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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은 사실 금수저 집안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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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최고의 영웅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당연히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떠오를 것인데 흔히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상당히 가난한 집안의 자제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사실은 금수저 집안의 자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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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이씨 족보


이순신 장군의 집안인 덕수이씨는 엄연한 조선의 양반가문으로 고려때 중랑장을 지낸 이돈수가 시조로 그렇게 명문가 까지는 아니었지만 엄연히 조선시대 신분의 최상 계층인 양반가문으로 유명인물들도 많이 배출했다.


드라마 매체에서 주변인물들이 이순신 장군의 가문을 들먹이며 무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현실에서 그랬다면 즉시 보복을 당했을 가능성이 큰데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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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이이 ( 조선의 병권을 가진 병조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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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 (하삼도중 곡창지대인 전라도 군대의 지휘권을 가진 전라감사)


이순신 장군이 관직 생활을 했을때에는 정계에 자신의 가문사람들이 많았는데 일단 한명은 조선의 군권을 틀어쥐고 있었으며 또한명은 전라도 군대의 군권을 가지고있던 전라감사이다.



게다가 이순신 장군의 친우는 바로 서애 류성룡으로 이미 중앙과 지방에 연줄이 엄청많은 분으로 이순신 장군을 무시했다간 그야말로 리타이어될 확률이 매우크다.


물론 위의 두사람과 충무공의 인연은 어느정도 존재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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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율곡이이가 병조판서이고 충무공이 초급장교이던 시절 종가를 방문한 율곡선생은 종가어르신들과 애기하던중 종가 어르신들은 이런 애기를 꺼내는데 이보시오 병판 혹시 우리가문사람중에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있는걸 알고있소 그러자 율곡선생이 처음이라는 반응을 하자 어르신들은 글쎄 앞으로 우리가문의 자랑이될 인재중의 인재라고 치켜세웠고 율곡은 자신의 친척들중에 (충무공과 19촌사이 사살상 남이지만 조선시대는 씨족이 강해서 은근히 가까운 친척) 뛰어난 인물이 있는걸 알고 충무공에게 만나고 싶다는 서신을 보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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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은 쿨하게 이렇게 답장을 보내는데 병판께서 군권을 가지고 계신동안은 저를 만나는일이 없울것이며 가문의 행사에도 만나는 일이 없을것이라는 서신을 보내는데 알다시피 율곡이이는 당시 국방장관이던 병조판서이고 충무공과 같은 가문으로 율곡선생에게 갔다면 승진은 보장받을수 있었으나 충무공은 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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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일화는 충무공의 조산보만호 겸 녹둔도 둔전관 시절 상관인 이일에게 지원병을 보내달라고 여러번 요청했을때 거부당하고 녹둔도 전투가 끝난후인 충무공의 1번째 백의종군 시절 충무공은 시전부락 전투에서 공을세우고 백의종군에서 벗어났으나 계속해서 복직이 되질않으며 고향이자 처가인 아산에 근거하며 완전히 페인으로 살고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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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당시 전라감사인 이광이 보게되며 경악을 하게되는데 이광 역시 덕수이씨로 충무공에게는 친척형이었는데 가문에서도 기대를 받았던 친척동생이 상관하나 잘못만나 페인이 된꼴을 보게되며 분노하게 되는데 이광 역시 굉장히 청렴한 인물이지만 이번만큼는 충무공에게 이렇게 말하는데 내 너의 이러한 모습을 보니 너무 안타깝구나 내 이번에 전라감사로 임명이 되었으니 나와 함께 가자꾸나 하며 조정에 장계를 올려 충무공을 자신의 조방장으로 삼으며 충무공을 양지로 끌어내고 그결과 충무공은 선전관을 거쳐 정읍현감 그리고 1591년 전라좌수사로 임명이 된다.


1591년 충무공이 전라좌수사로 전라도로 부임해오자 한사람이 매우 환영하는데 바로 이광으로 이광은 당시에도 전라감사를 지내고 있었으며 난중일기에 두사람의 관계가 이렇게 적여있다.


1592년 1월17일 관찰사 께서 아침에 내게 편지를 보내셨으며 저녁에는 배의 쇠사슬을 고정시킬 돌을 보내주셨다.


1월24일 2월10일 4월10일 기록에도 관찰사께서 보낸 편지를 읽었다는 기록이 존재하며 1592년 3월14일 기록에는 순찰사 영감과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했다.


1592년 2월8일 전라감영에서 신형배를 건조할때 쓰라며 돛 29필을 보내주었다.


그외에도 거북선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부록부터 그리고 충무공에게 요새 아전들이 명나라 관리들한테 뇌물을 먹어 빡쳤다는 내용의 편지와 휘하의 부하가 마음에 안드는데 잘라야 하는지를 물어보는 편지를 보내는등 별 시답지 않은 내용의 편지도 보냈다.


난중일기에서 순찰사 영감이 편지를 보냈다는 내용이 엄청많은데 난중일기속 순찰사 바로 이광으로 한마디로 동생바보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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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원칙주의자인 충무공은 가족이라고 예외는 없는게 이광이 자신의 부하인 순천부사 권준을 육군의 중위장으로 삼고 싶다고 하자 한심하다라는 내용을 난중일기에 적었고 마침 동생인 충무공이 보고싶어 전라감영에서 순천부로 ( 전라좌수영에 속한 군영)온 이광과 충무공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동생바보인 이광은 동생하고 싶은거 다해 하며 권준은 그대로 충무공 휘하로 남게되었으며 이광은 친척동생인 충무공에게 큰잔치를 열어주었다고 한다.


이렇듯 충무공의 경우 가난하긴 커녕 가문의 덕을 보는경우가 굉장히 많았으며 애초에 신분제가 확고한 조선에서 가문의 덕을 안본다는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로 충무공의 경우 가문의 힘을 올바른 방향으로 쓰고 또 공과사는 엄격하게 구분했기에 만인의 존경을 받는 영웅이 될수 있었다.




참고로 이광의 실각으로 충무공은 제대로 고생을 하는데 이광이 이끄는 4만의 근왕군이 용인에서 대참패하며 빡친 선조에 의해 전라감사에 파직이 되며 충무공을 보호해줄 보호막이 사라졌기 떄문으로 좌수사 시절에도 선조는 몇번이나 충무공을 시기했으나 그때마다 이광이 좌수사는 충신이라며 보호해준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참고로 이광의 근왕군을 격파한 일본의 장수는 한산도 대첩에서 충무공에게 초절정 관광을 당한 와키자카 야스하루로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1 Comments
꼬북좌 2021.11.24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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