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인재욕사과]
관련학과 아니어도 자기 스스로 국가 경제를 원시 농경시대로 되돌려놓으면 국력이 작살날수밖에 없다는것정도는 알 수 있지 않음? 고려조까지 융성했던 상업을 자기손으로 완전히 다 무너트려놓고 국가의 핏줄인 도로 및 가도들을 전부 다 허물어서 지역간 물류 또한 전적으로 바닷길로만 하게 만들어놨는데 국력이 센게 이상한거고 상업이 완전히 무너져버렸으니 해외문물이 들어오기가 요원해서 일본한테 완전히 추월당한거지
[@힐노예]
황건적은 고려조에 성했으니 그런거고, 왜구는 명나라 해금령때문에 급감한거다. 조선이 잘나서 그런줄아나보네. 뭐 제도가 잘 정비돼? 제도 잘 정비된 나라에서 금난전권이 말이나 되는 소리냐? 전쟁이나 국가대소사는 사람이 아니라 산업기반이 가장 중요한데, 철강과 같은 주요산업을 국가가 아닌 민간에서 가내수공업에 의존하는 예수님 태어나기 이전에나 할 짓을 하던 나라가 제도가 잘 정비가 되어있어?
[@ㅋㅋ무삼파]
전기때는 아직 유교체계가 완전하지 않은때라 나라만 조선이고, 국교로 성리학이 선택되었을뿐이지 고려와 크게 차이나는건 없었음. 또 이때 조선의 정치구성세력은 훈구파, 즉 옛 고려문신과 개국공신들이었기에 고려적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었음. 비록 말년에 얘들도 맛이 가버려서 정화될 필요가 있었는데 그렇게 등장한데 사림파.
조선이 비로소 유교국가로 바뀌게 된건 임진왜란 이후 국가체제가 완전히 무너지면서 새로운 기강을 잡기위해 삼강행실도와 같은 유교를 장려하면서 진정한 유고국가로 탄생하게 된것. 사실 여기까지는 별 상관이 없음 성리학은 망가진 국가를 부흥하는데 꽤나 탁월한 학문이었음.
다만 조선이 맛가기 시작한것은 17-18세기들어 당쟁이 심화되고 당론에 의해 임금이 휘둘린 시점부터. 이전까지 임금, 언론, 조정간에 미묘하게 상호견제되어가던 시스템이 붕괴되고, 임금보다는 산림출신의 대학자(송시열 등)가 존중받으며 조정이 학연(남인, 서인)으로 결집되고 이것이 더더욱 파폐해지며 혈연(세도정치)이 국가결정을 좌우하는 것에 이른것.
그런데 조선이 이렇게 당론에 의해 좌지우지된것도 결국은 임금의 능력이 부족한 탓도 있었음. 영조 이전의 왕들은 이들 관계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어느 당론이 채택되면 다른 당을 아예 괴멸(환국)시켰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견제세력이 없어진 당파의 입김이 높아질수밖에 없었고, 영조또한 탕평책으로 이들을 봉합시키겠다거 알려진 성군으로 알려졌으나 사실 얘도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간 사건을 보면 알듯이 집권세력의 눈치를 보면서 살살 굴려준것 뿐. 정조대에 와서야 정조가 왕이 될줄 몰랐던 노론들이 영조의 사도세자사건때문에 괜히 찔려서 정조 눈치를 보게되었는데 영리한 정조가 이를 잘 활용함. 가만 후계문제가 완전하지 않았기에 정조사후 다시 망가지기 시작한거. 그 후로는 개인적으로 효명세자에게 기대를 했으나 단명해버려 결국 조선은 복구불가상태로 고종대까지 이어짐. 고종대에 잃어버린 왕권을 찾아왓으나 결과는 알다시피 이미 늦어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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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계자를 제대로 세우고 갔더라면도....... 큰 떡밥이지
아! 대북방전쟁에서 동원력은 고려가 낫긴했을듯...요나라를 개박살냈으니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