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상업 발달이 늦은 가장 큰 이유
에그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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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8 22:24
바로" 환곡"
물론 저거 하나만 원인이라 볼 수는 없지만, 상업 발전의 필요 충분조건이 잉여 자본의 확보라는걸 볼때, 상당히 큰 지분을 가지고 있음.
얼마나 착실히 쌓아놨는지, 성종 실록에 의하면 환곡미가 대략 600만석 정도인데 당시 전세가 약 170만석임.
양난 이후에는, 무려 1000만석에 이르기까지...
"환곡은 세입의 3배는 되야 한다" 라는 말이 결코 허풍이 아닌거
문제는 저 막대한 쌀을 구휼외의 목적으로는 거의 안 썼다는 것.
가뭄들거나 재해 발생했을때 빼서 쓰고, 그것도 다시 채워넣고... 이게 조선 특유의 저 세율과 합쳐져서 대규모 소비는 꿈도 못꾸게 됨 (예산의 3년치를 저축하려면 9년이 든다는 말이 있을 정도)
후에, 대동법으로 어마어마한 환곡미가 시장에 흘러들어가게되는데 이게 공인과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미약하지만 조선의 상업을 발전시키게 됨.
한 마디로, 저 세율로 남긴 쌀이 어디로 갔나? 다 환곡제도 창고로 들어감.
쓰다보니 환곡을 까는 투로 읽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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