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뒈지고 싶어서 환장한 조선 후기 한 어그로꾼의 이야기

에그몽 5 3559 14 0

조선 후기의 정조 시기에 활동했던 김하재라는 관료가 있었음. 


여타 다른 관료들처럼 김하재 역시 별 특별한 점은 없었던 관료였음. 그러나 그가 1784년에 일으켰던 황당한 사건은 당시 조정을 한바탕 뒤흔들어놨고 곧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어이없는 사건 중 하나라고 불릴 정도로 파급력 역시 어마어마했음.


1784년 6월 20일에 이조 참판이었던 김하재는 유배당한 윤득부를 옹호하다 파직을 당함.


그런데 그로부터 1개월 후인 7월 28일, 영희전(역대 국왕들의 어진을 보관했던 장소) 고유제의 헌관으로 있던 김하재는 예방 승지 이재학에게 조그마한 쪽지를 건내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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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재: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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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학: ???? 이게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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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정조 욕하고 까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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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학: ??????????? ㅅㅂ 내가 뭘 본 거냐


쪽지를 받은 이재학은 경악했음. 왜냐하면 그 쪽지에는 당대 국왕인 정조의 부덕함을 욕하고 비방하는 글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

<"김하재는 (...) 종이쪽지를 꺼내어 예방 승지 이재학에게 넘겨주었다. 이재학이 펼쳐보니, 전부 임금에 대한 욕설로서 역사책에 볼 수 없었던 지극히 아주 참혹하고 아주 패악하고 흉악한 말들이었다."> 

- <정조실록>; 1784년 7월 28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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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의 기록을 보아 당시 김하재는 상상도 못 할 정도의 수위높은 욕설만 골라서 정조를 욕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재학은 바로 쪽지를 정조에게 건네줬고 쪽지를 본 정조는 크게 분노함.

<"천지에 백성이 생긴 이래로 이렇듯 흉악한 글은 일찍이 없었다. (...) 나라에서 그에게 무엇을 잘못하였기에 이런 때를 마침 맞아서 차마 이렇듯 천고에 없는 변고를 저지르는가? 일찍이 듣건대, 그에게는 미치광이 증세가 있다고 하였는데, 결코 상정(常情)으로는 할 수 없는 짓이다. 시간을 조금 연장시켜 그가 스스로 죽게 만든들 무슨 방해될 것이 있겠는가?">

- <정조실록>; 1784년 7월 28일자 기사 

정조는 하도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과거에 김하재는 미치광이 증세가 있었는데 그게 도져서 이런 비정상적인 행동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할 정도로 어지간히 충격이 컸던 것으로 보임.

이 때 김하재의 글이 당대 입장에서 얼마나 흉악스러웠는지는 김하재를 국문했을 때 정조 본인의 발언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음.

<"흉서(凶書)에서 말한 것은 너무나 흉악하고 너무나 극악한 말들이 아닌 것이 없는데, 병,신년 이하의 한 구어(句語)는 곧 이천해(李天海) 등도 말하지 않았던 흉악한 말들이다.">

- <정조실록>; 1784년 7월 28일자 기사 

여기서 이천해는 영조 즉위년에 영조에게 대놓고 경종한테 게장 먹여서 독살한 살인마라고 외쳤다가 목이 잘린 사람임. 그런데 그 이천해가 했던 말을 초월할 정도로 글의 정도가 심하다고 정조가 언급할 정도이니 당시 김하재의 글이 얼마나 극악무도했었는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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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빡친 정조는 바로 국청을 열어 김하재를 국문함. 그리고 어째서 이런 흉서를 지었는지 물었는데 김하재의 답변은 황당하기 그지 없었음.

<"김일경(金一鏡)이 갑진년에 죽었는데, 올해가 바로 갑진년입니다. 신은 나쁜 이름을 만대에 남기려고 하며, 김일경과 같은 심장(心腸)인 까닭에 이런 일을 벌였습니다.">

- <정조실록>; 1784년 7월 28일자 기사 

좀 더 쉽게 풀이해 보자면 "역적 김일경이 죽은 해가 갑진년인데 올해가 곧 갑진년이어서 나도 김일경과 같이 만대에 악명을 널리 떨치려 했다"가 되는데 한마디로 "나도 역적이 되어서 죽고 싶다"라는 뜻임. 

(여기서 김일경은 영조에게 억울하게 역적으로 몰려 사형당한 사람이지만 어쨌든 역적으로 처형되었으니 정조 시기에도 그는 역적의 수괴로 알려져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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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딴 미친 소리를 들은 정조는 황당해 하면서 왜 역적 김일경과 같은 행보를 따르려 하냐고 물었음. 그러자 김하재는 높은 자리에 있었을 때는 이런 불순한 마음이 없었지만 좌천된 후 더 이상 벼슬길을 행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불순한 의도를 품었다고 대답함.

정조는 26차례나 김하재에게 형문을 가하면서 공초했지만 김하재의 대답은 한결같았음. 

<"글은 모두 저 스스로 작성한 것입니다. 신은 스스로 난신적자가 될 줄 알면서도 김일경을 본받아 악명을 떨치고 죽고 싶어서 이런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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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소원대로 김하재는 목이 잘리고 그의 집은 철거되어 연못터로 변했으며 가족들은 노비로 전락하고 말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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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재가 대체 왜 이런 짓거리를 저질렀는지는 여전히 의문임. 더구나 이 때 김하재는 소론도 아니고 노론이었음. 노론인 사람이 소론의 역적이었던 김일경을 본받아 죽고 싶다고 하니 그냥 어이가 없을 따름.

김하재 본인의 진술에 의하면 벼슬길이 막혀서 그랬다고 하는데 정작 이 파직 자체는 김하재가 뭘 크게 잘못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몇 달 후면 다른 참판에 제수될 가능성이 컸고 최소 당상관으로까지 제직할 수 있었음.

또는 정조가 준론 탕평을 고수하면서 김하재 자신이 아니꼬와하던 소론 및 남인 인사들도 동등하게 대하자 이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을 것으로도 추정되고 있음.

상술했듯 김하재는 남인 계열인 체제공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리다 도리어 유배를 당해버린 윤득부를 옹호했다가 본인 역시 파직당한 적이 있었음. 즉,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정조에게 저런 편지를 써서 김일경과 같은 악명을 떨치고자 한 것과 동시에 정조의 준론 탕평을 반대하는 자신의 입장을 극단적으로 표현했다는 것. 

물론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추정에 불과하니 결국 김하재가 왜 저런 짓을 저질렀는지는 김하재 본인만이 알 것임.

5 Comments
나연vs아이유 2021.12.15 20:24  
미스터리 게시판 잘보고있습니다 업로더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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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티콘으로말해요 2021.12.16 10:13  
ㄹㅇ  이게 분조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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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남매아빠 2021.12.16 10:27  
재미난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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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 2021.12.17 17:26  
가족은 뭔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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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fge 2021.12.25 22:51  
임란이후 조선후기 인구가 2천만까지 늘어나는데 4,5년에 한번 십수명 뽑는 시험에 합격한 자들의 벼슬길에 대한 노력과 집념, 집착을 무시하면 저런 미친넘이 튀어나왔나 보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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