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팔아서 세계정복한 나라
# 청어 뼈 위에 세워진 네덜란드
청어가 회유 경로를 바꾸자, 네덜란드가 새로운 청어 상업망의 중심으로 급부상했다. 네덜란드는 어떻게 이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까?
본래 북유럽의 스코네 해안에서는 연안에서 끓어 넘치는 청어를 퍼올려서 곧바로 인근의 항구에서 가공을 하는 간단한 과정을 거쳤다. 반면 환경이 따라주지 않은 네덜란드인은 더 어려운 방식을 울며 겨자먹기로 채택해야했다. 청어가 앞 바다에 알아서 오길 기다리지 않고, 직접 먼 바다의 청어를 향해 뱃머리를 돌렸던 것이다.
이것은 기실 어쩔 수 없이 행해진 것이었으나, 회유 경로가 바뀐 지금은 기회가 되었다. 자연은 무시무시한 변덕을 부려 (스코네 어시장과 뤼베크 자유시의 번영을 포함한)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지만, 동시에 어떤 인간들은 그 변덕 이전에 미리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인간의 준비는 환경의 유불리마저 뒤집을 수 있다. 마치 서쪽 변방이라는 지리적 한계로 인해 지중해 무역에서 소외되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지리 상의 발견을 주도 한 뒤 자신들의 환경을 '신대륙에 가장 가까운 전초기지'로 바꾸어 놓았듯.
15세기에 새로 도입된 뷔스(buss)라는 원양 어선은 대선단을 이루어 장관을 펼쳤다. 이 배들은 길이 약 20m에 배수량은 거의 100톤에 달하지만 무엇보다 민첩하고 안정성이 높았다.
뷔스 선단은 무려 400~500척 규모로 어장에 향했는데, 타 국가(특히 영국)의 어선 나포를 방지하기 위해 해군 선박의 호위를 대동하였다. 이것이 바로 네덜란드의 국운을 건 위대한 어업(Great Fishery)이었다.
뷔스 선단은 이동하는 청어들을 따라 스코틀랜드 북부의 셰틀랜드 제도에서 시작하여, 영국 동해안에 위치한 도거 뱅크와 도버 해협을 거쳐 아일랜드 인근 해역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움직이며 조업을 했다. 그렇게 잡은 청어는 곧바로 갑판 위에서 내장이 제거되어 보존성을 높였다.
청어의 바닷길을 따라 형성된 어시장 근처 모래벌판 각지에는 임시 움막이 세워져, 그곳에서 어린아이들이 청어의 내장을 제거하고 염장해서 통에 차곡차곡 담았다. 숙달된 작업자들은 무려 1분에 청어 40마리의 내장을 처리할 수 있었는데, 한 순간의 실수로도 평생 불구가 될 수 있었다.
점차 네덜란드의 여러 어촌들이 서로 연합하여 대어장에서의 어획, 보존, 그리고 유통 일체를 독점하기 시작했다. 십수명 가량이 승선할 수 있는 뷔스는 17세기초에 이르면 무려 800여 척이었고, 청어잡이에 종사하는 어부의 수만 하더라도 1만에 육박했다. 한 해에 3만여 통이 넘는 청어가 쏟아져나왔다.
네덜란드의 청어 어획은 국책사업이니만큼 체계적이고 철저한 규칙에 따라 이루어졌다. 정부와 어업협회는 청어잡이에 대한 세세한 규칙을 하나하나 지정하여 품질을 보장하는 데 혈안이 되어있었다. 통에 청어를 몇 마리 담는지는 물론이고, 그 통을 어떤 크기의 널빤지를 몇 개 사용하는지, 그물눈의 크기는 어느정도여야하는지 모든 것이 규정에 따라 이루어졌다. 네덜란드는 청어 뼈 위에 건설되었지만, 청어 어업은 네덜란드에 의해 주조되었다.
네덜란드인은 청어 무역으로 얻은 이익을 다른 영역인 대서양의 노예 무역, 동방의 향신료 무역, 그리고 금융업에 재투자하였다. 스페인으로부터의 속박을 끊고 독립하는 과정(80년 전쟁)에서 네덜란드인은 갖가지 사전회사(社前會社, Voorcompagnie)들을 설립하여 이익될만한 곳이라면 세계 어디든 들쑤시게 되었다. 어떤 사전회사는 포르투갈의 후추 무역 독점을 파괴하는 데 전념했는데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을 네 배로 돌려주었다.
17세기는 이름하야 네덜란드 황금기(Dutch Golden Age)였다. 1602년, 정부 주도하에 여러 사전회사들이 헤쳐모여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VOC)가 설립되었으며, 그 직후 암스테르담에서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출범하여 전국민의 투자를 촉진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훗날 자체적인 주화를 주조하고, 독자적으로 식민지를 전개하고, 전쟁을 선포하고, 범죄자들을 처형시키는 등 국가에 준하는 권력을 휘두르며 아시아의 해외 무역에서 다른 모든 경쟁자들을 무릎 꿇릴 터였다.
그러나 영국은 자기네들 앞바다에서 부를 싹쓸이 해가는 네덜란드를 가만 보고 있지 않았다. 호국경 올리버 크롬웰은 항해조례(Navigation Act 1651)를 선포하였다. 항해조례는 콕 짚어 '외국 선박이 절인 생선을 수출입'하는 것을 금지했다. 위반하면 몰수였다. 그리고 네덜란드는 청어를 빼앗기느니 전쟁을 선택했다.
끊임없는 영란전쟁, 네덜란드 패권 몰락의 시작이었다.
ㅊㅊ- https://www.fmkorea.com/best/7612814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