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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희대의 사기극 간도영유권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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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중국이 동북공정을 본격화하자 우리도 반박하기위해서 나온 간도 영유권




간도문제의 시작은 청나라의 출입금지지역에 조선인들의 월경이 잦아지자 청나라와 조선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합니다


조선시대 숙종시절 청나라와 월경자들에 대한 문제때문에 국경선에 대하여 두 국가는 관리를 파견하게 되죠


이때 백두산 정계비를 세우고 조선과 청은 다시 국경을 재차확인합니다


이때 문제가 되는게 바로 토문강이죠 이 토문강이 쑹화강이냐 두만강이냐로 조선의 국경이 달라지기때문이죠


이때의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접반사 박권이 치계하기를,

“총관(목극등)이 백산(백두산) 산마루에 올라 살펴보았더니, 압록강의 근원이 과연 산 허리의 남변(南邊)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미 경계로 삼았으며, 토문강의 근원은 백두산 동변(東邊)의 가장 낮은 곳에 한 갈래 물줄기가 동쪽으로 흘렀습니다. 총관이 이것을 가리켜 두만강의 근원이라 하고 말하기를, ‘이 물이 하나는 동쪽으로 하나는 서쪽으로 흘러서 나뉘어 두 강(江)이 되었으니 분수령(分水嶺)으로 일컫는 것이 좋겠다.’ 하고, 고개 위에 비를 세우고자 하며 말하기를, ‘경계를 정하고 비석을 세움이 황상의 뜻이다. 도신과 빈신도 또한 마땅히 비석 끝에다 이름을 새겨야 한다.’고 하기에, 신 등은 이미 함께 가서 간심(看審)하지 못하고 비석 끝에다 이름을 새김은 일이 성실하지 못하다.’는 말로 대답하였습니다.” - 숙종실록 51권, 38년(1712) 5월 23일 1번째 기사




이 때의 상황을 보자면 백두산에 원래는 조선측 관리와 청나라(묵극등)이 백두산에 올라가 정계비를 세우기로 했는데 조선측 관리들이 몸아프다고 핑계대고 올라가지 않자 결국 청나라 관리인 묵극등만이 백두산에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대충의 지류만 살피고 정계비를 세우게 되는데 이게 후에 엄청난 떡밥거리를 제공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묵극등은 당시 자신이 본 지류를 대충 살피고 토문강을 두만강으로 인식하게 되고 정계비를 세우고 조선측에서 이당시에는 별 이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후 조선측에서 국경선에 푯말을 세우기 위해 찾아왔는데 여기서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때의 일을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는데




이때 함경 감사 이선부가 백두산에 푯말 세우는 역사를 거의 다 끝냈다는 뜻으로 계문하였다. 겸문학 홍치중이 일찍이 북평사로서 푯말을 세우던 초기에 가서 살펴보고, 상소하여 그 곡절을 진달하기를,

“신이 북관에 있을 때 백두산의 푯말 세우는 곳을 살펴보았습니다. 대저 백두산의 동쪽 진장산(眞長山)안에서 나와 합쳐져 두만강이 되는 물이 무릇 4갈래인데, … (중략) … 그 가장 북쪽의 첫번째 갈래는 수원이 조금 짧고 두 번째 갈래와 거리가 가장 가깝기 때문에 하류에서 두번째 갈래로 흘러 들어 두만강의 최초의 원류가 된 것이고, 청차가 가리키며 ‘강의 원류가 땅속으로 들어가 속으로 흐르다가 도로 솟아나는 물이라.’고 한 것은 첫번째 갈래의 북쪽 10여 리 밖 사봉(沙峰)밑에 있는 것입니다. 당초 청차가 백두산에서 내려와 수원을 두루 찾을 때 이 지역에 당도하자 말을 멈추고 말하기를, ‘이것이 곧 토문강의 근원이라.’고 하고, 다시 그 하류를 찾아보 지 않고 육지로 해서 길을 갔습니다. 두 번째 갈래에 당도하자, 첫번째 갈래가 흘러와 합쳐지는 것을 보고 ‘그 물이 과연 여기서 합쳐지니, 그것이 토문강의 근원임이 명백하고 확실하여 의심할 것이 없다. 이것으로 경계를 정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상이 여러 수원의 갈래로 경계를 정하게 된 곡절의 대략입니다. - 숙종실록 52권, 38년(1712) 12월 7일(병진) 3번째 기사




그리고 이어서 기록을 보면




신이 여러 차사원들을 데리고 청차가 이른바 강의 수원이 도로 들어가는 곳이란 곳에 도착하자, 감역(監役)과 차원(差員) 모두가 하는 말이 ‘이 물이 비록 총관이 정한 바 강의 수원이지만, 그때는 일이 급박하여 미처 그 하류를 두루 찾아보 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푯말을 세우게 되었으니 한 번 가 보 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이 허(許)와 박(朴)【거산 찰방 허양과 나난 만호 박도상이다.】 두 차원을 시켜 함께 가서 살펴보게 했더니, 돌아와서 고하기를, ‘흐름을 따라 거의 30리를 가니 이 물의 하류는 또 북쪽에서 내려오는 딴 물과 합쳐 점점 동북을 향해 갔고, 두만강에는 속하지 않았습니다. 기필코 끝까지 찾아보려고 한다면 사세로 보아 장차 오랑캐들 지역으로 깊이 들어가야 하며, 만약 혹시라도 피인(彼人)들을 만난다면 일이 불편하게 되겠기에 앞질러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대개 청차(목극등)는 단지 물이 나오는 곳 및 첫 번째 갈래와 두 번째 갈래가 합쳐져 흐르는 곳만 보았을 뿐이고, 일찍이 물을 따라 내려가 끝까지 흘러가는 곳을 찾아보 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본 물은 딴 곳을 향해 흘러가고 중간에 따로 이른바 첫 번째 갈래가 있어 두 번째 갈래로 흘러와 합해지는 것을 알지 못하여, 그가 본 것이 두만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인 줄 잘못 알았던 것이니, 이는 진실로 경솔한 소치에서 나온 것입니다. … (중략) … 대저 목책이 끝나는 곳은 바로 국경의 한계가 나누어지는 곳입니다. 두 나라의 경계를 정하는 일이 얼마나 중대한 일입니까. 그런데 한 두 차원의 뜻만으로 조정에서 알지도 못하는 물에다 강역을 제멋대로 정했으니, 이는 마땅히 징치하여 강토에 관한 일을 중히 여김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강의 수원에 관한 한 가지 일은 또한 묘당(廟堂, 의정부)으로 하여금 보다 좋은 대로 잘 처리하게 하소서.”하니, 임금이 묘당으로 하여금 품처하라고 명하였다. 영의정 이유가 연석에서 아뢰기를,

“목차(목극등)가 정한 수원은 이미 잘못된 것인데, 차원들이 감사에게 말하지도 않고 평사의 지휘도 듣지 아니한 채 멋대로 푯말을 세웠으니, 일이 지극히 놀랍습니다. 청컨대 잡아다 추문하고, 감사도 또한 추고하소서.”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 같은 기사




무슨말인고 하니 묵극등이 파악한 물의 지류가 두만강으로 흘러들어가기는 커녕 저 멀리 만주 지역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목긍등의 실수로 인해 벌어진 일이였죠 청 관리의 졸속한 처리로인해 벌어진일이엿습니다


조선에서는 이를 다시 수정할려했었고요


이후 정조실록에 대한 기록들을 보면


정조실록 2년 1월 13일 '대개 압록강(鴨綠江)·두만강(豆滿江) 두 강의 근원은 다같이 백두산에서 나와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져 흐르다가 바다로 들어가게 되었으니, 이는 곧 우리 나라의 경계(境界)입니다.'
정조실록 7년 12월 8일 ' 두만강(豆滿江) 이북은 곧 우리 땅이 아니므로'


네 시간이 흘러 정조대에서도 조선의 국경을 압록강~두만강이라고 나와있죠


조선중기때부터 고종때까지 조선에서 제작된 지도들도 한번보겠습니다







모두 국경이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돼있습니다 조선 후기에 제작된 대동여지도를 포함해서 말이죠


그럼 조선이 왜 간도 영유권을 주장하게 됐냐?


이건 고종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고종 재위 시절 개화 이전까지 청나라가 자기네 땅으로 넘어온 조선인 월경자들을 돌려보내면


조선 조정에서는 그들을 처형시켰습니다. 그때까지 청의 속국이었으니깐요


하지만 일본에 의해 개화되고 자주국임을 선포하고 나서 이후에 청나라가 일본한테도 깨지는 모습을 본 고종은


자신도 뭔가 해볼 만할 거 같다고 판단하여 19세기 끝 무렵부터 간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게 됩니다.


사실 그 이전까지 조선은 단 한 번도 간도에 관리를 파견한다거나 징세를 한 적이 없었는데 이때 처음으로 관리를 파견하게 됩니다.


그렇게 청과 간도문제로 일이 커지자 그때 일본이 개입합니다.


결국 청은 자기들 땅을 입증하는 대신에 일본에 남만주 철도권을 넘겨주는 굴욕을 당해야 했죠


간혹 간도는 빈땅인데 그곳에 조선인이 건 나가 살았으니 조선 땅이지 않느냐고 하시는 분들 있는데


간도 지역은 빈 땅인 적이 없습니다 만주족이 쭉 살아온 땅이었습니다


흔히들 봉금령에 대하여 잘못 알고 계시는데 봉금령이 실행된 계기는 청나라 강희제 때부터 시작됩니다


1668년 강희 7년, 황폐화된 요동을 다시 개발하고자 이전에 반포한 요동초민개단령을 확대하여 한인(중국 한족)들이 요동 쪽으로 대거 이주하게 됩니다.


적극적으로 추진하다 보니 요동 쪽에 인구가 대폭 증가하고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수만큼 증가하자 한인들은 만주까지 넘어가 이주하게 됩니다.


이로 인하여 지속적으로 이주해오는 한인들 때문에 생계에 위협을 받는 기인(여진족)들이 항의하자


1740년 건륭 5년, 봉금 정책을 실행하여 더 이상 한인들이 만주에 이주해오는 걸 막으려고 시도합니다. 즉 봉금령은


신성한 조상들 땅이어서 아무도 살게 한 게 아니라 한인 이주자들이 크게 불어나 여진족들의 생계가 위협을 받아


한인들의 이주를 막으려고 실행한 정책이었습니다 물론 정책으로 막으려 해도 한인들은 계속 만주로 이주해왔고요


그러다가 러시아한테 연해주를 넘겨주고 나서 봉금 정책을 폐지하고 이주하는 걸 다시 허용했습니다


즉 만주나 간도는 빈 땅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또한 1881년에 이르러서는 월경한 조선인들을 더 이상 쫓아내지 않고


귀화하도록 회유하고 청나라 사람으로 만들려고 적극적으로 나서게 됩니다 이후 두만강 이북 해란강 이남에 4보 39사를 설치하고


월경한 조선인들을 청나라사람으로 귀화시키고 그들을 실질적 관리하게 됐습니다.


요약하자면 간도는 빈 땅이었던 적이 없었고 1881년 이후에는 조선인 월경자들을 더 이상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귀화시켜 청나라 사람으로 인정하고 실질적 지배를 해옴.


즉 월경자들은 더 이상 조선 사람이 아니라 청나라 사람이 된 거죠


이러한 사실들은 조선사를 전공하거나 연구를 했다면 바로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일부 편협한 역사학자들이나 강사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민족주의적 사관 때문에 대중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며


간도는 한국 땅이라는 인식을 퍼트렸습니다


그 결과 2000년대 후반까지 역사 교과서에서 간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문구들이 꽤 있었지만 현재는 그냥 분쟁만 있었다고 표현돼있죠


이러한 사실들을 보면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보다 더 근거 없는 주장인데 불구하고


아직도 간도가 한국 땅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일본은 적어도 조선을 강제합병하여 독도를 수십 년간 지배했지만


조선은 단 한 번도 간도에 대한 영유권이 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3줄 요약

1. 조선왕조실록 숙종, 정조편에서 조선의 국경을 압록강~두만강이라 주장 (이시기에 제작된 지도들에서도 확인가능)

2. 조선은 간도에 대하여 실질적으로 지배한적도 없었으며 1870년대까지 청에서 돌려보낸 월경자들을 처형했다.

3. 간도영유권이 만들어진 계기는 고종의 제국주의적 야욕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국 실패되었다.

Best Comment

BEST 1 이름없음56  
조선땅도 아닌데 중국은 왜 철도부설권까지 넘겨가며 일본과 간도협약을 맺었냐
BEST 2 오라오라라  
이런 자료들이 주작일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BEST 3 촵촵  
조선 관리들 ㅈ같이 일한건 예나 지금이나
10 Comments
키다리현수 2020.02.04 10:33  
지랄마 독도이슈에 묻혀서 그렇지 대마도랑 간도도 전부 우리땅맞다 ㅇㅇ 그저 나라가 힘이 없다는게 한탄스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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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배럭 2020.02.04 11:12  
[@키다리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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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dfaw33294 2020.02.04 15:08  
[@키다리현수]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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촵촵 2020.02.04 11:06  
조선 관리들 ㅈ같이 일한건 예나 지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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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판독기 2020.02.04 11:06  
숙종때 백두산 정계비에는
서쪽 =압록강
동쪽 =토문강 아니냐?
내가잘못알고있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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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2020.02.04 11:27  
[@논란판독기] ‘토문’ 을 조선은 저 위쪽 토문강으로
청은 두만강으로 해석했다는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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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드다리오 2020.02.04 15:13  
[@논란판독기] 그건 맞는데 토문을 어떤 강으로 해석했느냐 문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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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바휘바 2020.02.04 13:46  
매국노가 댓들 비추박고댱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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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음56 2020.02.04 17:35  
조선땅도 아닌데 중국은 왜 철도부설권까지 넘겨가며 일본과 간도협약을 맺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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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오라라 2020.02.04 22:56  
이런 자료들이 주작일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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