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장군과 과메기 이야기
만국에서 사랑받는 청어
우리나라에서도 산후에는 미역국 만큼이나 청어죽이 권장 되었을 정도.
그리고 많이 잡힐 때는 진짜 많이 잡혀서 가난한 사람들도 값싸게 많이 먹을 수 있었다.
조선시대때는 가난한 선비를 살찌게 해준다고 비유어라고 불렸는데,
당시에는 청어는 기름이 많아 줄에 널여다 말렸다.
옛날엔 조기같이 단백한 흰살 생선은 소금에 절이고, 기름이 많은 붉은 생선은 말렸다고 한다.
맛있으면 장땡이지만 ㅋㅋ
이렇게 겨울 바람에 말려 꼬들꼬들해진 청어를 과메기라고 불렸다.
현대에 우리나라 근해에서 청어 어획량이 급감해서 꽁치 과메기가 많았지만,
원래 과메기의 대표격은 청어였다.
그리고 이 과메기는 치트공 이순신과도 관련이 깊다.
임진왜란 전에는 조선은 청어의 어획량이 적었다.
이것은 수온이나 해류에 따라 청어의 서식지가 왔다갔다 하기 때문이다.
실제 청어의 어획 주기는 40년이라고 한다.
그러다 전란이 발발하고 치트공이 열심히 왜선을 때려잡을 쯤에 청어들이 다시 조선 근해로 몰려들었다.
치트공 입장에선 반가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조선수군은 REAL 자력갱생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나라가 이 지경이다 보니, 중앙조정에서는 지원은커녕, 내놔라고 오히려 닦달하는 형편이었다.
실제 임진왜란동안 전라도는 그야말로 쭉쭉 짜이고 짜였고,
정유재란 무렵에는 전라도의 물력(경제력)이 바닥나서 ㅈ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충무공은 둔전으로 수군의 식량을 생산하는 한편,
상인들에게 통행세를 걷었고, 어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예산이 부족하니 고기라도 잡아야죠."
당시 조선 수군은 전투가 없을 땐 병사들까지 동원해서 청어 잡이에 열중했다.
수군 병졸들은 어민 출신이 많아서 고기잡이에 능숙했던 데다,
조선 수군이 보유한 배 중에는 포작선이 가장 많았다.
무슨 어선을 군에서 굴리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전시에 모든 배가 징발되어 사용되는 건 현대에도 마찬가지다.
2차대전때 미국과 영국도 트롤 어선 같은 걸로 독일 잠수함을 족치고 다녔을 정도니.....
이렇게 만든 과메기를 팔아서 군량도 마련하고, 군사들도 먹이고 피난민들도 구휼했다.
그리고 배도 만들고 무기도 마련하고, 화약의 재료인 유황도 사들였다.
근데 조선시대때 유황의 주요 수입처는 일본이었다.
전쟁 중에 적국으로부터 군수물자를 수입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인들은 목숨 걸고 장사하며 돈 벌었다.
이런 자들의 거래 대상은 단지 자기나라 군대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통제사 도노, 대금은 뭘로 지급하실 것인지?"
청어는 조선 초기부터 대마도의 왜인들을 달래는 용도로 줬던 상품이었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단백질이나 지방질이 있는 식품은 고가일 수 밖에 없기에,
보관하기 좋게 가공된 과메기는 상당히 좋은 상품이었다.
얼마나 이 과메기 장사가 잘 되었는지, 조선수군은 자력갱생을 하고도 남아서
의주에서 찌질거리고 있는 조정에도 지원을 해 줄 정도였다.
아무튼 과메기를 만들어 팔 정도로 청어가 풍부하다 보니
조선수군 내에서도 곧잘 먹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오늘은 반찬이 뭐냐?"
별외로 이야기 하자면, 당시 조선수군은 전시임에 불구하고 먹거리가 다양했다.
육군 병사들이 밥과 간장, 소고기기름국 정도를 겨우 먹고 있을때,
조선 수군은 소고기, 돼지고기, 사슴고기, 개고기 등을 제주에서 지원 받아 먹었고,
바다에서 청어를 비롯해 전복, 대구, 숭어, 조기, 고래 등을 잡아 먹었다.
이 외에도 떡, 국수, 약식, 칡, 팥죽, 홍시와 곶감, 참기름, 꿀, 무, 연포, 수박, 동아전, 귤을 먹었는데,
귤의 경우 왕실에 진상되는 고급식품이었다. 이걸 병사들 잘 싸우라며 먹인거다.
그러니까 튀긴 조기 같은 ㅈㄴ 밥경찰 올리면 군사들 사기 죽인다고 충무공한테 ㅈ나 맞는 거다.
도루묵 일화가 있을 정도로 쳐굶은 선조입장에서 부들부들 할 지 모르겠다.
이외에도 수천 동이의 술을 양조해서 전투 후에 병졸들에게 술을 자주 먹였다.
한번은 하룻밤에 1천 동이의 술을 소모하기도 했는데,
충무공은 병사들의 음주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었다.
여봐라, 저놈들을 끌어내 매우 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