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로마 제국 그 자체가 되버린 남자 "내가 로마다 , 나는 '카이사르'다." -6-
뒤로 보이는 로마의 개선문
로마로 돌아론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개선식. 로마 시민들 모두가 팡파레를 불고 꽃가루를 날리며 영웅의 개선을 환영했다.
라고 믿고 싶지만..
실제 로마개선식의 전통은 부하들이 개선장군의 옆에 쭉 도열해서 신체적 치부를 건드리는 야유 세례를
퍼붓는것이 전통이였다고 한다.
개선장군의 오만함을 경계하기 위해, 가졌던 일종의 야자타임
그날 만큼은 아무리 심한 말을 해도 용납되는, 그런 세레머니였다.
(페..펨붕쿤...)
'이것'이 없는 것이 콤플렉스였던 카이사르에게
카이사르의 부하들은 신나서 이런 노래를 부르며 카이사르를 놀린다.
그 가사는 대략
" 시민이시여 마누라를 숨기시오 ,대머리 난봉꾼이 지나간다오
"그대 마누라들이 카이사르에게 바친 돈은 전부 갈리아 창녀들의 주머니로 들어갔다오 "
그 노래를 들으면서도 웃으며 지나간 카이사르는 나중에 부하들에게
'야 아무리 그래도 대머리 난봉꾼은 쫌 아니지 않냐?' 라며 빈정 상해해서 부하들이 깜짝 놀라 얼었다는 일화가...
개선장군으로써 당당히 개선한 카이사르, 모든 로마의 시민이 그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카이사르의 로마 입성 후 첫 마디는 고함으로 시작 되었다.
"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i, vidi, vici) "
로마 시민과 그의 부하 장군들에게서 로마전역으로 환호하는 함성소리가 울려 퍼졌다.
카이사르는 인류 최초로 동전에 자신의 얼굴을 새긴다.
자, 여기서 카이사르의 특별함에 대해서 한번더 언급 해보기로 하자.
알렉산더와 피로스를 벤치마킹 했던 한니발.
그는 최고의 군인이었기 때문에 다들 한니발을 벤치마킹했는데..
한니발은 전형적인 군인 스타일이라 정치력은 없었다.
카이사르는 여기서 더 나아가 한니발에게 없는 것까지 만드려고 노력했다.
이것은 정말 본인의 노력의 결과이다.
심지어 젊었을때 유배지에서 도망쳐 로마로 돌아 올 때에도, 보통 사람이었으면 신나서 로마로 곧장 올텐데
카이사르는 당대 최고의 웅변가 였던 키케로의 스승 몰론을 찾아간다. (전역 날에 재수학원 등록하는꼴 ㅇㅈ?)
배우려고.
카이사르는 여기서 몇년간 수사학(변론,설득,연설 등의 기술)을 배운다.
그래서 후에 로마로 돌아와 키케로 다음의 웅변가라는 극찬을 듣는다.
그리고 정치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을 파악하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났던 카이사르.
" 시민들의 무기로 적을 정복하고
적의 돈으로 시민들을 사로잡고 정복했다."
폼페이우스는 적에게 약탈한 재물을 부하들에게 나눠 주고 본인은 검소하게 살았다.
반면 , 본인의 야망을 사람들에게 전혀 숨기지 않았던 카이사르
"나는 엄청난 바람둥이에 사치꾼에 꿈은 저 위에 가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말하고는 병사들에게 아낌없이 재물을 나눠 준다.
그러니 더 고마워 하는 사람들......
'저런 야망있는 사람이 우리에게 이렇게 잘해주다니....'
그리고 그 순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작은 생각이 하나 꿈틀대기 시작한다.
' 저런 사람이 로마를 지배한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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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자에게는 영예를 양보하고 약자에게는 삶의 필수적인 것을 양보하라. "
- 줄리우스 시저
이 카이사르는 술수만 뛰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로마의 내일을 준비했던 미래 지향적인 리더' 였다.
카이사르는 사비로 포룸을 건설,발전 시킨다.
개인 재산으로 건축물을 멋있게 짓고 법률 사무소, 마켓 등 편의시설들을 막 입주 시킨 카이사르.
여기에 세금을 쓰지 않으니 사람들에게 인기가 더 오르게 된다.
그래서 그옆에 사람들이 이것 저것 짓고 모여 로마의 중심가가 되는데,
바로 이것을 카이사르가 만들었다.
사람의 마음을 살줄 알았던 카이사르 였다.
정복 보다 힘든 제국의 통치.
그것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호응하는 민중의 의식변화가 필수라는 것을 성찰한 카이사르는
'도시국가' 로마의 방어선이었던 세르비우스 성벽을 허물며 민중의 의식을 제국 마인드로 바꿔 놓는다.
카이사르의 능력을 신이 시샘했던 것일까. 권력이 그의 눈을 어둡게 만든 것일까.
부하들의 변심을 알아차리지 못한 그.
세상을 가진 남자 카이사르에게 죽음의 악마가 찾아간다.
그 중에서는 자신이 정말 믿었던 사람도 있고, 또 그 중 5명은 갈리아 원정을 함께 했던 군단장이었다..
카이사르의 부하 중에서 암살에 참여한 두명의 브루투스가 있는데, 한 명은 갈리아 원정군 군단장 출신의 브루투스, 다른 한명은 ' 카이사르가 황제가 되려했기에 암살했다' 는 암살 주축세력 브루투스가 있었다.
( Et tu, Brute ? )
이것이 카이사르의 마지막 말이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카이사르.
더욱 허무한 것은 이 암살자들이 암살 후 계획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그저 로마 시민들이 호응해주리라 여겼다.
이 추태를 본 키케로는 그들에게 이렇게 일침을 날린다.
이후 시민들에게한 연설에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가 황제가 되려했기에 암살했다' 라고 얘기했지만 ,
오히려 시민들에게 거센 역풍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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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치러진 영웅 카이사르의 장례식.
그 장례식에서 브루투스는 한번 더 시민들에게 연설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 연설을 영국의 대 문호 셰익스피어는 그의 소설 ' 줄리우스 시저 '에서 이렇게 묘사한다.
" 왜 이 브루투스가 카이사르에 대항하여 그를 죽였는지 이유를 요구한다면
이것이 저의 대답입니다. "
" 카이사르에 대한 나의 사랑이 결코 모자라서가 아니라
내가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
연설 후 술렁이는 시민들...
하지만 여론은 이후 안토니우스의 연설로 한방에 뒤집어진다.
"브루투스의 세치혀와 카이사르를 찌른 칼은 바로 부르투스의 심장에 있는 야심으로부터 나왔다."
-셰익스피어 '줄리우스 시저' 中
카이사르의 편에 서서 연설했던 안토니우스, 그의 연설도 훌륭했지만, 결정적으로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의 유언장을 가져와 그 자리에서 읽어 내려간다.
유언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모든 로마의 시민에게 75 드라크마 씩 준다. 그리고 내 땅은 로마의 시민들에게 기증한다. "
75드라크마는 당시 로마의 시민들의 두 달치 월급에 해당했으며 빈민들에게는 6개월~1년치 금액이었다.
" 그리고 나의 후계자는 옥타비아누스다 "
옥타비아누스는 당시 카이사르가 교육시키고 있었고, 어렸으며 듣보 였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미래에 어떤 리더가 필요할지 파악하고 후계자를 점 찍어 놓았던 것이다.
옥타비아누스는 ' 정치의 천재 ' 였다.
이 꼬맹이는 10월, 'October' 의 어원이 되며
훗날 '아우구스투스' 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영웅 카이사르,
그는 마지막까지 로마를 위한 리더를 양성시키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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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제국 중의 하나 로마 제국.
"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그리고 그 제국을 너무도 사랑했던 한 남자.
"살아생전 단 한번도 황제에 자리에 오르지 못한 그 남자의 이름은 사후 영원히 '황제'를 의미하게 되었다."
"내가 로마다 , 나는 '카이사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