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황제들이 싫어했던 자금성
불량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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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 14:03
청은 중원입성 후
명나라의 황궁이었던 자금성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함
하지만 문제라면 자금성은 청나라 황제들의 취향에 안 맞았다는 거..
대칭구조, 거의 없는 나무(아예 없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건 아니고 후원에 있음), 여름에 더운 점 등등 때문에
청나라 황제들에게 중압감과 답답함을 줬고 결국 청나라 황제들은 공식행사가 많은 겨울 1년에 120일 정도를 제외하곤 대부분을 정원 형식으로 만든 별궁에서 지내게 됨
청나라 황제들이 자금성을 떠나 지내던 별궁은 많았는데
강희제가 좋아했던 별궁이지만 1860년 2차 아편전쟁 때 약탈당하고 불탐
강희제 이후로는 옹정제부터 건륭제 가경제 도광제 함풍제 등등
모든 황제들의 최애 별궁은 원명원이었음.
중국 각지의 건축 양식으로 지은 건축과 서양건축들, 100만점이 넘는 황실 보물까지 녹음으로 가득한 수제곱킬로미터 부지에 있던 아름다운 궁전이었지만
역시 2차 아편전쟁때 약탈당하고 불타서 현재는 폐허만 남아 있음.
현재 자금성 다음으로 유명한 이화원의 경우 청나라 별궁중에선 콩라인이었음.
현대에 유명해진 이유는 이 이화원도 2차 아편전쟁 때 약탈당하고 불탔는데..
서태후가 별궁 중에 이화원을 다시 재건하고 자금성이 아닌 이화원서 주로 지냈기 때문.
사실 서태후는 원명원도 재건하려 했지만 이화원 재건도 국방예산 빼돌려야 했던 당시 청나라 사정에 원명원 재건할 돈이 있을리가 없었고 결국 반대가 커서 무산됨.
더운 여름에 주로 지내던 별궁도 있었는데 그게 이 피서산장.
이 피서산장은 북경이 아니라 열하(청더)에 지은 별궁이었음.
저 주요건물의 건축양식은 티베트 건축의 영향을 받은 걸로 포탈라궁과 유사. 그래서 소포탈라궁이라 부르기도 한다고.
사실 역사적으로도 의외로 중요한 곳인데
열하일기 박지원이 황제를 알현한 곳이 이 곳이고
영국 매카트니 사절단이 건륭제를 알현한 곳도 이 곳이기 때문.
황제가 이곳에 와 있을 때 한정으론 청더가 통치 이뤄지는 사실상 수도였기 때문에 중요한 곳이고
2차 아편전쟁 때도 피해를 안 입었지만 서태후가 이화원을 피서산장보다 중시하면서 현재는 이화원에 인지도가 밀리는 곳이 되버림.
자금성 밖 서쪽에 위치한 황실 원림으로 이 곳 역시 황제의 여름 피서지로 활용됐음.
이곳은 현대에 더욱 중요해진 곳인데 왜냐하면 현재 중국의 지도부들이 집무실과 관저를 두고 생활하는 곳이기 때문.
그래서 다른 궁궐들은 전부 관광지화가 됐지만 이곳은 현재도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됨.
특이하게 바이두지도 같은데에 표시는 정상적으로 된다고 함.
한편
이렇게 황제가 별궁에서 지내면
황제는 편했지만 신하들은 고통받았음.
주로 교외에 있는 이런 별궁들로 가려면 출근만 1시간이 넘게 걸렸기 때문.
이 때문에 황제들은 별궁에서 지낼 때 출근 시간을 1시간 미뤄주기도 하고
꼭 필요한 결재가 있을 때만 오라 하기도 했음.
황제들이 별궁에 머물면 자금성이랑 다르게 놀면서 성에만 탐닉하는 거 아니냐는 논의가 신하들 사이에 나오기도 했고
건륭제는 가끔 노는거지 하루종일 일한다고 해명하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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