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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to 1942, -2012 영화로 보는 중일전쟁

정지환 0 272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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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2012 

장르 드라마

국가 중국

러닝타임 146분

 

줄거리 

중일전쟁 이후 중국 허난 성에 닥친 역사적인 기근과 이 재난을 피하기 위해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미국인 타임지 기자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장개석 정부의 무능과 부패, 재난을 맞닥뜨린 사람들의 절망과 중국 근대사의 아픔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당시의 비참함과 전쟁의 참상을 안타깝고 뭉클하게 그려내면서도 객관성을 잃지 않은 수작. [피아니스트], [킹콩] 등으로 유명한 애드리언 브로디와, 감독과 배우를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팀 로빈스가 출연하며 화제를 모았다. 

 

감독  펑 샤오강

중국에선 내는 작품마다 흥행하는 높은 위상을 감독이라 알고 있다.

본 감독의 다른 영화는 모르지만 이번 리뷰하는 1942와  집결호 전쟁 영화로서 추천하는 수작이다.  

 

- 포스터 및 영화 정보 출처 다음 영화

 

 

 


 

목차

 

 

1. 영화의 줄거리 (스포일러)

간략한 줄거리 소개

2. 공산당의 프로파간다 영화?

영화가 주는 메시지와 반박

3.  세계 2차 대전과 잊힌 중화민국

생각보다 엄청난 중화민국의 처절한 전쟁

4. 시대의 배경

영화의 시작 전 중국 대륙의 상황

5. 중일 전쟁의 양상

중일 전쟁 진행 과정

6. Back to 1989 

결론

 

 


 

 

1. 영화의 줄거리 (스포일러)

 영화 1942는 2009년 류전윈의 소설 <1942를 돌아보며>을 원작으로 하고

소설은 1942년 발생한 대기근으로 300만 명이 죽은 '*허난성 대기근'을 모티브로 한다.

그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고 영화를 본다면 몰입하여 더 재밌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영화라 생각된다.

*허난성(河南省). 한국식 발음은 하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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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민 행렬


이 영화는 긴 러닝타임에 '중일전쟁'이 소재지만 군인이 아닌 피난민과 국민당 고위관료를 주축으로 

중일전쟁이라는 상황 속 '허난성 대기근'이 어떻게 대참사로 변하는가를 생생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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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과 피난민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군인을 선택해야 한다는 국민당 장군


허난성 지방 관료들은 대기근으로 정부의 구호를 바라지만 정부는 오히려 군량미를 징수하러 사람을 보낸다. 

허난성 주석 이배기의 애원에도 국민당 군대는 군량미를 징발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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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의 국기와 미국기가 걸어진 연회장


타임지 기자 화이트가 '허난성 대기근'으로 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다는 소문을 이야기 하자

국민당 장관은 그건 전쟁과 일본군 때문이라며 화이트 기자의 말을 일축한다.이에 화이트는 직접 피난민을 취재하러 허난성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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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관료들은 문책을 받을까 눈치를 보며 보고를 피해 피해가 커졌다.


국민당 위원장 장제스는 허난성의 실태를 전혀 모르다가 타임스 기자 화이트가 찍은

'개가 시체를 뜯어먹는 사진'을 보고 충격에 빠지며 뒤늦게 구제를 지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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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시 부족한 정부 역량과 무능하고 부패한 관료들로 인해 제대로 된 구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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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난성 대기근' 300만의 죽음을 보고 받은 장제스는 성당에서 혼자 기도하다 눈물을 감춘다.

부관이 들어와 전후 세계 질서를 상의하는 *카이로 회담에 관한 교섭 내용을 장제스에게 전달한다.

부관은 [처칠]과 [스탈린]이 우리의 참석을 원치 않는다는 부정적인 내용을 전하고 발언권을 낼 수 없음을 걱정하며 우리만 전쟁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한탄하고 

아직 송장관이 물밑 협상을 계속하고 있다 말한다.    

 영화에선 부정적인 소식만 접하고 끝나나 결국 중화민국은 카이로 회담을 통해 연합국 승전국 4대 강국의 지위를 확보하고 승전국으로 발언권을 행사했으며 장제스는 조선 독립을 주장해 관철시켰다.     

**영화 속 장제스는 시종일관 상당히 무기력하고 무능하게 묘사된다.

이는 위 영화처럼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장을 바탕으로 하는 역사관이 널리 알려지고 연합국에서도 국부천대 이후 장제스가 그 이전의 업적까지 폄하되면서 생긴 이미지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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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 중 모든 재산과 가족을 잃은 지주 범전원이 부모가 죽은 고아를 거둬 주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2. 공산당의 *프로파간다 영화?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와 그 반박

 

 

*이 영화는 공산당이 전혀 등장하지 않고 언급도 없다. 하지만 프로파간다 적이다. 

 이 영화가 보여 주는 메시지는 결국 국민당은 부정부패와 무능으로 망할 나라로 귀결되고

-----> 공산당을 언급하지 않고도 자연스레 공산당은 그 대안처럼 느껴진다.    

 스탈린 대숙청, 모택동 *대약진 운동과 문화 대혁명, 폴 포트 킬링필드 같은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을 뛰어넘는

공산권의 거대한 악행은 그 규모와 잔인함에 비해 놀랍도록 알려져 있지 않는 반면 

미국, 중화민국과 같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상대적 작은 과오는 집요하게 확대하고 부풀어져 있다. 

 

* 모택동이 추진한 대약진 운동은 중일전쟁으로 발생한 사망자를 뛰어넘었다.
최소 3천만이 아사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모택동은 이런 자국민의 죽음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 시기 중국 인민들은 국민당 치하 중일전쟁 당시보다 식량 사정이 열악했다. 

 

 

 

이영화의 시선 또한 중국 공산당의 메시지를 그대로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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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것으로 가득 찬 지주의 창고


대기근으로 사람들이 굶주리는 와중 지주의 아들은 먹을 것을 빌미로 유부녀를 범하려는 파렴치한 인물로 그려진다.


공산당은 지주는 척결해야 할 적폐 대상으로 삼아 국공내전 승리 이후 2백만 가량을 숙청시켰다.

명목은 지주와 국민당 부역자를 처단하는 것이지만 실상 지주보다 공산당에 반하는 자국민을 모조리 숙청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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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는 장례를 치러주고 눈을 감겨주려 하지만 눈은 감겨지지 않고 결국 그대로 매장한다. 

공산당은 종교를 하등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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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퇴하던 국민당 군대와 같이 피난 가던 피난민들은 일본군의 폭격을 당하고 사제는 죄 없는 소녀의 죽음을 목도하고신앙의 의구심을 가진다.  

 이 영화에서 종교적 이야기는 위 사제와 장제스의 성당 기도 장면뿐인데

종교를 믿는 자들은 나약하고 무능하게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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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천백일기가 그려진 '전시 순회 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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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관료 환영식을 준비하기 위해 시민을 동원하는 국민당

국민당은 외세의(미국) 도움을 구걸하는 당으로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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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천백일기가 그려진 모자(중화민국 군인 모자)를 들고 있는 일본군

 청천백일기는 노골적인 무능과 부패 부정적인 상징으로 국민당군과 후퇴하는 민간인은 폭격을 당하고

미국과 청천백일기가 내걸린 충칭도 폭격을 당한다. 또 그 모자를 소지하고 있던 민간인도 죽는다.

 


 

 

 

공산당 대한 노골적인 자찬이 전혀 없고 국민당과 장제스만을 저격함으로 역사 배경에 무지한 

관객이 시청하기에 거부감 없이 작품의 메시지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가 쉽다.

메시지란 무능과 부패로 민심을 저버리고 사치를 일삼고 미국에 매달리는 장제스와 중화민국 정부의 모습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공산당에 대한 정당성을 심고 반대로 국민당과 장제스를 폄하하는 것이다.    

분명히 허난성 대기근 당시 국민당의 부패와 무능, 역사적 사실과 과오는 부정할 수 없으나 

이는 국민당과 그 위원장 장제스의 *공칠과삼(功七過三)중 철저히 과삼, 과오만을 집중한 것으로 

전체적인 배경을 이해하고 공칠을 알아본다면 다른 평가가 나온다 본다.

  *등소평은 모택동 사후 그를 공칠과삼(功七過三)이라 평가하였다. 중국 건국이 70%의 공 문화 대혁명 같은 패악질이 30%의 과라는 것인데 이는 공산당 지도자의 정치적 평가일 뿐이고 모택동은 권모술수와 정치에 능한 전형적인 공산주의 리더로서 자신의 권력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숙청시키고 죽음으로 이끈 명백한 악인으로 공영과십(功過十)이 어울린다.

 

"중국이 제국주의에 의해서 망한다면 중국인은 망국노(亡國奴)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공산주의에 의해서 망한다면 중국인은 노예로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 장제스  

 

이런 영화의 메시지를 반박하기 위해 그 역사적 배경 2차 세계 대전과 중일전쟁 이야기를 알아본다.

 

 


 

 

 

아는 만큼 몰입된다.
2차 세계 대전과 중일전쟁

 

 

3.  세계 2차 대전과 잊힌 중화민국 

 중일전쟁은 한국인 누구나 알고는 있으면서도 그 내용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2차 세계 대전의 부속 전쟁쯤으로 중국 대륙이 무참히 짓밟힌 전쟁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독소 전쟁이 현대에 와서 가장 치열하고 끔찍한 전쟁임이 재조명된 반면 중국대륙에서

중화민국의 처절한 저항과 그 기여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난징대학살과 741부대로 대표되는 일제의 잔학성은 잘 알려져 있지만 전쟁의 양상이나

중화민국의 전쟁 기여도에 대해선 대다수가 상당히 무지하다 생각한다.    

그것은 냉전을 겪으며 *두 국가의 공로가 적게 평가되는 부분과 함께 통상 접하는 전쟁 영화, 미디어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대표되는 미국이 추축국을 시원하게 참 교육하고 패 부수는 연합국의 승리자로 

소련과 중화민국은 전쟁 초기 추축국에 희생당하는 연합국의 피해자로 접하는 이미지가 크다 생각된다.

무엇보다 소련과 다르게 중화민국은 국공내전에서 패함으로 최종적으론 연합국의 승전국 지위와 un 상임이사국 

자리를 중공의 뺏긴 꼴이니 연합국과 중국 모두 그 기여를 굳이 조명할 필요가 없었다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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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의 사망자 그래픽, 소련과 중화민국은 그야말로 엄청난 희생을 치뤘다.

 위 표에서 알 수 있듯이 2차 세계 대전 최대의 전쟁은 동부전선에서 일어났고 그다음의 희생자가 나온 전장이 중국이다.

독소전은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건 총력전으로 소련은 이 전쟁으로 인구의 10%가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화민국 또한 연합국의 주축으로 엄청난 희생을(군인과 민간인) 치르며 연합국에 공헌했다.  

 미국의 기여도가 절대적인 건 변함없지만 두 국가가 직접 영토를 마주하고 미국을 대신해서 피를 흘리며 

양면 전선을 진행하여 전쟁을 조기 종결시키고 연합국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중국 공산당이 아니다. 연합국으로서 일본과 전쟁은 99% 중화민국이 도맡아 했다.

마오쩌둥은 중일전쟁을 기회로 보고 일본과 전투를 피하고 오히려 국민당의 지역을 공격하며 세를 확장했고 이는 전쟁동안 온 인력과 자원 그리고 민심마저 소모해 가며 전쟁에 전면으로 나선 국민당은 그 여파로 국공내전에서 패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현재의 공산당은 1%의 항일 투쟁 업적을 크게 과장한다.

 

"중일의 싸움은 본당 발전의 절호의 기회이며 우리 공산당의 기본 정책은 전력의 70%를 자기 세력 확대에, 20%를 국민 정부와의 대응에, 나머지 10%를 항일에 사용한다."   -마오쩌둥

 

 요지는 세계 2차 대전에서 중화민국은 연합국으로 *처절한 희생을 치르며 전쟁 승리에 기여했다. 

* 보수적인 통계치 2천만 사망자 -민간인 사망자 포함

 

 

 

 

 

 

 

 

4. 시대의 배경

 

 

중국 대륙은 청의 멸망과 군벌에 난립으로 혼란한 중국 대륙을 쑨원의 삼민주의를 가치로 하는 국민당과 그 위원장 장제스가 북벌을 통해 외형상 중국을 통일을 완료했다. 장제스의 중화민국은 전쟁발발 전까지 1927~1937 황금 10년이라 불리는 경제발전과 개혁을 성공시켰고 주중 독일 군사고문단을 통해 군을 현대화하며 내실을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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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식 장비를 착용한 국민혁명군의 모습

 

1931년 만주사변을 통해 일본제국이 만주국을 세우자 장제스는 일본제국이 미래의 적임을 인식하고 힘을 길렀다.

또한 여러 차례에 초공작전(중국 공산당 토벌 작전)을 통해 공산당을 박멸 직전까지 몰았다.

하지만 예상보다 더 이른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공산당은 생존하게 되고 전쟁초기 수도인 난징을 포함하여 주요 도시를 허무하게 잃어 전황은 좋지 않았으나 교섭하지 않고 수도를 충칭으로 옮겨 항전을 이어간다.

 *5년만 전쟁이 늦게 발발했으면 진전된 공업화와 공산당 박멸로 전쟁에 양상이 달라졌을 거라 보는 견해가 있다.  

"차라리 산산이 부서진 옥이 될 망정 온전한 기와가 되지는 않겠다."  -장제스

 

 

이후 1942년 중국 허난성에 대기근이 든다.

 "스탈린 그라드 전투"  "처칠의 감기" "송미령의 미국 방문" 등과 같은 동시대 외국 이야기를 전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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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회에서 영어로 연설을 하는 *송미령(쑹메이링)

장제스의 부인, 유창한 영어 능력으로 장제스의 통역사로 카이로 회담에서 큰 활약을 하였다.  

 

 

 

 

 

 

5. 중일 전쟁의 양상

 

중화민국은 태평양 전쟁으로 미국이 합류하기 4년 전부터 홀로 일본제국과 싸우며 미국 참전 이후에도 유럽전선에서 연합국들이 미국의 막대한 지원을 받을 때에도 지리적 위치상 큰 지원을 못 받으면서도 말 그대로 사람을 갈아 넣으면서 대규모(80만가량) 일본군을 묶어 두고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부족한 무장을 애국심을 통해 극복하며 일본군의 진격마다 피해를 입혔고 이는 일본군의 자존심을 건드려 난징 대학살 같은 잔인한 보복으로 표출되고 이는 다시 중국의 항일 투쟁의 불씨를 지피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이는 *주요 도시를 장악하면 항일투쟁 의지를 꺾고 항복시킬 수 있다는 일본군 예상과 달리

중국의 강렬한 저항은 대규모의 일본군이 주둔하지 않으면 실효지배가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사실상 일본군은 중국 지배에 대한 이점 없이 대규모의 군인들만 묶이게 되었다. 이를 타계하고 부족한 자원수급을 위해 일본군은 동남아시아로 눈을 돌리게 되면서 태평양 전쟁을 촉발하게 되고 일본은 스스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을 만들었다. 

 일본군은 광활한 중국 대륙에서 예상치 못한 고전을 통해 수렁에 빠져든 것이다.

* 국민당은 주요 도시를 거점으로 하고 일본과 전쟁도 사실상 단독으로 수행했다. 

일본군도 주요 도시를 목표로 진격하면서 자연히 많은 피난민을 발생시켰고 이는 자연히 퇴각하는 국민당 국부군과 피난민과 마찰로 이어졌다. 전쟁 초기 정예병들을 거의 소진한 국부군은 질서와 규율이 바로 서지 않아 민간인들에게 약탈과 범죄가 많이 일어나 민심을 많이 잃었다.  

민심 이탈은 농촌을 거점으로 하는 공산당 또한 똑같았다. 일본이라는 적이 있음에도 국공 합작 중 일본 대신 지주와 부농을 마구잡이로 죽이고 국부군과 일반 민간인을 학살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공산당은 늘 국민당이 일본보다 공산당 토벌에 힘을 사용한다고 선동했고 이 심리전은 아주 유용해서 국민당 내부 쿠데타로 장제스를 감금하는 *시안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시안사건은 초공작전으로 괴멸직전에 몰린 공산당을 구한 사건으로 시안사건이 없었으면 장제스가 공산당을 밀어내고 통일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일제의 침략은 중국 공산당에 큰 이익이 됐고, 중국 인민에게 권리를 되찾아줬다. 일제 황군의 힘이 없었다면 공산당이 집권하지 못했을 것이다.” - 모택동

 

 

 

 

6. Back to 1989 

  

전쟁과 기근 국민당의 부정부패와 무능이 겹치면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고 민중은 고통받는다.

이 영화 Back to 1942에서 시종일관 다루는 내용이다.  

 고증과 역사적 사건의 왜곡등의 분석은 내 지식으론 모르지만 영화 자체가 결론적으로 국민당과 장제스의 무능과 부패만을 조명하며 영화를 본 사람으로 하여금 국민당과 장제스를 만악의 근원으로 묘사하여 자연스레 공산당의 정통성에 힘을 실어주는 서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공산당이 의도적으로 전투를 피하고 농촌에서 세를 확장하며 오히려 국민당 지역을 집어삼킬 때 

항일전선에 대대적으로 나선 국민당이 자연히 도시의 피난민과 엮이며 일어난 피할 수 없는 문제였다.

또한 영화에선 장제스의 무능과 실책을 다루는데 실상 장제스의 존재는 항일 투쟁에 구심점으로 스탈린도 인정한 중화대륙의 리더로 각자 이해관계와 파벌로 통합되지 않은 당과 군대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대척점에 있는 모택동과 비교하자면 장제스가 저지른 과오는 공산주의라는 절대적 악에 맞서기 위해 당시 열악하고 미개한 시대상을 감안했을 때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 많은 반면 모택동은 자기 권력만을 위한 숙청과 학살을 자행한 명백한 악인이다.       

 결론은 사실 영화가 완전한 프로파간다 적인 영화라고는 볼 수 없지만 그 내막을 모르는 이가 본다면 국민당과 장제스의 과오만을 보고 매도하게 되는 영화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올바른 평결을 내리려면 그 공과 과를 전부 따져야 할 것이다.

 Back to 1989 천안문을 기억하며

Back to 문화 대혁명, Back to 대약진 운동을 다룬 영화는 안 나오는가?

이 영화에 대한 평결은 모르겠다.

하지만 공산당과 국민당에 대한 역사의 평결은 어떠한가?



장제스 평전을 읽은 상태에서 영화 1942를 보고 이 영화와 반대되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역사 이야기를 다루고 싶어 써봤습니다.

https://happy-movie.tistory.com/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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