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 귀신을 만났을때 지평좌표계 대신 물어봐야할 내용은?
시작하기 전에: '지평좌표계를 어떻게 고정하셨나요?'라는 질문이 당연히 유머라는걸 알고 쓴 글입니다.
알사람은 다들 아는 작년 말에 나온 공대생 유머, '지평좌표계 드립'
요약하자면, 지박령을 만났을 때에는 '질량도 없는 귀신이 어떻게 비관성계인 지평좌표계에 고정했는지 물어라'라는 내용입니다.
이게 너무 유명해지다보니 커뮤니티에서 이절삼정뇌절까지 우려먹었죠.
이 글을 쓰는건 다들 뻔히 아는 내용을 또 뇌절하겠단 건 아니고, 상대성이론 관점에서 좀 새로운 얘깃거리가 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게 뭐냐면, 지평좌표계에 고정한 방법 대신 질문해야할 내용은 따로 있다. 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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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귀신은 질량이 있다.
특수상대성이론의 중요한 결과중 하나는 '광속까지 가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것입니다.
정지해있는 물체에 일정한 힘을 계속 가해도 광속에 가까워질수록 마치 '질량이 늘어나는 것처럼' 행동해서 가속도가 점점 작아지거든요.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질량이 없는 입자는 항상 광속으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질량이 있는 입자가 광속으로 움직일 수 없는 것처럼, 질량이 없는 입자는 광속보다 느려질수도, 정지할수도 없습니다.
(사실 광속이라는 단어는 빛의 속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질량없는 모든 입자의 속력을 의미합니다.)
즉 귀신이 우리 눈앞에서 정지해있다는 것은, 귀신은 질량이 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이를 모르고 귀신 앞에서 지평좌표계를 운운했다간 문과 귀신에게는 문제없지만, 생전에 물리학을 전공한 귀신이라면 비웃음을 당하고 역으로 기선제압을 당하게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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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귀신의 특성 세가지
일단 귀신이 질량이 있다는 건 명확히 알았으니, 귀신의 물리적 성질에 대해 고찰해봅시다.
공포물이나 괴담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귀신의 특성은 세가지입니다.
a. 공중에 떠다닐 수있다
b. 장애물을 통과할 수 있다
c. 대화 및 저주 등으로 인간과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일반적인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면 불가능해보이지만, 저는 고민끝에 두가지의 가능한 시나리오를 생각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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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귀신이 매우 낮은 밀도의 구조로 이루어졌다면?
첫번째 시나리오는 귀신의 밀도가 공기와 비슷할 정도로 매우 낮다는 것입니다.
밀도가 공기와 같다면 부력의 크기가 중력과 평형을 이루어 떠있을 수 있거든요.
알려진 고체 중에서 가장 밀도가 낮은 에어로그래핀(aerographene)이라는 물질은, 밀도가 160g/m3로 공기의 1/7.5밖에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강철보다 10배 강한 물질이라고 하네요.
귀신이 에어로그래핀으로 되어있다는 건 아니지만, 충분히 낮은 밀도를 가지면서 안정된 구조를 가지는 것은 가능하다는 얘기죠.
남은 의문은 유령이 어떻게 벽을 통과하냐는 건데...
이건 유령이 자기 몸을 분해/재조립할 수 있다면 설명됩니다. 금속이나 유리같은 물질들도 실제로는 기체를 완벽히 차단하지 못하거든요. (지상에서 진공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는 까닭이 이것입니다.)
즉 자기 몸을 기체에 가깝게 분해한 뒤, 어떻게든 분해된 입자들을 조종할 수 있다면 벽을 뚫고 지나갈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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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귀신이 아예 다른 입자로 이루어졌다면?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봅시다. 왜 두개의 물체는 서로 통과하지 못할까요?
뭔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원자의 99.99% 이상은 빈 공간이니, 물체들끼리 서로 통과하지 못하는건 의외로 당연하지 않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말하면, 전자끼리의 반발력(전자기력)때문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전하자 중성인 입자라면 물체를 통과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래서 나온 두번째 시나리오는 유령이
-전기적으로 중성이며
-질량이 0이 아니고
-안정적인(반감기가 긴)
입자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중성자겠지만, 아쉽게도 후보에서 탈락입니다.
왜냐면 양성자와 결합하지 않은 상태의 중성자는 반감기가 고작 880초밖에 안되거든요.
가능한 후보를 찾기위해 그 유명한 표준모형을 들여다봅시다.
어려운 거 볼 필요 없고 전하(charge)가 0이며, 질량(mass)이 0이 아닌 입자만 찾아보면 됩니다.
전자중성미자, 뮤온중성미자, 타우중성미자, 힉스보존이 조건을 만족하는데, 힉스보존은 반감기가 매우 짧아서 탈락.
즉 유령의 구성입자로 가장 유력한 것은 중성미자(neutrino)라는 결론.
참고로, 위의 표의 입자들이 강한핵력으로 결합하면 강입자(hadron)을 이루게 됩니다.
강입자는 크게 중입자(baryon)과 중간자(meson)의 두 종류로 나뉘는데, 양성자와 중성자를 제외하면 전부 반감기가 짧은 입자들이니 여기서는 추가로 고려할 필요가 없겠네요.
여태 발견된 입자들 이외에도, 이론적으로만 예측되는 입자라든가 표준모형 바깥에 있는 입자일 가능성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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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남아있는 의문 및 결론
유령이 중성미자로 이루어졌다고 가정했을 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중성미자가 상호작용이 거의 없는 입자라는 것.
눈에 보인다던지, 저주를 내리던지 하려면 어쨌든 인간 및 광자(=전자기파)와 상호작용이 있어야하거든요.
어느정도냐면 태양에서 날아온 중성미자가 초당 100조개씩 우리몸을 통과하지만, 느끼기는 커녕 존재를 관측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중성미자를 처음 발견한 방법은 지하에 수백리터짜리 물탱크를 갖다놓고 중성미자가 물분자 안의 양성자와 반응할때 나오는 신호를 관측하는 것.
그러면 1시간에 2.9개정도의 신호가 나오는데, 이걸 1371시간동안 측정하면 됩니다.
카원과 라이너스가 이 방식으로 중성미자의 존재를 확인해, 노벨상을 받았어요.
아무튼, 결론적으로 우리가 유령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물어야 할것은
"구성하는 입자가 일반적인 입자로 되어있는지, 또는 중성미자나 미발견된 입자로 이루어졌는지"
이며, 두번째로 물어야 할 것은
"일반적인 원자로 되어있다면, 어떻게 몸을 분해하고 재조립해서 통과할 수 있는지"
또는
"중성미자로 구성되어있다면 주위 원자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이렇게 두가지를 꼭 질문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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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네컷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