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호 퇴계 이황 센세의 재산을 알아보자
빈약(貧約)을 편안하게 여기고 담박(淡泊)을 좋아했으며 이끗이나 형세, 분분한 영화 따위는 뜬구름 보듯 하였다.
- 선조수정실록 4권, 선조 3년(1570년) 12월 1일 기사, 숭정 대부 판중추부사 이황의 졸기
여러분 퇴계 이황 센세의 이미지가 어떻습니까? 단아하고 검소하고 선비의 대명사로서 이이 율곡과 함께 조선시대 유학자의 거두, 조선의 대현자, 검약해보이는 선비 이미지 아닙니까?
하지만, 이황 센세께서 이토록 학문에 정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바로 영남의 대부호였기 때문. 이황 센세의 분재기(재산 상속 문서)는 남아있지 않습니다만, 아들 이준의 분재기가 남아있습니다. '퇴계이황가문의 (退溪李晃家門) 재산유래와 그 소유형태(1990), 이수건, 역사교육학회'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준이 자식들(이황의 손자녀)에게 상속한 논밭 및 노비 내역)
이영훈 서울대 명예교수가 경북 안동과 고령 일대의 각종 데이터를 통해 추정한 바에 따르면 이 지역의 밭 1두락은 119.2평, 논 1두락은 105.8평입니다. 조선시대 전기에는 균분 상속이 행해지던 때였으므로, 이걸 토대로 계산해보면
장남은 밭 49,528평, 논 26,186평,
장녀는 밭 42,435평, 논 22,906평,
차남은 밭 40,588평, 논 24,651평,
차녀는 밭 42,221평, 논 26,397평,
막내는 밭 51,137평, 논 26,767평
합쳐서 대략 35~36만평 정도 됩니다. 서울숲이 대략 36만평이고, 요즘 얘기 나오는 대장동이 대략 30만평이라고 하니 어느정도 였는지 감이 대략 오실거라고 믿습니다. 대장동 땅값이 중앙일보 기사(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08769#home)에 따르면 평당 600만원은 받아야된다는 땅이었다고 하니, 35.5만평 X 600만원이라는 단순한 산술적 계산만 해도 땅값이 2조 1300억원이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여기에 노비가 367명인데, 이준이 처가로 받은 노비가 33명이라고 하니 이준 개인이 벌어들인(?) 노비, 처가로 받은 노비를 제외하면 이황 센세 생전의 노비 수는 대략 300명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출처 1.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973353#home, [유성운의 역사정치]"부귀를 경계하라"던 퇴계 이황은 어떻게 재산을 늘렸나
2. 퇴계이황가문의 (退溪李晃家門) 재산유래와 그 소유형태(1990), 이수건, 역사교육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