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미스터리 > 미스터리
미스터리

처절한 남송의 대몽항쟁기 1

주성치 1 2924 8 1

훌라구.png 처절한 남송의 대몽항쟁기 1
훌라구


1260년
훌라구의 부장 키트부카의 몽골군이 아인잘루트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몽골군의 기나긴 서진이 끝이났다.  공백이 된 대칸을

선출하기 위해 쿠릴타이를 열어야 하건만 쿠빌라이는 송나라와의 전쟁에서 몸을 빼지 못해 속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몽골군이 서진이 끝났다면서 왜 아직도 코앞의 송나라와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요나라한테 터지고 금나라한테 밟히던 동네북 송나라 아니였던가?



세계 최강국에 맞서 비장하고 처절했던 송나라의 44년간의 대몽항쟁기를 알아보자.




1.jpg 처절한 남송의 대몽항쟁기 1

1126년 정강의 변으로 북송이 멸망하고 강남으로 내려와 명맥을 이어 남송시대가 열린다.

금나라의 공격에 맥을 못추던 남송은 한세충과 악비의 활약으로 금군의 공세를 저지, 패퇴시킨다.






2.png 처절한 남송의 대몽항쟁기 1

이후 강남의 포텐셜이 터지면서 본진이었던 강북의 경제력을 앞서기 시작해 풍부한 자원과 물자를 바탕으로 북벌을 시도하기도 한다.

시간이 흘러 1234년 와신상담하던 남송은 복수에 눈이 멀어 ‘신이 보낸 악마의 군대‘와 손을 잡고 금을 멸망시킨다.

당연히 이 군대는 몽골군이었는데, 복수를 완성하고 기고만장해진 남송은 사리를 온전히 분별하지 못하고 본진을 찾겠다며 북진을 시도, 몽골군의 분노를 산다. 사망플래그






4.jpg 처절한 남송의 대몽항쟁기 1

몽골군은 3개의 군을 편성하여 남송 전역으로 진격, 한번에 멸망시키려 하였다.

결국 1235년 유비가 촉을 세웠던 사천의 성도가 함락되고 이듬해는 형주의 양양이 함락되는 등

우리가 익히 잘알고있는 송나라의 모습을 보여주며 멸망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는데..








맹공.png 처절한 남송의 대몽항쟁기 1

위기때마다 등장하는 송벤져스.

맹공의 등장으로 전황은 뒤집히기 시작한다. 금나라를 멸망시키는 과정에서 몽골군과 함께 싸운적이 있던 맹공은

강릉에서 허장성세와 기습을 통해 야전에서 몽골군을 저지, 황주방어선에서도 활약하며 이름을 떨친다.

이후 몽골군에게 이름그대로 맹공을 가해 양양을 탈환하고 사천도 탈환하고 유민들을 받아들여

광대한 둔전을 개척하고 수비시설을 확충하여 방어시스템을 구축하고 다했다;;이순신?
이렇게 맹공의 권한과 명망이 높아지자 이를 견제한 조정을 의식해 결국 사임하게 된다.



이 6년간의 전투 이후 물러난 몽골이 다시 공격하기 시작한건 1258년.(고려와의 여몽전쟁은 1259년에 끝남)
그 동안 남송은 강남의 엄청난 자원력을 바탕으로 우주방어체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안그래도 험준한 사천지역에 산성을 두루 쌓아 서로 도우며 전선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든다.





몽케칸.jpg 처절한 남송의 대몽항쟁기 1

몽골군은 몽케 칸이 직접 이끄는 1군과 쿠빌라이의 2군, 우량하타이의 3군으로 나눠 남송의 서쪽과 남쪽에서 공격을 시도한다.

(위 지도에 보이는 대리를 멸망시킨 시점으로, 우량하타이의 3군이 대리를 통해 사천을 공격) 사천에 진입한 몽케 칸군은

여러 성들의 항복을 받아내며 승승장구 했으나 조어성에서 발목을 잡히고 만다.

조어성을 단단히 포위하고 몇 차례나 공성을 했으나 성과가 없자 회의를 열어 다른방법을 모색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결국 조어성을 함락시켜야한다는 것이었다.(안시성?)

5개월이 넘도록 성과를 거두지 못한데다 몽케 칸이 병사하면서 몽골군은 결국 후퇴하고 만다.






쿠빌라이.png 처절한 남송의 대몽항쟁기 1

바로 이 몽케 칸의 죽음으로 인해서 훌라구가 서진을 마무리짓고 돌아오게 된다.

한편 2군을 이끌던 쿠빌라이는 쿠릴타이를 열고 싶어 되돌아 가려했으나 익주에서 발이 묶인다.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진 쿠빌라이에게 밀사가 도착하는데....

1 Comments
드롭박스 2019.03.29 16:26  
성치형 역사물 업로드 수고 항상 감사감사
애정하는거 알지?

럭키포인트 3,035 개이득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