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의 역사
나는 살면서 많은 실패를 겪어봤다.
유치원 때 짝사랑하던 여자애가 있었는데
말도 한번 제대로 건네지도 못하고 좌절했던 적이 있다.
초등학교 때 역시 짝사랑하던 여자애가 있었다.
물론 말도 한번 제대로 건네지 못했다.
그 애가 날 싫어한다는 걸 표현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는 주변에 여자애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TV 속 여자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그녀는 날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 순 없지만
적어도 대놓고 그녀가 날 싫어한다는 표현은 들을 수가 없었다.
브라운관 속 그녀는 항상 해맑게 웃고 있었다.
나도 행복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주변에 여자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남고에 입학했다.
하지만 TV속 그녀는 그대로 있다.
여전히 시간이 지나도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행복했다.
대학교에 들어갔다.
고등학교와는 다르게 여자애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말조차 건네지 않았다.
실패의 역사를 쓰지 않기 위해서
대학교 밖을 나왔다.
정말 많은 여자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한 여자만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말이 없고 수줍으며 귀여웠다.
나는 큰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말을 걸고
그녀에게 조그만 선물을 주고
그녀와 가까워지길 원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떠올렸다.
지난 실패의 역사들을
불안정함을
결국 그녀와 나는 서로의 이름도 모른채
그렇게 끝났다.
시간이 흐르고 그녀를 그리는 시간이 점차 잊혀지더니
지금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아무렇지 않게 나의 역사를 꺼내는 순간이
어쩌면 지금 이렇게 새드엔딩으로 끝을 맺는 것이 서로를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행복을 위해
그녀에게 나의 실패의 역사들을 보여주지 않게 됨에
그로써 그녀에게 나의 어두운 면과 고통을 나눠주지 않게 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