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핑을 좋아하는 내가 해변에서 다른사람만 찍고 있는 이유
제가 서핑하는 모습을 보고는 아무도 알수가 없겠지만 사실 서핑을 시작한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굳이 글을 위해 세어보니 서핑을 시작한지 10년 정도 된듯합니다. 제대하고 집에서 할일없이 뒹굴던 저를 납치해서 보드를 쥐어주고 물에 밀어넣은 친구들이 있었기에 저는 영원히 파도 타기에 중독된 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서핑이라는 것이 참 야속하게도 경력이 오래된 것과 파도 자체를 타는 실력은 완전 별개의 일이라 타는 실력은 거의 초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서핑시작한지 얼마냐 됐냐고 가끔 누군가 물을 때에는 애써 화제를 돌립니다.
제가 처음으로 서핑을 배운 곳입니다. 배웠다기 보다는 이렇게하는거야 알았지? 10초 강의를 듣고 떠밀려 들어가서 뭣도 모르고 보드에 부딧혀 쌍코피가 터졌다는...
어찌되었건 영상제작을 본격적으로 업으로 삼고 카메라에 대해 깊이 공부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서핑을 시작했습니다. 그 때문에 자연스럽게 서핑을 찍고 싶은 생각도 같이 가지게 되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습니다.
한번이라도 도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서핑자체도 온갖 애로사항이 꽃피는 운동이라 짧은 시간내에 실력을 키우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애초에 출렁이는 물위에서 얇은 판대기 하나 위에 균형을 잡고 서있는게 쉬울리가 없지요. 그런데다가 같이 갈 사람들과 스케줄이 맞으면 파도가 안좋고, 파도가 좋으면 스케줄이 안맞고, 스케줄 다 제치고 파도 좋은날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고, 정말 운좋게 맞추어서 좋은 파도도 만나고 사람도 별로 없는데 실력이 안돼서 잘 타지를 못하고. 다른것들이 완벽한 날은 왠지 모르게 자꾸 조류에 걸려서 쓸데없이 체력을 다 써버리거나 전날 술먹고 해장서핑을 해도 괜찮던 몸이 아무이유없이 자꾸 쳐진다거나 정말 오만가지 이유로 온전히 즐기기가 어려운 스포츠입니다.
파도 일기예보를 보는 사이트가 여러군데 있는데, 일부러 파도 좋은날 사람들 몰리지 마라고 이러나 싶을 정도로 잘 못 맞춥니다.
이렇게 서핑만 하려고 해도 머피의법칙이 워낙 충만해서 제대로 하기가 힘든데 그걸 카메라에 담는 일을 배우는 것은 정말이지 많은 실패와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자세교정용 영상을 찍는 다거나 추억용 영상은 얼마든지 찍을 수 있겠지만 좋은 그림을 담아내는 것이 참 어려웠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주변에 누구 물어볼 사람도 없고 온라인에서 찾아봐도 서핑 자체에 대한 이야기만 수두룩하고 찍기 위해서 뭘 어떻게 해야한다는 제대로 된 자료가 거의 없었습니다.
서핑하시는 분들은 웬만하면 아실 솔로샷, 손목에 차는 팔찌 같은 것을 추적해서 자동으로 영상을 찍어주는 기계입니다. 누군가 찍어줄 사람이 없다면 자세교정용으로는 훌륭한 도구입니다만 영상미를 추구한다면 적합한 방법은 아닌것 같습니다. 이미지 출처 - Soloshot
고프로를 보드나 몸에 :
처음에는 보드에다가 고프로를 달아서 찍는 방식으로 영상을 만들어봤습니다. 한참 고프로가 유행할 때에 구매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고프로만 가지고 찍어보니 앵글이 단조롭고 금방 지겨워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찍을 수 있는 사람이 카메라를 달아준 사람에 한정되어버려 멋있는 샷을 하나도 건지지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고프로는 분실이 너무 쉬웠습니다. 아무리 안전끈을 매어놔도 큰파도가 한두번 휩쓸고 통돌이를 돌고 나오면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파도가 치는 바다 바닥에서 무언가 찾으려 해보신적이 있다면 제 기분을 공감하실 것 같습니다. 후에 생각해보니 고프로는 과장 좀 보태서 거의 소모품이라고 봐도 될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분실된 고프로를 발견한 사람이 원래주인을 찾아주는 전문 웹사이트까지 생길 정도입니다.
결국에 고프로는 그냥 자세교정용으로 주로 쓰이고 아주 가끔 서핑영상에 다른 앵글을 추가하고 싶을 때 서퍼의 보드나 가슴에 달거나 입에다가 물려서 찍기도 합니다. 그리고 고프로는 광각이라 서퍼 뒤의 파도가 작아보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분명 평소보다 큰 파도를 잡아서 흥분해 있었는데 고프로로 찍은걸 돌려보면 별로 안커보이는 마법을 부립니다. 그럴 때면 억울하게도 와이프의 '뭐야? 컸다며?' 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파도를 탈때 저는 분명 멋있는 자세를 잡고 있었는데 찍힌 영상을 보면 탈춤을 추고 있습니다.
뭍에서 망원렌즈로 :
뭍에서 찍는 방법은 먼거리에서 망원렌즈로 찍어야 합니다. 이 방식으로 비디오를 안정적으로 찍으려면 일단 화각이 아주 좁고 화질이 좋은 망원 렌즈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길고 무거운 렌즈와 카메라의 무게를 견디면서도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는, 비디오용 삼각대 중에서도 좀 무겁고 좋은 녀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먼 거리에서 찍을 때에는 떨방이 오히려 화질에 안좋은 영향을 끼칠 때가 있어서 끄고 찍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에는 정말 숨도 안쉬고 트라이팟 헤드를 잡고 돌립니다.
해변가에 크게 돌출된 바위 위에서 촬영하다가 핸드폰으로 찍었습니다. 만조때는 주변에 물이 차서 나갈수가 없고 물이 빠지길 기다렸다가 내려와야하는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콘탁스 자이스 100-300 입니다. 중고물량이 없어서 flickr 에서 렌즈정보를 찾아 대만에 사시는 분에게 겨우 구했습니다. 빈티지에 속하는 오래된 망원렌즈라 오토포커스나 손떨방 따윈 없고 줌 방식도 푸쉬 풀입니다. 300mm도 서핑을 찍기에는 짧기 때문에 2x 망원컨버터와 카메라의 크롭모드를 써야합니다.
사진을 취미나 업으로 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망원렌즈는 일반 렌즈보다 복잡하기도 하고 기본재료가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일반 렌즈보다 비쌉니다. 일반적으로 밝고 긴 렌즈일수록 더더욱 비싸집니다. 비싸지기도 하고 무거워지기도 합니다. 트라이팟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게 비싸고 비싼게 무겁습니다. 물론 삼각대 다리가 카본으로 나오기도 해서 조금 무게를 덜순 있겠지만 삼각대 헤드 무게는 그대롭니다. 그리고 삼각대가 무거워야 안정적이기도 하고 무거운 카메라 무게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스팟마다 다르지만 무거운 장비를 들고 꽤 걸어들어가야 좋은 자리에서 파도를 찍을 수 있는 곳들이 있습니다. 제일 찍기 편한 곳은 주차장에서 라인업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고, 제일 힘든 곳은 차로 들어가는 길이 없어서 등산길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 곳들 입니다.
그냥 등산길이면 크게 불만이 없겠지만 발이 푹푹 빠지는 흩날리는 모래언덕을 넘어가야 하는 곳에서는 욕이 노래가 되어 나옵니다.
친구들은 보드 들고 신나게 파도를 향해 패들하는 동안 저는 낑낑대며 목이 좋은 자리를 찾아 삼각대와 카메라를 설치하고 찍을 준비를 합니다. 준비를 다하고 라인업을 향해 망원렌즈를 대어 뷰파인더로 그림을 확인하면 저를 맞이하는 것은 보통 바다 위에 떠있는 까만 점들입니다. 대부분의 서퍼들이 까만 웻숫트를 입고있고 뭍에서 찍을 때에는 거리가 멀다보니 제가 찍어야 하는 서퍼를 찾는 것조차 쉽지가 않습니다. 사람이 많은 날이면 정말 미칠 지경입니다. 스나이퍼 팀 처럼 제 옆에서 누가 쌍안경으로 체크하고 어디로 찍어야 하는지 좀 알려줬으면 하고 생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화각이 좁다 보니 한눈에 체크하기가 힘들고 파도와 서퍼들은 항상 움직이기 때문에 잠시만 정신을 놓고 있거나 핸드폰을 보고 있으면 피사체를 놓칩니다. 그냥 다른 자리로 옮긴 것이면 다시 찾으면 되니 상관없지만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좋은 파도를 잡았다거나 하면 나중에 그 서퍼가 어김없이 물어옵니다. '님 내가 아까 탑턴 쩔게 한거 찍음?' '쏴리 ....못봄'. 이 질문에 no로 대답하면 정말 크게 실망했지만 쿨한척 하는 서퍼의 모습을 관찰 할 수 있습니다. 직접 경험하지 않는 이상 이게 왜 찍기가 쉽지 않은지 서퍼입장에서는 체감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물 속에서 언더워터 하우징으로 :
물 속에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서 서퍼와 최대한 가까이서 찍는 방식입니다. 사실 이건 아직 제가 한적은 없습니다만 들은 이야기로는 일단 체력이 좋아야합니다 (저는 다음생에). 좋은 샷을 찍으려면 서퍼가 움직이는 방향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찍어야 하고 서퍼의 라이딩에 방해가 되면 안되기 때문에 항상 움직여야 합니다. 거기다가 큰 파도가 치는 곳에서 그냥 수영만 해도 힘들텐데 그 와중에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운용해야 합니다. 오리발은 필수 입니다.
이미지 출처 - Aquatech
수중촬영 하우징의 경우 카메라 모델마다 버튼의 레이아웃이나 크기, 길이 등등이 제각각이라 카메라에 맞는 하우징을 구입해야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우징에 물이 들어가면 낭패이기 때문에 관리를 아주 철저하게 해야하고 고무씰 접합부분에 머리카락 한올이라도 있으면 안된다고 들었습니다.
날씨와 자연광 :
대부분의 소규모 야외촬영에 해당 되는 일이지만 촬영 가능 유무와 샷의 퀄리티는 날씨와 주어지는 자연광에 따라 크게 좌우됩니다. 해변가는 기본적으로 날씨가 자주 바뀌기 때문에 비 맞을 각오는 당연한 것이고 카메라가 젖지 않도록 단단히 대비해야 합니다. 저는 쫄딱 젖은 강아지 꼴이 되더라도 카메라는 젖으면 안되기 때문에 입고 있던 비옷을 벗어 카메라에 싸매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카메라를 위한 방수 기어가 있긴 하지만 망원렌즈 크기와 모니터 때문에 너무 불편해서 잘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햇빛이 너무 내리쬐는 날도 별로입니다. 덥고 피부가 타는건 둘째치더라도 피사체 디테일이 다 날아가서 이뻐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흐리기만 한 날에는 빛에 다양함이 없어서 심심해집니다.
모든게 완벽할 때 :
글을 쓰다보니 뭔가 불평불만만 잔뜩 늘어놓게 되었는데,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니 제가 서핑을 엄청 싫어하는 사람이 된 것 같네요 ㅎㅎ 결과적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 모든 걸 감안하더라도 가뭄에 콩나듯 얻을만한 가치가 있는 결과물을 얻을 때가 있어 서핑 촬영을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정말 기적처럼 운좋게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질 때가 아주 가끔씩 있습니다.
친구와 별 생각없이 떠난 로드 트립에서 완벽한 파도, 완벽한 노을 그리고 파도를 멋있게 타준 서퍼까지 만난 일이 있었는데 이 여행에서 별 생각없이 찍어모은 영상물을 후일 나레이션과 엮어 초심자들을 위한 미니 다큐멘터리도 만들었습니다.
정말 이렇게 삼박자가 잘 맞는 날은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우연히 라인업에서 만난 꼬맹이에게 제안해서 촬영한 적도 있었습니다. 집에서 카메라를 실고 다시 스팟으로 왔을 때, 블루아워로 파랗게 물든 늦저녁 하늘 아래 꼬맹이의 완벽한 롱보드 라이딩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이 꼬맹이는 후에 각종 대회에 출전해서 우승도 하고 좋은 성적을 냈었는데, 제가 만든 영상이 출전자격을 받는데에 도움이 되었다고 해서 뿌듯했습니다. 롱보드 서핑의 세계에서 아주 중요한 대회인 누사 페스티벌에도 초청되어 갔을 때에는 제가 간건 아니지만 아주 기뻤습니다.
행텐을 밥먹듯이 하시네요. 저는 아무래도 다음생에서 다시 도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꼬맹이 풀영상 - Walking though Summer
주로 제가 찍는 입장이다 보니 저를 찍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정작 제가 타는 사진이나 영상은 별로 없는데, 은혜로운 와이프님이 가끔가다가 카메라를 잡아주시기도 합니다. 와이프님 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