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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 가장 세종답지 못했던 순간

에그몽 3 3076 15 0

1F96E66E-8EA2-45F4-BC50-E99BDB287C0B.jpeg 세종대왕이 가장 세종답지 못했던 순간
 

바로 훈민정음 창제 후, 반포 까지의 싸움

온 나라의 관리며 사대부들이 벌때 같이 들고 일어나 반대하는데

사실 세종은 원래 신하들과 정책을 논할 때 굉장히 논리로 대하고 학문적 탐구와 토론을 즐겼던 군주로

왕의 권위로 찍어 누르거나 신하들을 위협한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음.


그러나...


7EBA5D9E-BF83-41CB-83DF-0D8316D4C5C2.jpeg 세종대왕이 가장 세종답지 못했던 순간
 
훈민정음에 반대하는 것에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찍어누름


"너희들이 설총은 옳다 하면서 군상(君上)의 하는 일은 그르다 하는 것은 무엇이냐."

왕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이냐고 권위에 호소하고


"네가 운서(韻書)를 아느냐. 사성 칠음(四聲七音)에 자모(字母)가 몇이나 있느냐. 만일 내가 그 운서를 바로잡지 아니하면 누가 이를 바로잡을 것이냐."

니들이 뭘 안다고 왈가왈부냐, 나보다 잘났냐 시전도 하시고


"전번에 김문(金汶)이 아뢰기를, ‘언문을 제작함에 불가할 것은 없습니다.’ 하였는데, 지금은 도리어 불가하다 하고"

옛날 말 끄집어내서 꼬투리 잡고



"드디어 부제학(副提學) 최만리(崔萬理)·직제학(直提學) 신석조(辛碩祖)·직전(直殿) 김문(金汶), 응교(應敎) 정창손(鄭昌孫)·부교리(副校理) 하위지(河緯之)·부수찬(副修撰) 송처검(宋處儉), 저작랑(著作郞) 조근(趙瑾)을 의금부에 내렸다가 이튿날 석방하라 명하였는데, 오직 정창손만은 파직(罷職)시키고, 인하여 의금부에 전지하기를,

"김문이 앞뒤에 말을 변하여 계달한 사유를 국문(鞫問)하여 아뢰라."

반대하는 신하들 의금부에 하옥하고, 일부는 파직에 국문 까지 함



평생을 논리 싸움과 설득으로 살아온 왕이지만
 절대 설득하지 못할, 하지만 꼭 필요한 일에 그동안 아껴왔던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신하들의 반대를 찍어버리고 반포함



FF355CEC-580B-4D3C-B38B-0D7724FE30D4.jpeg 세종대왕이 가장 세종답지 못했던 순간
 
안 그러던 세종이 이정도 까지 하니까 
신하들도 세종 아빠가 누구였는지 기억나서

 이 건으로 한 번만 더 개기면 ㅈ되겠다 싶어 다 닥침



진짜 감사합니다 소리 절로 나오는 유일한 왕










+) 추가

포텐간 세종대왕이 가장 세종대왕 답지 못했던 순간을 보고... 추가로 적어보는 그의 독단적 행위

나는 세종의 독단적인 리더쉽을 척불논쟁이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함. 


image.png 포텐간 세종대왕이 가장 세종대왕 답지 못했던 순간을 보고... 추가로 적어보는 그의 독단적 행위


물론 공론의 정치를 펼치던 왕이었지만, 척불논쟁에서의 그의 행동은 정말 의외의 모습을 보여준다. 


홍천사의 사리각 보수를 위해 세종은 승군 600명 동원을 명하지만척불 국가라는 명분 아래에서 신하들이 반대를 한다


image.png 포텐간 세종대왕이 가장 세종대왕 답지 못했던 순간을 보고... 추가로 적어보는 그의 독단적 행위
서울시 성북구 홍천사



세종은 30일동안 노역하는 자는 도첨(라이선스)을 주고 양식을 가지고 온 자는 15일만 노역 가능을 허락하였으며이후사방의 남녀노소들이 음식을 갖고와서 승병들에게 시주를 한다도성안의 부녀자들 특히 고관들의 부인들이 그렇게 하였다


image.png 포텐간 세종대왕이 가장 세종대왕 답지 못했던 순간을 보고... 추가로 적어보는 그의 독단적 행위



신료들은 이 모습에 반발하여 공사중지 요청을 하였고 그 이유는 남은 음식을 버리는 행위는 흉년 기간이기에 너무 아깝다는 것이었다


세종의 경우 공양이 헛되지 않고 정부의 돈으로 시주를 하는 것이 아닌데 별 문제없다는 식으로 말을 하였다


영의정 황희를 비록하여 사간원과 사헌부 대신들이 사직서를 제출하였고세종은 한발 물러나 사리각의 사리 사용을 유보한다척불논쟁이 이념투쟁으로 확대됨을 걱정하였기 때문이다사건은 일단락 되는듯 하였으나문종과 수양대군의 어머니이자 세종의 부인인 소현왕후그리고 세종의 두명의 아들이 죽자 세종은 강한 혼란이 오게 된다


image.png 포텐간 세종대왕이 가장 세종대왕 답지 못했던 순간을 보고... 추가로 적어보는 그의 독단적 행위
황희: 에잉 나 사퇴할래

이들을 기리기 위한 내불당 건립에 수많은 대신들이 반발하지만 무대응하며 '의심가는 것은 의논하지만 의심가지 않는 것은 독단적인 태도를 취하는 임금이다' 리는 말과 함께 독단으로 결정한다

물론 여기서 독단이란 독재가 아닌 그에 책임을 진다는 홀로 결정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이후 세종은 신하들의 태도를 문제 삼았으며신하들을 공격하였다


이러한 세종의 독단적인 태도만으로 그를 평가할 수는 없다수많은 악재로 인한 혼란과 오랜 기간 통치로 인한 피곤함 그리고 키워준 신하들에 대한 배신감 등이 그의 성격을 등장시킨 것이다

3 Comments
크롬러브 2021.11.16 21:47  
참. 이 조그마한 나라에
참 대단한 위인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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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앞잡이 2021.11.17 10:34  
[@크롬러브] 진짜 인재빨로 여기까지 온듯.. 우리나라는 인적자원이 핵심이라는 말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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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집킹왕 2021.11.17 10:40  
이런 세종을 욕한 어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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