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가 죽자 연호를 바꾼 헌제
마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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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9 00:42
삼국지를 읽어보면 나오는 헌제
동탁한테 옹립되서 이각, 곽사 세트한테 치이고
조조한테 시달리는 그런 황제임
그래도 동한(東漢)의 마지막 ‘황제’였으니
당연히 연호가 있었음
삼국지를 자세히 읽은사람이면 ‘건안’이라는 연호를 들어봤을거임
바로 그게 헌제가 196년부터 220년까지 사용하던 연호임.
근데 분명 조비가 선양받은 년도는 221년인데
건안은 220년까지 썻다고 나와있음
그럼 남은 1년동안 쓴 연호가 따로 있을거잖음 ㅋㅋ
바로 그 1년 남짓한 기간동안 쓴 연호가 연강(延康)임
헌제가 잘 쓰던 건안을 버리고 연강으로 연호를 바꾼 이유는
바로 조조를 추모하기 위해서인데... 사실 조비에 의해 강제로 바꾼거임
사망 당시 조조는 제후왕(위왕)이었고,
제후왕 또한 황제의 신하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제가 권신의 죽음을 이유로
연호를 강제로 바꾼였음.
즉 그 당시 조비가 사실상 황제나 다름없다는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이며
실제로 10개월 후에 선양(이라쓰고 찬탈이라 읽지만)을 받아
황제 자리에 올라버림 ㅋㅋㅋㅋㅋㅋ
이런 이유로 유비는 연강 연호를 따르지 않고 건안을 계속 썻으며,
221년에 황제로 즉위하자마자 연호를 장무(章武) 로 바꿈.
추가로 주마루오간에 의하면
오나라 또한 연강을 인정하지 않고 건안을 계속 씀
특이한건 동한이 멸망한 222년까지 계속 건안이란 연호를 썼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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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장안탈출에서부터 따른 동승과 후궁 동귀인을 눈앞에서 의대조사건으로 썰었고, 외척의 영향이 적을만한 학자계열 명가인 복완의 딸을 짝으로 맞추어줬지만 결국 모의가 적발되어서 몰살시키고 연고지 전혀없는 북방쪽으로 복씨 일가를 죄다 쫓아버리고 승상에서 위공으로 승차했죠. 덤으로 딸을 헌제에게 주면서 외척의 지위까지 거머쥡니다.
이 시점에서 이미 두 번의 대숙청으로 내부애서 조조를 뒤집을 인물이나 건수는 불가능해졌고 216년 마초/한수 토벌, 장로 항복 및 남흉노와 오환 선우들의 귀부를 이유로 위왕의 자리에 오르고 위왕부를 업성에 두면서 자연히 허도의 헌제정부는 간판만 달아놓고 제 기능도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거기다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던 황족의 직할지인 낭야국의 왕 유희도 참살하면서 그나마 유일하게 헌제를 대체하거나 힘을 합칠만한 유씨 황가의 인물은 단 한 명도 남지 않게 됩니다. 심지어 219년 허도정부에서 경기와 위황등이 계획도없이 무대뽀로 난을 일으키고 싹 정리된 이후로 그나마 간판이라도 달아놨던 헌제의 허도정부는 복직 인원도 구성조차도 의미없어진 유령의 집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고로 200년의 의대조 사건 때부터 이미 조조가 정권의 실세였지만, 황제가 조서 한장 마음대로 못쓰고 정부조직에 아무 영향도 못미치게 된건 순욱이 죽고 위공이 되면서입니다. 그런 조조를 보고자란 조비가 시늉이라도 헌제를 황제 대우할리는 어림도 없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