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역사상 최고의 모사꾼이라고 평가받는 인물 가후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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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2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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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섬기던 군주를 갈아타거나, 주군의 후계자를 섬기게 되면 작게는 이전만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것부터 심하게는 다른 신하들의 비방과 견제, 극단적으로는 새 군주의 끝없는 의심으로 관직을 내놓거나 별 것 아닌 이유로 숙청당하는 무수한 사례들을 역사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후는 우보(동탁의 사위)의 속하로 있으면서 관직을 차근차근 올려갔고, 이후 이각, 단외, 장수, 조조, 조비까지 한 번도 내쳐지거나 억울하게 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군주에게 믿을만한 조언가 이상의 힘을 탐내거나 다른 형태의 보상을 받으려고 발버둥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군주의 권위에 기대되, 파벌을 만들지 않고, 그러면서도 애써 자기 역량을 너무 감춰서 반대로 자신이 가볍게 보이지 않는 선을 굉장히 잘 지킨 인물입니다.
1. 이각의 휘하에서 일파가 장안을 접수하고 공을 인정해서 좌풍익에 봉하고 제후에 봉하려 하지만 '본인'이 고사하고, 상서복야(상서의 우두머리 상서령 바로 밑의 관직이니 상서령=행정부장관, 상서복야=차관은 아니고 행정부 부장관? 정도)라는 직위를 주려하자 이 또한 완곡히 거부하죠. 그래서 3번째로 상서(행정부 수석비서+인사부장)를 주니 그제야 받아들입니다. 왜? 그 정도의 직책이면 충분히 이각네 패밀리에서 목소리를 내면서도 제후라는 화려한 작위에 눈초리를 받지도 않고, 상서복야라는 하나의 기관 총책임자라는 자리는 조건만 맞으면 이각 정권의 분위기상 언제든 내쳐질 수 있는 위험한 자리인 것을 알아본 것이죠.
2. 단외에게 의탁하기 전에는 천자의 탈출을 막후에서 도와주며 성공까지 시킨 후, 미련없이 관직과 인수를 돌려바쳐서 차후 이각 정권의 붕괴시 공격받을(어느 세력이든 이각정권을 붕괴시킨 세력에 의해) 단초를 잘라두는 치밀함도 보입니다.
3. 단외에게 가서는 명성 때문에 오히려 단외 본인의 권위가 실추될 것을 불안해하는 것을 역으로 감지하고 단신으로 장수에게 가서 의탁합니다. 그러자 단외는 눈앞에 가후는 멀어지고 장수라는 외부세력과 결탁하게 된 것을 행복해하며 가후의 식솔들을 잘 돌봐주었다고 합니다. (그걸 알아도 혼자 장수에게 가는 도박수를 미련없이 실행한 게..)
4. 이후 장수-유표 연합을 추진하나 197년 조조에게 별다른 전투없이 항복합니다. 여기에는 2가지 숨은 이유가 있는데, 이 시기면 한참 조조가 헌제를 끼고 부상한 정부군의 포지션을 차지하며, 애초에 장수의 숙부인 장제는 유표와 싸우다가 죽었기 때문에 서로 믿음의 크기가 크지 못했기에 장수+유표 vs 조조(헌제)가 전면전으로 비화되면 장수네가 가장 큰 출혈을 감당하고 만약의 경우 팽당할 위험도 컸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유명한 추씨 부인 사건으로 장수가 다시 독자 군벌로 나간 이후, 200년이 될때까지 3년을 토벌당하지 않은 데는 가후가 군을 절묘히 조율한 덕이 큽니다. 이 3년 동안 원술, 여포, 유비(서주)가 다 터지고 관도대전까지 시작되는 대격변의 시기였는데도 불구하고 장수+가후가 조조에게 먼저 공격당하지 않은데는 눈에 거슬릴 짓거리를 안하고 양성에서 가만히 웅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여타 군벌들과 비교해보았을 때 조조에게 기습으로 가장 심대한 피해를 준 것도 사실이지만 세력면에서는 원술, 여포, 유비보다도 부족한 최약체였기에 오히려 나대지 않고 조조네 세력의 역량을 조용히 관측하며 보낸 것이죠.
그리고 관도대전이 벌어지고 원소에게서 영입요청이 오자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는 장수를 설득해서 조조에게 귀부합니다. 그리고 그 보상으로 집금오(황궁수비대장)의 자리를 받죠. 이건 조조의 통큰 구애가 맞는 점이, 관도대전이라는 빅 이벤트 때문에 휘하의 가신들과 모든 모사들이 전방에 나가있었고 오직 순욱만이 허도에서 상서령으로 헌제-조조의 가교역할 겸 후방지원총괄을 맡고 있었는데 덜컥 항장을 헌제 감시의 눈으로 삼는 결정을 한겁니다. 이건 가후의 능력과는 별개로 조조가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판단했다는 점이 대단합니다.
5. 조비가 황제가 되고 가후를 태위로 삼는데, 일식이 관측되자 이는 천문을 담당하는 태위의 실책이니 면직시켜야한다고 하자, '재해나 이변이 출현하면 그 우두머리(즉, 조비 자신)를 견책하는 것이거늘, 신하들에게 허물을 돌리는 것은 의로움과 부합되겠는가?'라며 그대로 유임시켰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