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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의 한족 뽕이 불러온 참상 : 국사 필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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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읽어본 사람들은 한족 얘들이 얼마나 가문에 죽고 못 사는지 알 거임. 원소의 원씨 가문도 가문이고, 관료들 중에서도 청류니 탁류니 나눠서 탁류 개무시 까고 그런건 일상이었는데

8왕의 난과 영가의 변으로 북쪽 지역을 오랑캐들한테 먹히고, 중국은 이민족의 북조와 한족의 남조로 나뉨. 그리고 시간이 흘러 북조의 북위와 남조의 송으로 양분되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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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에는 한족 출신 관료로 재상이 된 최호 라는 사람이 있었음.

군재가 대단해서 북위 태무제가 여러 전쟁을 통해 북조를 완전히 평정하는데 최호의 계책이 큰 역할을 했음. 그래서 태무제의 신임이 대단했고 오죽했으면 대체로 불교과 우세했던 북조 내에서 최호가 구겸지를 신임하고 도교를 밀면서 도교가 국교의 위치 까지 오르게 되고, 불교는 폐불이 단행될 정도

태무제는 신임했던 최호에게 북위의 역사서를 써달라고 명령을 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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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근데 한족이 붓을 들면 또 한족 뽕 못 참지
엄정한 유교적 명분론에 따른 춘추필법으로 말타고 뛰돌며 쥐 잡아먹건 선비족 오랑캐 시절부터 하여 북위의 선조들 역사를 있는 그대로 상세하게 묘사해버림. 

그렇게 딱 북위의 역사를 저술하고 완성을 했는데 사실 여기서 멈췄다면 큰 문제가 안 생겼을 수 있음. 태무제야 자기가 믿던 신하에게 부탁한 것이니 얼마나 신경 썼겠으며, 당시 한화정책 전으로 아직 야인의 기풍이 남았던 북위 선비족들은 역사책엔 별로 관심도 없어서 그냥저냥 묻혔을 수도 있음

근데 최호가 뜨니까 그 옆에 붙었던 여러 제자 및 간신배들이 오바를 해서 사고를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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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렇게 엄격하게 저술한 훌륭한 역사를 궁궐 문 앞에 비석으로 세워 모든 사람들이 보게 하시죠!"

최호도 또 한족뽕 한 사발 마신 상태라서 좋다고 비석 조각 하고 궁궐 문 앞에 세움

마치 이 글을 보고 있는 펨붕이가 나중에 대통령이 되었는데 자서전 써달라고 맡겼더니 "이 펨붕이는 과거 펨코 알등이었고, 30세 까지 모쏠 아다였다." 라고 적어서 자서전도 내고, 청와대 앞에 비석으로 조각해서 세운 셈이지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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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에 세웠으니 선비족 귀족들도 오가며 봤을 것이고, 또 걔들은 글 별로 안 좋아하니까 어디 읽었겠음. 첫줄 조금 읽고 말려고 했을텐데 

북위 선조들의 쪽팔린 흑역사들이 어디 적혀있겠음. 다 첫 페이지에 적혀 있지 ㅋㅋㅋㅋㅋ

바로 태무제 귀에 들어갔고 아주 꼼꼼하게 점검해보니 와 이거 한족 뽕 차서 선비족 무시하고 이상하게 쓴게 맞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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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믿던 측근이었기에 태무제는 배신감이 더 폭발했고, 한족들 귀족 뽕 좀 뽑아야겠다고 

최씨 일족은 물론 그 가문과 친인척 관계로 묶여 있던 귀족 가문에서 100명 넘는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사관 제도도 폐지됨 


그와중에 황제와 백성들의 존경을 받던 도사 구겸지는 최호가 백이라는 소문에 몰락하고 다시 불교가 융성함 


이 사건이 바로 한족 귀족 가문에 대한 북조 황실의 절대우위가 이루어진 국사필화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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