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전술의 교과서. 천재라 평가 받는 군인 "한니발 바르카" -1-
주성치
4
1287
13
0
2019.01.24 19:02
동양에서는 손자, 서양에서는 한니발이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략,전술의 교과서라 평가받는 천재
"나는 길을 찾아내거나 만들리라"
-한니발 바르카-
강대한 로마에게 최악의 악몽을 안겨준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과 포에니 전쟁에 대해 알아보자.
포에니란 무엇인가?
고대 로마는 페니키아 인들을 포에니라 불렀다.
카르타고는 페니키아 인들이 아프리카로 건너와 세운 식민지였다.
그럼 페니키아 문명은 어떤 문명이었을까????
알파벳을 전파한 나라로 유명한데, 이것이 오늘날 알파벳의 원형이다.
즉, 페니키아는 유래가 없는 상인 국가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그리스-로마 문명을 서양문명의 시작이라고 부르는데,
그렇게 말하면 섭섭한 사람들이
바로 이 페니키아 사람들이다.
사실 그리스-로마 문명은 이집트 문명이 그리스로 가서 합쳐진 것,
그리스-로마 문명에 이집트 문명이 굉장히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때, 이집트에서 문명을 흡수한 페니키아 인들이
그리스-로마로 무역을 하며 문명을 전파한 것이다.
지중해 무역권과, 메소포타미아 문명까지
그 문명의 모든 요소를 합쳐준 사람이
페니키아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이 콜럼버스 이전 최초로 아메리카를 발견했다는 소문도..)
"페니키아인들은 문명의 씨앗을 뿌린 농부가 아니라 낟알을 물어다준 새다."
-19C 독일 역사학자 테오도어 몸젠
그래서 그들이 그리스로 가서
알파벳 뿐만 아니라 종교,문화,사상 까지 전파하고 하나로 합치는데 큰 공헌을 한다.
(물론 그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페니키아 인들은 진정한 장사꾼들 이었다.
그들은 한마디로,
돈버는 일은 전부 다 잘했다.
그것도 굉장히 선진적으로 잘했다.
하지만,
돈 안되는 일은 안하거나, 돈으로 해결했다.
그들은 식민지를 세울때, 식민지 왕국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동인도 회사처럼 대리점만 세워
농업,상업목적으로 식민지를 개척했다.
이것이 페니키아의 식민지 카르타고의 영토인데,
무역이 가능한 돈 되는 항구도시만 점령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농사는 노예를 시켜 짓게하거나
식량은 그냥 돈주고 사왔다.
카르타고가 페니키아인들의 본거지 처럼 된다.
그래도, 해상무역국가 였던 카르타고는
용병으로 군대를 운용했다.
그렇게
카르타고가 무역을 위해
지중해 요소마다 세워놓은 무역도시들.
그 도시들을
로마가 탐내기 시작한다.
로마는 농업국가였으나
무역도 병행하는 농업국가였다.
군대도 강해지고 이탈리아도 통일한 로마는
돈 되는 해상무역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는데,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이
지중해를 장악하고있던 국가 카르타고였던 것이다.
반면,
아시리아에게 본진이 털리자
너무 대리점만 많이 만들었다 싶었던 카르타고는 반대로
제국다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 구상중이었다.
이렇게 지중해의 두 국가 사이에 전쟁의 기운이 무르익고 있었다.
로마가 군사력을 급속히 키우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최초의 도시국가 로마는 그리스와 비슷했다.
지주들만 전투에 참전했고, 직업군인이 거의 없었다.
도심을 점령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자존심을 구긴 로마는
그때부터 편제와 전술등에서
대대적인 군 혁신을 한다.
군대를 징집해 훈련또한 강하게 시키는데,
그 중 하나가,
30kg 완전군장메고 5시간안에 32km 행군을 주파하는 것이었다.
또 다른 하나가
전투 훈련을 할때, 진짜보다 2배 무거운 훈련용 칼,방패를 주고
근력과 민첩성을 강화시킨다.
그렇다면
로마와 카르타고의 군과 무기는 어떠했을까?
먼저 로마는,
많은 수의 투창을 들고다니며 최전방에서 투창을 날렸다.
로마군의 전술은,
전투시작시 투창병(벨리테스)이 투창을 던져놓고,
최전선의 젊은 경보병(하스타티)과 후방의 정예병(트리아리)이 함께
백병전으로 치고빠지며 적의 체력을 소모시켰다.
그리고 힘이 빠지면,
결정적 순간에
프린키페스(주력부대)가 돌격했다.
이런식으로 로마는 초기에 빛나는 승리들을 거두었다.
이 갑옷은 칼에 베이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었지만,
찌르기는 못막았다.
서기 1세기 까지 로마군의 표준갑옷으로 쓰였다.
그리스식 처럼 뺨 가리개 버컬러가 있었고, 뒷목보호대가 있었다.
초기에는 사이즈가 작고 타원형이었다.
글라디우스는 찌르는 무기로.
날 길이는 60cm로 비교적 짧았다.
하지만, 밀집대형을 이루어 전투하는 로마군에게는
이와같은 단검이 더 유리했다.
반면 카르타고 군은
여러민족과 용병으로 구성되어 훈련이 부족했다.
카르타고는 해상무역국가, 해군은 정말 강했다.
3단 노선의 시대가 지나고,
5단~16단 까지 다단노선의 시대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