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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상 최고의 정치가 중 한 명으로 평가 받는 인물

주성치 9 4093 7 0

db4ece08e31a613d8ffc900d4f365c2d.jpg 중국 역사상 최고의 정치가 중 한 명으로 평가 받는 인물 txt
 

정치적 업적



 1. 농업의 장려

  (1) 대규모 수리시설 도강언 정비 : 작물 생산량 폭발적으로 증가. 초주 曰 " 타국 풍년작이 우리 평년작, 타국 평년작이 우리 흉년작 " , 화양국지 曰 " 물이 가물어도 사람들이 굶주림을 알지 못하고, 흉년이 없어 천하가 이를 하늘의 곳간이라 일컬었다 " / 현 중국의 도강언에는 도강언의 유지 및 보수에 공이 있는 사람들이 동상으로 서 있는데, 제갈량 동상도 서 있음.

  (2) 기타 수리시설 정비 : 진 - 한 시대에 건설됐던 제방을 비롯한 수리시설들을 정비 및 보수. 

  (3) 한중의 농토 개간/둔전 진행 : 북벌 전선이자 요충지인 한중에서 군량 자급자족 가능. 병사들과 백성들이 같은 농경지에서 농사를 하면서도 백성들이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 기현상 발생. 한중의 개간과 둔전은 제갈량 사후까지 계속 이어짐.

  

 2. 소금의 생산/관리 정비

  (1) 생산과 관리의 체계화 : 전문 부서 염부 ( 府 ) 를 만들어 소금의 생산을 체계적으로 관리. 유능했던 책임자 왕련, 여예 등의 노력으로 촉한의 소금 생산량이 크게 증가. 촉한에서 생산된 소금은 오나라로 수출되기도 함.

  (2) 염정 ( 鹽井 = 소금 우물 ) 의 개발 : 제갈량의 노력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염정들이 개발됨. 좌사의 글 <촉도부蜀都>에서 " 집집마다 염정이 있다 " 라고 언급 / 송대의 시인 소동파는 <제갈염정諸葛鹽井>이라는 시를 짓고, 자신이 주를 달아 14개의 " 제갈염정諸葛鹽井 " 이 산 아래에 있다고 전함.

  (3) 소금의 유통 촉진 : 가격은 낮추고, 품질은 개량하여 소금의 유통을 촉진시키고 세금 수입도 증가하는 일거양득의 현상.

  (4) 화정 ( 火井 = 천연가스 ) 의 이용 : 소금의 순도와 생산량 증대. 화정을 이용하여 생산한 소금은 여타 생산 방법의 2배에 가까운 생산량을 보임 -> 진나라 사람 이흥은 제갈량의 4대 개발 업적 중 하나로 소금 우물을 꼽음.

  

 3. 촉금 ( 蜀錦 ) 산업 정비

  (1) 생산과 관리의 체계화 = 금관 ( 錦官 ) 설치 : 촉금 사업은 관영/민영의 구분 없이 금관의 직, 간접적 관리를 받음.

  (2) 교역으로 인한 막대한 수익 : 위나라의 조비, 조예는 모두 촉금 덕후. 위나라는 적대 관계임에도 불구 촉금을 대규모로 수입, 이는 촉한에서 막대한 양의 수익 내지 군자금으로 전환 -> 위나라에 촉금 팔아 번 돈으로 위나라를 친다.

  (3) 오나라와의 교역에서도 촉금은 상등품 : 양국의 외교에서 촉금이 예물로 사용됨.

  (4) 최고 책임자인 승상이 모범 : 제갈량이 임종에 이르러 스스로 언급하기를, 자택에 800 그루의 뽕나무가 있어 자식들이 먹고 살 걱정이 없다 / 국내 촉금의 과다 사용을 막기 위해 스스로 검소를 실천 -> 촉한 관리들 대다수가 청렴, 검소.


 4. 남중의 개발

  (1) 농업 장려 : 촉한의 농경 기술을 전파 -> 농기구와 가축을 지원하고 농사 경작을 가르침.

  (2) 소금 생산 : 남중 지역에 염관을 설치 -> 남중 지역 소금 생산량 대폭 증가, 남중 경제력 향상 / 촉한 정권의 염세 수입 증가

  (3) 의사소통 문제 해결 : " 승상 제갈량이 친히 도보 ( 圖譜 ) 를 그려 교화를 행하다 " ( From. 제갈량 평전 )

  (4) 남중 출신 인재 발탁 : 맹획은 중앙에서 어사중승까지 승진, 맹염은 보한장군 + 제갈량 북벌에 종군, 찬습은 영군

  (5) 선정으로 교화 : 이민족이 중앙 정권에서 파견된 관리들 칭송하고 사당 세워 추모하는 나라는 삼국 중 촉한이 유일. 현재까지도 남중 지방 곳곳에는 제갈량과 관련된 전설 및 설화, 유적 등이 즐비하다고 전함.


 5. 인재 선발

  (1) 능력 위주의 인재 선발 : 이엄보다 관위가 낮았던 양홍을 이엄과 동급 인사로 발탁. 뒷날에는 양홍보다 관위가 낮았던 하지를 양홍과 동급 인사로 발탁. 위나라 항장 출신의 강유, 왕평 등도 중용.

  (2) 실적의 입증을 중시 : 1차 북벌 당시 왕평의 훌륭한 뒤처리 및 사후조치를 높게 평가하여 중용, 장완/비의/동윤 등의 내정계 인재들은 모두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실적을 쌓아 제갈량의 심복 내지 후계자로 자리매김함.

  (3) 인재 임용을 위한 노력 : 성도 남쪽에 높은 대를 쌓아 각지의 선비들을 초청 ( 제갈량 평전 ) , 아랫사람들에게 문무 양면의 인재들을 적극 추천할 것을 권장 -> 칭요주교 ( 稱姚伷交 ) 로 요주를 표창하며 인재 천거의 중요성 강조.


 6. 법제의 바른 시행

  (1) 촉한의 법 ' 촉과 ' 제정을 주도 ( 법정, 이엄, 유파, 이적 등도 함께 참여 )

  (2) 내분/정쟁 부작용 최소화 : 하라는 일 제대로 안 하고 + 구석 타령하며 역적질 사주하고 + 황제에게 거짓말하고 + 정권 최고 책임자에게 개긴 인물을 사형시키지 않고 유배에서 끝낸 건 동시대에 촉한 밖에 없음. 심지어 아들은 연좌도 안 걸리고 중랑장으로 계속 복무.

  (3) 법 앞에선 만민 평등 : 사적으로도 친분 깊고, 공적으로도 심복이었던 마속도 군령 위반 처벌을 위해 예외 없이 참형. 전쟁 패배 책임을 지고 스스로의 관직을 강등한 최고 책임자 역시 동시대에선 제갈량이 유일한 사례.

  (4) 공정한 법률에 대한 찬사 : 진나라 사람 이흥은 " ( 제갈량의 형법 집행이 ) 정나라보다 공정하고, 교화는 노나라보다 아름답다 " 고 찬탄하는 동시에 " ( 제갈량은 ) 관중과 안영에 그치지 않고, 고요나 이윤에 비견된다 " 고 극찬함.


 7. 오나라와의 외교

  (1) 명분과 실리를 적절히 운용하며 외교 관계 수립 : 제갈량이 선정/파견한 등지, 진진, 비의 등은 모두 외교관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 -> 등지와 비의는 손권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함.

  (2) 외교 전략문 절맹호의 작성 : 외교 관계에 있어 명분과 실리의 조화를 추구, 국교를 성공적으로 수립.

  

 




군사적 업적



 1. 완벽함에 가까운 대군 통제 및 운용

  (1) 회전/야전 불패 신화 : 사마의, 장합, 곽회, 비요 등은 모두 제갈량을 상대로 한 야전에서 패배 ( 노성/기산/상규 등 ) , 장합은 아예 목문에서 전사. 그나마 진창에서 20일 농성한 학소가 제갈량에게 한방 먹였다고 할 만한 유일 사례 / 선제기의 제갈량군 1만 참수 기록, 후방 급습 성과 기록 등은 왜곡 의심 -> 사마광의 자치통감에서는 선제기 기록을 불신하여 아예 싣지 않음.

  (2) 퇴각전 하나는 역대 최고 : 별동대 괴멸, 군량 부족 등으로 퇴각할 때마다 신속 정확하게 철수. 추격으로 인한 피해는 거의 없을 뿐더러, 만일 퇴각하는 제갈량군을 추격할 경우 그 추격군은 패배 확정. ( 왕쌍/장합 )

  

 2. 팔진법의 개발

  (1) 팔진법의 혁신 : 진나라 사람 이흥이 " 제갈량의 팔진법은 손자, 오자병법에도 없다 " 라고 말할 정도로 혁신적 개량.

  (2) 진형 구축에서 최고의 효능 발휘 : 사마의의 " 천하의 기재 " 평가는 제갈량의 진형을 검토한 후의 발언.

  (3) 대군 운용의 정수 : 제갈량이 인솔하는 촉한 군대의 통제 및 운용은 팔진법에 기초.

  (4) 후대에 이르기까지 활용 : 서진의 명장 마륭은 팔진법을 활용하여 강력한 선비족 수령인 독발수기능을 대파하고 그의 목을 벰. 당나라 명장 이정은 제갈량의 팔진법을 개량하여 최강의 대(對) 기병진법 육화진을 개발 -> 남송의 악비 등장 이전까지 제갈량의 팔진법은 실전에서 계속 활용됨.


 3. 군사 장비의 개발

  (1) 십시연노 ( = 원융노 ) 개발 : 진나라 사람 이흥은 이를 신노 ( 神弩 ) 라 부르며 극찬. 강력한 위력으로 인해 송나라 사람 왕응린은 십시연노를 최산노 ( 摧山弩 ) , 즉 산을 무너뜨리는 노라고 부름.

  (2) 목우/유마의 개발 : 군량 수송 장비의 개발, 익주 험지의 수송 능력 강화.

  (3) 기본 장비의 품질 강화 : 제갈량과 포원이 제작한 칼 ( 刀 ) 은 쇠구슬을 가득 채운 대나무 통을 가볍게 잘라버리는 위력을 발휘하여 신도 ( 神刀 ) 라고 불림 / 역시 제갈량과 포원이 제작한 철투구는 쇠뇌에 맞아도 뚫리지 않았다고 전함 / 전투용 도끼와 칼, 창 등의 장비 품질 상향을 위해 노력 -> 제작에 소홀할 경우 직접 문책.


 4. 이민족과의 군사 협력

  (1) 선비족과의 연계 : 제갈량 북벌 당시 선비족장 가비능이 제갈량을 도왔다는 기록이 있음.

  (2) 남만족 출신 병력의 활용 : 남만을 평정한 후, 청강의 부족들 중 일부를 촉군 부대로 편제 -> 오부영군으로 불리는 이 부대는 왕평 휘하에서 활약, 231년 북벌 당시 장합을 격퇴하는 등의 전공을 세움.

  (3) 그 외의 이민족과의 관계 : 강족, 저족 등과의 여타 이민족과 우호적인 관계 유지.

 

 

 

그 외 - 후대의 평가

 (1)진수 왈 : 제갈량은 상국(相國)이 되어 백성을 어루만지고 의궤(儀軌-예법의 본보기)를 보이고, 관직을 간략히 하여 권제(權制-임시 제도)에 따르고, 성심을 열어 공도(公道)를 배풀었다. 충성을 다하고 보탬이 된 자는 비록 원수라도 반드시 상주고, 법을 어기고 태만한 자는 비록 친한 자라도 반드시 벌주었다. 죄를 인정하고 실토한 자는 비록 중죄라도 반드시 풀어주고, 헛된 말로 교묘히 꾸미는 자는 비록 가벼운 죄라도 반드시 죽였다. 선행이 작다 하여 상주지 않는 일이 없고, 악행이 작다 하여 문책하지 않는 일이 없었다. 모든 일을 정련(精練)히 하여 그 근본을 다스리고, 명분에 따라 그 실질을 책임지우며 헛된 것은 입에 담지도 않았다. 마침내 나라 안 모든 이가 그를 두려워하면서 경애하고, 비록 형정(刑政)이 준엄했으나 원망하는 자가 없었으니, 이는 그 마음씀이 공평하며 권하고 경계하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정사 삼국지 - 제갈량전)

 

진수가 상소문에 평가한 제갈량

날 소하(蕭何)는 한신(韓信)을 추천하고 관중(管仲)은 왕자(王子) 성보(城父)를 천거했는데, 
이는 모두 자신의 장점을 헤아려볼 때 모든 것을 겸하여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갈량의 기량은 정리(政理-정치)에 능하니 또한
관중, 소하의 아필(亞匹-버금가는 짝, 동류)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당시 명장 중에 성보, 한신 같은 이가 없어 
이 때문에 공업이 지체되고 대의를 이룰 수 없었던 것입니다. 
대저 천명이 돌아가는 곳은 정해져 있어 (사람의) 지력(智力)으로 다툴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2)원준 왈 : 6척의 고아(유선)를 맡아 한 나라의 정무를 총괄하고, 범용한 군주를 섬기며 전권(專權)했으나 예(禮)를 잃지 않았고, 군주의 사무를 대행했으나 국인(國人)들이 의심하지 않았으니, 이와 같은 즉 군신 백성들이 마음으로 흔쾌히 봉대했음을 알 수 있소. 법을 행함이 엄격한데도 국인들이 기쁘게 복종하고, 백성을 부려 그 힘을 다하게 해도 아랫사람들이 원망하지 않았소. 그 군사들이 출입할 때는 빈객처럼 하니 행군할 때 도적질하지 않고, 꼴과 땔나무를 베는 자들은 사냥하지 않으니 마치 중국에 있는 듯 했소. 그가 용병함에는 산처럼 머물며 바람처럼 진퇴(進退)하고 군사가 출전하면 천하가 진동하니 인심(人心)이 근심하지 않았소. 제갈량이 죽은 뒤 지금까지 수십년이 지났는데 국인들이 노래하며 그리워하여 마치 주나라 사람들이 소공(召公)을 그리워하는 듯 하오. 공자가 이르길 '옹(雍)은 가히 임금 노릇을 할 만하다'고 했으니 제갈량에도 이러한 점이 있었소.( 정사 삼국지 방 - 제갈량전 )

 

  (3)장엄 왈 : 공명( 孔明 )은 파, 촉 땅에서 일어나 1주(州)의 선비에 의지하니 대국에 비하면 그 전사( 戰士 ), 인민( 人民 )이 9분의 1정도에 불과했으나, 대오(大吳)에 예물을 바치면서도 북적(北敵)과 맞서고, 밭같고 싸우며 대오를 갖춰 형법이 엄정, 가지런하고, 보졸 수만을 거느리고 기산(祁山)으로 장구( 長驅-멀리 달려감 )하니, 개연히 하수, 낙수에서 말에게 물 먹일 뜻이 있었다. 중달(仲達)은 천하에 열 배의 땅에 의거하여 겸병지중(兼幷之衆)을 거느리고도, 견고한 성을 점거하고 정예를 끼고는 적을 사로잡을 뜻이 없고 스스로 보존하는데 힘쓸 뿐 공명이 스스로 오고 가게 만들었다. 만약 이 사람(제갈량)이 죽지 않았다면 끝내 그 뜻을 펼치며, 해를 이어 궁리하고 바삐 다그치며 모략을 일으켰을 것이니 즉 옹주, 양주는 갑옷을 벗지 못하고 중국은 안장을 풀 수 없어 승부의 형세는 또한 이미 결정되었다 할 것이다. 지난날 자산( 子産 )이 정나라를 다스릴 때 제후들이 감히 군사를 내지 못햇고 촉상 ( 蜀相 - 촉나라 재상, 즉 제갈량 )이 이에 가깝다 할 수 있으니, 사마의에 비하면 또한 뛰어나지 않은가! ( 정사 삼국지 - 제갈량전 )

 

  (4) 이흥 왈 : (요약) 제갈량의 주획 ( 畫 - 계첵을 짜고 계획을 세움 ) 은 비할 이가 없고, 문장과 언변의 밝음이 장문중보다 나으며, 명철하고 충성을 지킴은 관중과 악으보다 낫고, 군주의 임종에 이르러 겸손하였던 것은 허유 ( 許由 - 요임금의 선양을 거부한 인물 ) 보다 나았다 ... 형벌은 정나라보다 공정하고, 교화는 노나라보다 아름다우니, 촉나라 사람들이 수치를 알았고 하수와 위수가 안거하였다. 고요와 이윤에 비견할 만하니, 관중과 안영에 그치지 않는다.

 

  (5) 배송지 왈 : ...( 제갈량이 ) 만약 중화를 거닐며 그 뛰어난 재주를 펼쳤더라면, 아무리 선비가 많다 한들 어찌 가리고 막혔겠는가! 위씨 ( 魏氏 - 위나라 ) 에 몸을 맡겨 그 재주와 기상을 펼쳤더라면 실로 진장문 ( 진군 ) 이나 사마중달 ( 사마의 ) 도 감히 대등히 겨루지 못하였을 것이거늘, 하물며 나머지 선비들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6) 두보 왈 : 이윤과 여상(태공망)에 백중하며, 천하가 그 밑에 있었다면 소하와 조참도 가볍게 눌렀을 것이다.

 

  (7) 주희 왈 : 맹자 이후의 인물이 있다면 장량과 제갈량 뿐이다.

 

(8) 왕부지 왈 : 군사를 다스릴 수 없을 때 그 ( 제갈량 ) 만이 이를 다스렸고, 백성을 다스릴 수 없을 때도 그만이 이를 다스렸다. 정치가 편안하지 못할 때 그만이 이를 편안케 했고, 나라의 살림이 어려울 때 그만이 이를 풍족하게 했다.

9 Comments
불량우유 2020.01.16 19:56  
이런 제갈량을 과로로 보낸 유선은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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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정 2020.01.16 22:18  
[@불량우유] 귀큰놈이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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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nymous 2020.01.17 00:25  
[@불량우유] 방통이 살아있었다면 제갈량의 짐을 많이 덜어줬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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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ddkxocieh37 2020.01.16 22:41  
중국은 역사를 배우려면 몇년이 걸릴까?
아 물론 제대로 배울수있을까 워낙 이상하게 바꾸고 없앤게 많을꺼 같긴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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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at 2020.01.17 02:40  
[@Nddkxocieh37] 갑골문자 적힌 뼈유물로 국 끓여먹고 홍위병이 자국역사 때려부순게 하도 많은 것도 중국이지만, 전체 역사에서 그나마 현대에 가까운 명, 청대 그리고 워낙에 남긴 게 많은 남송 시대는 유물이랑 서적이 하도 많이 남아있어서 10세기 후반~청 멸망까지만 배우려고 해도 한세월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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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at 2020.01.17 03:02  
여기서 번호 별로 추가 설명 들어가면요..

1-1: 도강언은 무려 진나라 시절부터 만들어진 수로로서 장안의 정국거와 함께 보물로 불릴 정도의 대규모 시설인데, 제갈량이 이를 보완하고 심지어 수로의 길이를 더 늘려서 성도평원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반면, 장안 일대는 후한 시절부터 수십 년을 난리 겪고 정비가 부실했던 관계와 수로 상태 때문에 오히려 생산력이 저하되었습니다.

1-3: 한중의 농토개간과 둔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던 것이 당시 상황입니다. 조조가 마초와 한수를 제압하고 장로에게 항복을 받은 후, 무도/하변의 저족 5만호(가호), 그리고 한중의 수만 가호를 각각 위나라 권역 안인 천수일대와 장안일대로 '강제이주'를 시킵니다. 그러니 한중공방전에서 유비가 승리하고 한중왕이 되는 쾌거를 누린 것은 맞는데, 장로가 수십 년간 가꿔놓은 한중은 인구 유출과 전쟁으로 황폐한 빈 땅이 되버린 겁니다. (제갈공명: '조조 shiba 샠키 어휴..') 당시 한중에서만큼은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존버하던 장로가 운용한 병력이 최대 약 2만 내외로 추정되니 사실 유비와 촉한은 이겼음에도 2만 병력을 만들고 운용할 국력을 위나라에 빼앗긴 것으로 반쪽짜리 승리를 거둔 겁니다.

2-1: 산지에서 나는 소금, 암염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것은 근대, 현대에서까지도 소금 생산에서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부분입니다. 지금 한국에서야 천일염이 하도 흔하게 널려서 '소금이야 대부분 바다에서 나는거 아니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비교적 최근에 해당하는 20세기 초엽까지도 재래식으로 솥에 바닷물을 끓여서 생산하는 소금이 거의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수량도 많지 않았고 채산성 또한 효율이 아주 낮은 편입니다. 그러니 3세기 경 오나라는 오죽하겠습니까 해안 일대면 몰라도 다른 지역은 촉에서 소금 수입해서 쓰는 빈도가 절대 낮지 않았으리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위나라는 왜 소금에 목 매달지 않았냐고요? 중국 전토를 통틀어서 하동에 염지가 소금 최대산지 자리를 오랫동안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염상(소금상인), 혹은 지리적 위치에서 파생된 이름인 진상이 당시에 하북에서 가장 부유한 상인들이었다는 유래도 이 때문입니다.
Kuat 2020.01.17 03:39  
4번 전체는 당시 남중의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압축 요약이 가능합니다. 당시 중국통일왕조들이 어디였건 간에 수도는 대부분 낙양 아니면 장원입니다. 그리고 왕권이 강한 중앙집권국가의 단점 중 하나는 수도에서 멀 수록 관리가 안된다는 겁니다. 대표적인게 익주 남부의 남중일대 이민족들과 동오의 장강 하류에서 고르게 분포한 산월입니다. 말이 쉬워 이민족이라고 통칭하는 거지 부족의 기원과 문화도 유니크하고 언어와 운영방식도 극도로 다른 부족들이 적게는 5,6가지에서 많게는 20개가 넘게 산지투성이의 척박한 동네에 몰려 살면 당연히 힘의 논리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야만의 통치가 주를 이룹니다.

그러니 제갈량이 좀 머리큰 부족 중에서 반항하는 것들 싹 쳐내고서는, 없는 평지를 가꾸게 해서 식량생산하고, 널린 암염을 거두어 무역해서 이익금도 나눠주고, 중앙에서 관리를 보내서 법 집행도 해주고 치안도 봐주고, 지역 유지와 자제들 중앙(성도)로 불러서 벼슬도 주고 작위라는 당근도 주면서 달랬죠. 왜? 남중일대를 촉한의 강역으로 편입시켜서 인구증가를 꾀하고, 궁극적으로는 성공적인 북벌을 위해서입니다. 이게 큰 그림이었죠. (모든 것은 북벌을 위해서)

5-1: 능력위주의 인재 선발. 그리고 6-2 연좌제 미적용, 처벌 최소화 정책:

유비가 세웠고 제갈량이 만든 촉한이라는 나라의 장점이자 기원에 의한 단점이죠. 유비가 수십 년을 떠돌이 생활하면서 곁에 남은 인재들은 무수한 고비를 헤쳐나오고 생사고락을 같이 한 '검증된' 정예 인재들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유비가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곧 이들 또한 나이가 꽤나 많았다는 것입니다. 열전에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 유명한 간손미부터 황충, 곽준 등의 장군들이 유비보다 먼저 죽습니다. 그런데 유비와 제갈량은 (나중에야 형주를 잃지만) 입촉 한 뒤부터는 그저 지방군벌이 아니라 2개의 주를 경영하는 최고책임자가 된 거죠. 몇 가지 단점이 있더라도 감수하고 우선 능력이 좀 있다하면 누구든 닥치는대로 끌어모아 써야 행정력에 구멍이 안나는 최악의 상황을 모면하는 겁니다.

여기다 조조가 헌제를 끼고 모신 이후(196년)부터 인재구인을 20여 년간 해온 덕에 전국의 명문가, 유력호족가 출신의 고급두뇌들이 대거 허도로, 업성으로 흘러들어갔고, 서주대학살과 여남일대의 극심했던 혼란과 기근으로 조조에게 반감을 가진 해당 지역 인재들은 상당수 동오로 흡수되었고요. 예를 들자면 촉한(유장 하야 직후)이라는 환자에게 수혈을 해야되는데, 수혈필요량에 한참 모자란 양밖에 공급이 없는 상황. 그래서 유비와 제갈량은 극단적인 처방을 합니다. 깨끗하지 못한 피라도 혈액형이 맞으면 다 쏟아부은거죠. 그게 에이즈환자 것이든 고혈압 환자 것이든 다른 유전병이건 상관없이...

제잘난 맛에 살던 요립, 양의, 양희같은 사람, 말을 바꿔 갈아탄 왕평, 강유 같은 장수들, 유파와 허정같이 조조나 유비 둘 다 싫어한 속좁이들이나 의미없는 고전만 파던 허자, 호잠 같은 노친네들까지..유비와 제갈량쯤 되는 인간들이 저들의 부족한 점이나 나중의 부작용을 몰랐을리가 없죠. 리얼로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했기 때문에 다 받아들인겁니다.
유토피아 2020.01.17 08:19  
그래봤자 마오쩌둥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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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공명 2020.01.18 00:00  
ㅎ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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