 동유 운동이 일어나고 일본의 게이오 유숙을 본딴 통킹 의숙이 세워지는 등 한동안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된다.
"일본이 러시아에게 승리한 그날로부터 전 아시아의 민족은 유럽을 타도하고자 독립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이집트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고, 페르시아나 터키에서도 독립운동이 일어났으며, 아프가니스탄이나 아랍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고 인도 사람도 이 시기부터 독립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이런 이유로 일본이 러시아에 승리한 결과로서 아시아 민족의 독립이라는 커다란 희망이 생긴 것입니다" (1924, 쑨원)
인도의 독립운동가 발 간다하르 틸라크도 러일전쟁을 사례로 들면서 사람들을 고무했고 미얀마의 국가주석이 된 바모도 러일전쟁 승리의 감동에 대해 "버마인은 영국의 통치 하에 들어선 이래 처음으로 아시아 한 국민의 위대함에 대해서 들은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자부심을 주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 승리는 아시아가 자각하는 발단이 되었다"고 말했어.
베트남에서는 "일본이 황인의 맏형격이 되어서 백인들로부터 다른 아시아인들을 이끌어야 한다" 는 주장까지 나와.
심지어 이집트에서도 <떠오르는 태양>이란 책이 발간되면서 일본처럼 아랍인들도 각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