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동물들에 대해
cddd3
11
1846
42
0
2018.08.17 11:32
씹덕 펭귄
2017년, 일본 사이타마의 도부동물공원에서 이벤트로
각 동물의 우리에 동물이 미소녀로 의인화된 형태인
'프렌즈'의 패널을 설치했고, 훔볼트펭귄 우리에도
훔볼트펭귄의 프렌즈인 후루루의 패널이 설치되었다.
패널이 설치되는 기간은 2017년 4월 22일에서
6월 25일까지.
그런데 한 펭귄이 이 패널을
하루 종일 쳐다보기 시작했다.
해당 펭귄의 이름은 グレープ(그레이프)이며
당시 나이는 할아버지인 20세였다.
그레이프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성우에게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오로지 패널만
바라볼 뿐이었다.
(패널에게 구애의 춤을 추는 그레이프)
사육사의 말에 따르면, 그레이프는 원래 "미도리"
라는 암컷 펭귄과 부부 사이였는데, 이 펭귄이
젊은 수컷이랑 바람나는 바람에(...) 무리와
거리를 두는 와중 패널이 설치되자 집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한 마리가 더 입덕하더니,
4마리로 늘었다가
나중엔 거의 종교 수준이 되었다.
패널들은 라이센스 계약 상 6월 25일 까지가
전시 기간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요청으로
후루루 패널만큼은 설치를 유지했다.
그러다 2017년 10월 12일, 그레이프는
결국 노환으로 인해 사망했고, 추모의
물결이 이어졌다. 마지막 순간까지
후루루를 응시했다고 한다.
이에 원화가인 요시자키 미네는 그레이프를
추모하기 위해 그레이프와 후루루가 함께 있는
그림을 그려 동물원에 선물했고, 동물원은
이 그림을 패널로 만들어 설치했다.
원본은 찡그린 표정이었지만,
지금은 미소를 지은 모습이다.
늑대왕 로보
1891년, 다른 늑대들의 우두머리로 군림하여
무리를 이끌고 미국 뉴멕시코 주 농장들을 마구
난장판으로 만들며 악명을 떨친 늑대가 있었다.
그 늑대의 이름은 로보. 녀석이 이끌은 늑대 무리는
2년여 동안 양과 소, 염소 수천 마리를 잡아먹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로보를 잡기 위해 혈안이었다.
그러나 얼마나 교활했는지 그 어떤 속임수 및 함정도
로보를 잡기엔 역부족이었다.
로보는 인간들이 교묘하게 뿌려놓은 독을 피하게 위해
자기 부하들에게 자기들이 직접 죽이지 않은 먹이는
먹지 못하게 하였다.
인간을 조롱하듯 덫과 미끼 위에 변을 보는가 하면,
총의 무서움을 아는지 절대 인간과 대적하진 않았다.
그만큼 로보는 영악했다.
그러나 어느 날 로보가 아끼던 암컷인 블랑카가 먼저
잡혔고, 이어서 사냥꾼들은 블랑카의 다리를 잘라
발자국을 만들어 로보를 함정으로 유인했다.
그렇게 결국 로보마저 잡히고 말았다.
로보는 잡힌 뒤 사람들이 주는 물도, 먹이도 먹지
않았고, 1894년 1월 31일에 스스로 굶어 죽었다.
이후 로보와 블랑카는 함께 묻혔다.
(로보의 털가죽)
이후 로보의 이야기는 시튼 동물기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되었고, 월트 디즈니에서 영화화 되기도 했다.
전쟁의 영웅
1952년 부터 1959년 까지 미 해병대에 복무한
전설적인 영웅이 있다.
바로 레클리스 중사다.
레클리스는 원래 서울 신설동 서울경마장에서 지내온
암컷 경주마 "아침해"였다.
이 말은 무척 아끼던 마주 김모씨는 전쟁 중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은 누나의 의족을 구하기 위해서 아침해를
에릭 페더슨 중위에게 팔았다. 그렇게 아침해는
미 해병대에 입대하게 된다.
아침해는 한국전쟁에서 탄약수송병으로서 임무를
수행했다. 총알과 포탄이 사방에서 날아오는 전장에서
용맹히 탄약을 나르는 아주 중요한 역할이었다.
1번 만에 길을 외워 알아서 길을 찾아갔고,
적의 사격이 시작되면 사격이 끝날 때 까지
엎드려 기다렸으며, 부상을 입어도 끝까지
임무를 완수했다고 한다.
특히 한국전쟁에서 가장 치열하기로 손꼽힌다는
네바다 전초 전투에 참가해 빛나는 공을 세웠다.
전투 첫날 아침엔 혼자 탄약 보급소에서 산 고지까지
51회를 왕복하면서 포탄을 날랐는데, 그 날 사용한
포탄의 95%인, 4톤 가량을 혼자 운반했다고 한다.
아침해는 5일간의 전투 중에 총 376회 왕복, 거리로는
56km를 오르내리며, 용맹히 임무를 완수했다.
당시 전투에 참가한 Babbit 상사는 "용맹히 총탄을 뚫고
생명과도 같은 포탄을 날라준 아침해의 모습을 보고
모두 감동하여 사기가 진작돼 적을 괴멸시키는 원동력
이 되었다."고 전했다.
동료 해병들은 아침해에게 레클리스(Reckless),
겁없는 여자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휴식 중 맥주와 초콜렛을 즐기는 레클리스)
레클리스는 한국전쟁 휴전 이후인 1954년,
에릭 중위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지내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전장에서 세운 공로를 인정받아
퍼플하트 훈장 2개, 모범 근무장, 미 대통령 표창,
미국방부 종군기장, 유엔 종군기장, 한국 대통령
표창장을 받게 되었고, 1997년엔 라이프 매거진에서
미국 100대 영웅에 선정되었다.
레클리스는 1968년에 죽었고, 미 해병대는
정식으로 엄숙한 군 장례식을 치러주었다.
기지 내 묘지에 매장하였으며 레클리스가
기거한 마구간 옆에 기념비를 세웠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선 별로 유명하지 않지만,
미국에선 동상으로 기릴 정도로 유명하다.
2013년 7월 26일, 한국전쟁 휴전 60주년을 맞아
레클리스의 헌정식을 열었을 때의 사진이다.
이전글 : 20년동안 골동품을 모아온 아저씨의 최후
다음글 : 쇼케이스 조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