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인 공장, 지존파 사건
최근 러시아에서 약 20년 동안 20명이 넘는 사람들을 살인해 잡아먹은 부부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현재 경찰은 희생자 중 7명의 신원을 확인했고, 현재도 조사를 진행 중인데요.
그런데 이런 비슷한 사건이 한국에도 있었습니다. 바로 ‘지존파’ 사건인데요. 이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잔혹한 범죄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지난 1993년 4월부터 1994년 9월까지 1년 넘게 전국 각지에서 엽기적인 살인을 저질렀는데요.
지존파가 결성하게 된 시기는 1992년이었습니다. 후에 두목이 되는 김기환은 자신을 포함해 총 6명의 사람들을 모아 끔찍한 살인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이들은 살인을 위한 살인공장까지 만들었습니다. 지존파들은 막노동을 해서 번 돈으로 전남 영광에 건물을 짓는데요. 사람을 가둘 감금 시설은 물론, 시체 소각로까지 만들었죠.
경찰이 당시 이들을 체포했을 당시 소각로에는 남아있는 피해자들의 유골이 들어있었습니다. 당시 사진 속을 보면 피해자들의 두개골로 보이는 뼈가 있습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완전히 공포영화의 한 장면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다”, “당시 베테랑 형사들도 ‘충격적이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회상했죠.
그렇다면 지존파가 결성하게 된 이유는 뭘까요? 바로 부유층에 대한 강한 분노 때문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들의 행동강령을 문구로 만들어 서면을 갖고 있을 정도였죠.
그 행동강령엔 총 4가지 주의사항이 적혀 있었는데요. 돈이 많은 사람을 저주한다, 10억을 모을 때까지는 범행을 계속 한다, 배신자는 죽인다, 그리고 여자는 엄마도 믿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지존파 멤버 강동은은 인터뷰에서 “돈 없는 사람 무시하는 것들, 압구정동의 야타족들 내 손에 못 죽이고, 시작도 못 해보고 잡힌 게 한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지존파가 범행을 저지르게 된 건 1993년 7월부터였습니다. 김기환은 다른 일행을 데리고 충남 논산에서 귀가 중이던 20대 여성을 납치한 뒤 강간하고 살해했는데요.
놀라운 사실은, 이 살인은 그저 예행연습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김현양은 “김기환이 여자를 죽일 때 ‘사람은 이렇게 죽이는 것’이라고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렇게 죄없는 20대 여성은 그저 지존파의 예행연습으로 어이없게 살해됩니다. 당시 검거 형사는 “조직원들의 결속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행동이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차 범행은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한달 뒤 전남 영광에서 벌어졌죠. 지존파는 같은 조직원이었던 송봉은을 살해한 뒤 시신을 암매장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당시 송봉은은 범행에 대한 강한 불안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공동 명의로 있던 통장에 일정 금액을 인출해 몰래 달아나려고 했죠.
하지만 그의 계획은 실행되기도 전에 붙잡힙니다. 지존파 멤버들은 ‘배신자는 죽인다’는 조직 강령에 따라 살해한 뒤 산에 묻어버렸습니다. 휘발유를 부어 시신을 훼손하기도 했죠.
당시 지존파 김현양은 “순간적으로 아이들이 이야기하고 있을 때 죽였다”며 충동적인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생긴 살인임이라고 말했습니다.
더욱 끔찍한 것은요. 이들이 체포된 뒤 현장 재현을 위해 모였을 때 지존파 멤버들의 얼굴에는 어떤 죄책감도 보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심지어 웃기까지 했죠.
본격적인 살인은 1994년 5월 일어났습니다. 두목 김기환은 전남 영광에 있던자신의 고향집을 개조해 살인공장으로 재탄생시켰는데요.
당시 사건 담당 형사는 “당시 내부 구조는 마치 유치장을 연상케 했다. 중앙계단을 내려오면 바로 감금시설이 보였고, 그 옆에는 소각장이 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또 이들은 살인을 위한 무기 수집도 진행했습니다. 경찰이 수거한 무기만 봐도 도끼, 다이너마이트, 지팡이를 가장한 칼 등 섬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1994년 9월 3차 범행을 진행합니다. 이들은 차를 타고 경기도 양평군으로 향했는데요. 이곳에서 고급 승용차를 타고 데이트를 즐기던 커플 이모씨와 이모양을 납치합니다.
지존파는 두 사람을 자신들의 아지트로 데려온 뒤 몸값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어마어마한 몸값을 낼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은 갖고 있지 않았죠. 그러자 범인들은 이모씨를 무참히 살해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지존파는 전북 장수까지 피해자들의 차를 몰고 갔는데요. 이곳에 있는 낭떠러지에 차와 시신을 밀어 마치 음주운전으로 떨어진 것처럼 위장하기도 했습니다.
다음 범행도 9월에 일어났습니다. 이번에는 경기도 성남시에서 중소기업을 운영 중이던 사장 소씨 부부를 납치합니다.
지존파는 소씨에게 몸값 8,000만원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경찰 어디에도 알리지 말라고 협박했죠.
소씨는 실제로 지존파를 경찰에 알리지 않았고요. 몸값 8,000만원도 넘겨줍니다. 그리고는 “제발 아내와 딸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원합니다.
하지만 지존파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돈은 얼마든지 줄테니 목숨만 살려달라”는 소씨의 말을 무시하고 부부를 모두 살해하죠.
그리고 나서 사체를 끔찍하게 훼손한 뒤 공장에 준비돼있던 소각장에 시체를 넣고 태워버립니다. 당시 유골을 보면 피해자가 쓰고 있던 안경까지 고스란히 들어가 있습니다.
또 이들은 시신을 태울 때마다 나는 냄새로 동네 주민들에게 의심을 사지 않도록 치밀한 행동을 보였는데요. 소각을 할 때마다 마당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어 냄새를 덮었다고 합니다.
끔찍한 사실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조직파 일원이었던 김현양은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충격발언을 하는데요. “나는 피해자의 시신을 먹었다. 인간이길 포기하기 위해서였다”고 발언했습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존파답기 위한 행동을 일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더 잔혹하고 끔찍한 행동을 한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렇게 지존파는 전국방방 곳곳을 떠돌며 죄없는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치밀하고 끔찍했던 살인자들이 어떻게 잡힐 수 있었던 걸까요?
이는 앞서 잡혀있던 이모양과 김현양의 관계 때문이었습니다. 김현양은 당시 이모양에 대해 연정을 느껴 죽이지 않고 데리고 있었는데요.
실제로 지존파 직원들은 이 때문에 여러 차례 다투기도 했다고 합니다. 김현양의 평소답지 않은 모습에 불만을 나타낸 것이죠.
그때 이모양은 호시탐탐 탈출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김현양이 크게 다쳐 병원에 간 적이 있었는데요. 이때 이모양은 함께 동행하는 척 하면서 필사적으로 탈출하게 됩니다.
이모양은 당시 인터뷰에서 “거기서 죽으나 탈출하다 죽으나 마찬가지니까 한 번 해보고 죽으려는 생각이었다”며 “그게 다른 피해자들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렇게 지존파는 1994년 9월 19일 전원 검거됐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인들은 반성의 기색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존파들은 왜 이렇게 사람들을 죽이지 못해 안달이었을까요? 조직원들에겐 묘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가난한 결손가정에서 자라났고요. 어린 나이 때부터 막노동을 하며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특히 두목 김기환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는데요. 학교에서는 항상 높은 성적을 유지하고 바른 성품을 보였다고 합니다. 또 항상 학교 반장을 도맡아 할 정도로 리더십이 있었죠.
하지만 집이 가난했기 때문에 김기환은 자신이 원하던 공부를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돈을 위해 학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요. 대학에 대한 꿈은 좌절됐죠.
김기환은 어린 시절부터 이미 도덕관념에 대한 회의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공부를 잘 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 거죠.
전문가는 “학교나 사회에서 자신의 롤모델이 될 만한 대상을 찾지 못하거나 또는 빈부의 극심한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과 사회적인 소외감들이 충동적인 행동을 조장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김기환은 실제로 법원에 가는 길에 기자들을 향해 “전두환과 노태우는 무죄인데 나는 왜 유죄냐. 이건 세상 법이 잘못된 것”이라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대법원은 이들에게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요? 지난 1995년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