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정신이 육체의 고통을 넘어선 사례
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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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31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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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상상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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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바오다이를 내쫓고 남베트남의 대통령이 된 응오딘지엠(Ngô Ðình Diệm)이 불교 탄압 정책과 독재 정치를 펴기 시작했고 친인척들이 대규모로 비리를 저지르면서 남베트남의 형세가 다시 막장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불교 탄압 정책에 맞서서 저항하던 승려들을 무차별 진압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틱꽝득은 이에 맞서서 소신공양을 하기로 결심했고 1963년 6월 11일 불교 승려들의 침묵 가두시위가 있었던 당시에 틱꽝득 스님이 주변 승려들의 도움을 받아서 사이공에서 가부좌를 틀고 소신공양을 감행하였다. 그리고 사진과 영상이 특보에 호외, 속보를 타고 전 베트남은 물론 전 세계로 일파만파 전파되었다.[3] 소신공양 당시 67세(세는 나이), 법랍[4] 47년이었다.
2. 소신공양[편집]
틱꽝득의 소신공양 사진 충격적일 수 있으므로 클릭 시 주의[5] 사진과 영상이 전 세계로 보도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신공양의 사례일 것이다. 해당 소신공양 장면을 촬영한 미국의 사진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맬컴 브라운(Malcolm Browne)은 이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하였다.
틱꽝득의 소신공양 영상 충격적일 수 있으므로 클릭 시 주의(성인 인증 필요)
사실 이 행위는 정권에 저항한 분신자살의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끝까지 가부좌를 풀지 않고 비명조차 지르지 않는 틱꽝득의 행동은 종교적인 열망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이 느끼는 고통 중 최고 순위가 작열통(몸이 불에 탈 때 느끼는 고통)인데, 죽음에 이를 때까지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태연하게 견딘다는 사실은 인간을 초월한 인내력이 아니면 불가능한 행위다. 문지방에 발가락 끝을 부딪혔을 때에도 저절로 비명이 나오고 얼굴이 찌푸려지는데, 온몸이 지글지글 불타고 있는 상태에서 신음 한 번을 내지 않고 얼굴을 태연하게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소신공양을 감행하기 이전에 제자들에게 "앞으로 넘어지면 흉한 것이니 해외로 피신해야 하며 뒤로 쓰러지면 투쟁이 승리할 것"[6]이라는 말을 남겼다. 동영상을 보면 소신공양 중에 불길이 거세지자 쓰러질 듯이 앞으로 기울어졌지만 마지막 혼신의 힘을 쏟고 다시 가부좌 자세로 정좌하며 결국은 뒤로 쓰러진다. 이건 정말 자유에 대한 갈망이 낳은 기적적인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근육은 구부리는 근육이 펴는 근육보다 많기 때문에 소사체는 근육들이 수축해서 자연스레 안으로 오그라들기 때문이다. 표현조차 하기 힘든 고통 속에서 최후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서 몸을 펴고 열반했다. [7] 이 엄청난 광경에 경찰들도 넋을 잃고 멍하게 서서 스님을 바라보았고 주위의 승려들은 틱꽝득에게 일제히 절을 올렸다.
소신공양이 끝난 후 그의 법체는 다시 한번 소각로에 넣어져 8시간 동안 화장(火葬) 되지만 그의 심장은 전혀 타지 않았다고 하며[8] 이후 남베트남 정부에서 파견된 비밀경찰이 황산을 뿌려 훼손을 시도했으나 이마저도 실패하며 금속 용기에 구리줄로 봉인하여 스웨덴 은행에 맡겨졌다가 이후 하노이 국립 은행에서 소장 중이라고 한다.
- 출처 : 꺼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