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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가 적은 고려는 과연 착한국가이고 노비가 많은 조선은 과연 나쁜국가일까? -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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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필자는 원글 작성자에게 동의를 받아서 퍼오는겁니다. 하지만 보면서 꽤 괜찮다고 느낀 양질의 글이라고 느껴서 가져옵니다.



일단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노비제는 한국사에서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게 됩니다.

기존의 내재적 발전론에 따르면 '근세'라는 말에 걸맞는 모습과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조선이 드라마의 추노에서 나온거처럼 조선은 사실상 자국민의 무려 30~40%를 노비로 부리고 있었다는 굉장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때문에 조선사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사방에서 날아오는 화살로부터 조선을 변호하기 위해 일명 '노비투쟁'을 벌어야만 했습니다.


KakaoTalk_20230108_174052294.jpg 노비가 적은 고려는 과연 착한국가이고 노비가 많은 조선은 과연 나쁜국가일까? - 1편

 

고려는 노비가 적었던 편이었습니다.(약 5%정도)

조선은 노비가 많았던 편이었습니다.(약 30~40%)


그리고 노비제=노예제는 아니지만 노비제 역시 좋지 않은 제도인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조선을 노비제를 이유로 전체역사를 매도하는것은 역시 온당치 않습니다.


왜냐구요?


그것은 마치 


흑인 노예를 해방시켰던 링컨에게 넌 왜 흑인투표권을 보장하지 않았냐면서 면박하는거와 비슷한 이치거든요



우선 이야기는 고려로 거슬러 올라가야합니다.


일반적으로 고려시대의 지방 촌락의 양민들은 지방 향리에게 예속당한 존재였습니다. 1년 365일 24시간 내내 향리가 까라고하면 까야하는 존재가 바로 양민들이었습니다 

분명 법적으로는 국가의 보호를 받는 양인이어겠지만, 고려는 지방에 조선에 비해 크게 간섭하지 않았으며 분명히 법제적으로는 자윯운 양민들이 향리의 통치하에 사실상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해야만했습니다.


그런데 노예 짓거리도 주인이 하나면 그나마 낫습니다.....(fuck...)



만약 양민이 농사를 짓는 땅에 수조지(관리의 조세 수치 권한이 허락된 토지)가 설정되면...?

농민 입장에서는 간섭하는 놈이 한 놈 더 추가되는격입니다.


왜냐구요?

고려정부는 수조권자의 수취에 개입하지 않았거든요(허허허허...)


수조권은 법정 수취량은 전체 수확량에 1/10 수취이지만 흉년과 풍년의 정도에 따라 그 양이 변화했습니다.

풍년일때는 더 많이 걷고 흉년일때는 당연히 더 적게 걷습니다.


그렇다면 그 해가 풍년인지 흉년인지는 누가 결정할까요?

당연히 수조권자가 결정합니다.(허허허...)

일반 양민의 입장에서 아무리 흉년이어도 수조권자가 "풍년이니까 더 많이 걷을꺼임 ㅅㄱ" 이러면 따라야합니다.


조세를 걷는 모든과정에 대한 감독과 지시?

당연히 수조권자가 합니다.


그렇게 걷은 조세를 수조권자의 창고로 운송하는 사용되는 비용은?

당연히 농민이 냅니다.(아니 세금도 내고 운송비도 내는 이중과세도 아니고 뭔....)


그렇다면 그 운송비용에 대한 책정은 누가 할까요~~~?

당연히 수조권자가 합니다.(아니 그럼 언제든지 더 뜯을 준비가 되었다는거잖아요)


이 모든 것들이 국가행정의 효율화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법적으로 자유로운 양민들이 희생을 해야하는 부분이었습니다.


KakaoTalk_20230108_175551043.jpg 노비가 적은 고려는 과연 착한국가이고 노비가 많은 조선은 과연 나쁜국가일까? - 1편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다행이겠지만 고려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토지 부족문제가 심화된 고려 후기에 다다르면 고려는 기존 수조지에 중복으로 수조지를 설정합니다.(허허 양민들 ㅈ됨)

아, 물론 법적으로는 한 땅에 최대  설정가능한 수조지는 오직 1개뿐입니다.

문제는 이 법을 지킬 의사가 적어도 후기 고려에게는 전혀 없었다는겁니다.


왜냐구요?


그래도 되었으니깐요 ㅋㅋㅋㅋ 


농민을 아무리 착취해도, 중앙 관료들과 지방 향리들의 이익만 보전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되었고 고려는 애초에 본질적으로 글 국가였으니깐여



아 참고로 고려후기에 한 땅에 수조권자가 두명이면 뭐 양빈인 케이스입니다.KakaoTalk_20230108_180215497.png.ren.jpg 노비가 적은 고려는 과연 착한국가이고 노비가 많은 조선은 과연 나쁜국가일까? - 1편

토지의 부족으로 인한 수조지의 중복 설정+ 수조지의 미반납으로 인한 누적 + 여말 사원의 확대로 인한 사원전의 중첩+ 녹과전의 분급 + 여말 측근 정치로 인한 사패전의 분급 누적= ?

못해도 고려후기에는 한 땅의 수조권자가 5~6명인것이 일반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이때문에 고려 후기 농민들은 심각할 경우에는 수확량 전부를 수조권자들에게 바쳐야하는 상황에 이르게되죠 한마디로 1년내내 쌔빠지게 농사 지어봤자 자기몫은 하나도 없는 x같은 상황인거죠


그럼 과연 양민들을 괴롭히는게 과연 향리와 수조권자들뿐일까요?


그럴리가 없닼ㅋㅋㅋ 괜히 나라가 망할때 붙는 고려말이겠냨ㅋㅋㅋㅋㅋㅋ


승려들도 양민들을 괴롭힙니다.(wtf?)


대몽항전기에 '호국불교'를 이유삼아서 하층민 중심의 신앙결사운동을 장려하던 고려의 불교는 원 간섭기를 거쳐서 현실과 타협하고 보수화 및 타락화 하게됩니다.


국가 권력의 개입을 막고자 '원 황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명분'으로 새우거나 '원나라에서 수계를 받은 승려'들을 주지승으로 삼은 절들이 부지기수였으며

전국에 사찰을 짓고, 대토지를 차지하며 

거기에 더해 인근 양민들을 불법적으로 부려서 토지를 경작시킵니다.(완전 깡패새기들 아니야?)


그렇게 부려서 돈이라도 제대로 주면 덜 억울하기라도 할겁니다.


근데 괜히 여말이 아니죠


"넌 대신 돈 주고도 못 쌓는 불공을 쌓았잖아 ^^  라던가(이 뭐 병...)

"원 황제의 기원을 비는데 참가시켜줬으면 고마워 할 줄 알아야지!(적반하장 아니여?)라는 개소리를 하면서 사실상 열정페이로 부려먹기가 일수였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항의를 하면? 사실상 승려가 중심이 되는 지역 공동체 행사에서 말그대로 '왕따'를 시켜버리니 양인 입장에서는 율며겨자먹기로 시키는대로 해야했습니다.


아마 이쯤 되면 감이 오시겠지만 고려의 노비수가 적은건 결코 고려가 착해서가 아닙니다.


오직 한명의 주인만 부릴수 있는 노비보다 사실상 모두가 부릴 수 있는 양인이 더 효율적이니 당연히 노비숫자가 적었던겁니다.


이 점에 주목하신다면 왜 고려 정부와 지배세력이 그토록 공을 들여 여림히 양천의 혼인을 금지했으며 노비안검법이니 노비환천법이니 전민변정도감이니 하면서 노비를 왜 양인으로 만들려고 했는지 

그리고 여말시기 양인들이 왜 '스스로' 권문세가에 투탁해서 노비가 되고자 했는지에 대해 조금은 다르게 느껴질겁니다.


아 물론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고려는 양인의 법제적 자유를 보장하는 양천제를 실시하는 국가였습니다.


그렇게 꿈도 희망도 없다시피할정도로 분명히 자유로운 양인들이 양인다운 삶을 살지못하고 모두의 공공재마냥 노예로 전락해서 지옥같은 삶을 살던 어느날


1392년 8월 5일 조선이 건국합니다.KakaoTalk_20230108_182043267.png.ren.jpg 노비가 적은 고려는 과연 착한국가이고 노비가 많은 조선은 과연 나쁜국가일까? - 1편


필자는 퍼오는것을 허락받았습니다.


원글링크


https://cafe.naver.com/booheong/197052


3 Comments
깡구 2023.01.10 00:08  
이런거조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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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 2023.01.10 12:33  
무신정권 이후 얘기인가?

럭키포인트 11,650 개이득

더이상참지못하겠다 2023.01.10 22:56  
말이 조선 건국이지
고려말에서 그냥 날짜만 며칠 지난거잖어
조선 건국 ! 하면 뚝딱하고 저런 악습들이 한순간 사라짐 ??
그게 궁금하네 어떻게 된건지

럭키포인트 24,256 개이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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