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일본인들이 착검돌격한 사건
에그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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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8 15:12
뭐 비슷한 부류로 프랑스의 엘랑비탈이나 러시아의 우라 돌격은 있지만
그건 적어도 후방의 화력 지원이 빵빵하고 기관총도 들고 돌격했다는 점이 다르다
미군 기관총 진지에 갖다 박아버리는 개똘기를 보여주며
현재 반자이 돌격의 인식은 좆본군의 막장성과 ㅂ신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돌격이 일본과 미국과의 태평양 전쟁에서만 발생한 것으로 알지만
놀랍게도 유럽에서도 반자이 돌격이 이뤄진 경우가 있다.
무려 미군 쪽에서!
중국계와 일본계가 태평양 연안의 미국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한다
뭐 이민 1세대는 미국인보다는 자기 본국의 정체성이 강했지만
몇 세대가 지나자, 이들은 자신이 태어난 미국을 모국으로 여기기 시작한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대다수의 2~3세대 동양계 미국인들은
자기 부모님의 본국 언어도 못할 정도가 된다
그러나 미국인으로써 살아가던 이들에게 핵폭탄급 재앙이 찾아오니
"이렇게 맛갈나게 뺨을 후려갈기면 무서워서 나랑 협상하겠지?"
-일본 군부-
바로 일본이 저지른 신종자살방법인 진주만 기습이 그것이다
당연히 전미는 민간 시설까지 총탄을 갈긴 일본에 대해 개빡쳤고
모든 일본계 미국인은 일본과 내통할 수 있는 잠재적 적군으로서
미국사회에서 굉장히 배척받는 존재가 되었다
자신이 일본계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중화민국 깃발을 꽂고 해수욕하는 중국계 간호사
심지어 이는 외양이 비슷한 중국계, 한국계도 싸잡아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도 그나마 미국의 정치인들은 일본계와 중국계, 한국계를 분리해서 보았지만
일본계에 한해서는 행정명령 9066호로 일본계 미국인 12만명이
아이다호, 유타, 아칸소에 건설된 수용소로 이송되었고, 재산권도 인정되지 않았다
참고로 수용소로 간 이들은 모두 미국 시민권자로
그저 조상이 일본 출신이라면 무조건 끌고 간 것이다
참고로 11000명의 독일계와 3000명의 이탈리아계도 수용되었는데,
문제는 미국의 대략 30%가 독일계이고, 북부에도 수많은 이탈리아인 커뮤니티가 존재해
말그대로 보여주기식이었고 수용소 내 대우도 일본계 미국인과는 차원이 달랐다
근데 실제로도 하와이의 일본계 주민이
일본의 진주만 정찰을 암묵적으로 묵인하거나 도와줬고
일본계 1만명이 일본 육군에 기부금을 보내고, 5000명이 미국에 협조를 거부한다
또한 아예 일본군에 입대한 일본계도 1600명정도 된다
즉 자업자득인 부분도 있긴했지만
나머지 절대다수의 10만명 정도의 일본계는 그저 일부 미친놈들 때문에 피를 본 것이다
수용되는 일본계 미국인들, 근데 이들 대부분은 일본어도 모르는 수준....
결국 행정명령으로 자신의 모든 재산이 압류당하고, 직장에서 강제 해고 당한
12만명의 일본계 주민은 수용소로 수용된다
심지어 브라질을 제외한 남미에서도, 일본계를 축출해 미국 수용소로 보냈다고 한다...
많은 일본계들은 그저 자신의 혈통만 일본일 뿐 정체성은 미국인이었고
그들은 조국 미국에 대한 충성을 입증하기 위해
수용소 내 전시물자 생산에 적극 협력하고, 아예 심지어 미군에 입대한다
적국인 독일계인데요???
기독교 + 유럽 문명 브라더인데
저 빤쓰만 입고 포로 목베는 미개인들이랑 같음???
그러던 중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군이 박살나며 전황이 반전되고.....
당시 미국 군부는 일본계의 충성심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이 박살나며, 사실상 태평양 전선의 승패가 정해지자
미국 정부는 기존의 일본계 입대 거부 방침을 전환하기로 결정한다
근데 사실 그보다도 입대 허용 방침은
입대자들도 수용소 안에 가족이 있기에 일종의 인질 개념이 컸다
당시 미군에는 한국계와 중국계는 이미 복무 중이었다
많은 중국계 병사들이 미군 소속으로서 중국으로 보내져, 중일전쟁에 참전했고
한국계도 일본계와 구분된 존재로 보아, 격리되지 않고,
중일전쟁, 혹은 해군 정비사로 일하게 된다
이제는 일본계로만 이뤄진 유럽 전선 내 최초의 동양인 부대인 100대대가 창설된다
별명으로는 일본어로 2세를 뜻하는 니세이 부대다
격리된 일본계 주민들
병사들은 자신의 충성심을 입증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사기로 무장했지만
많은 숫자의 백인 병사들은 이들을 일본군 스파이나, 옐로우 몽키등 비웃거나 차별할 뿐이었다
또한 이들 부대의 보급 순위도 항상 후순위였고
장비 또한 백인 부대보다 열악한 편이었다
이딴걸 보급이라고 줌??
Young-Oak Kim이다
여기 일본계만 올 수 있는 부대인 거 모르셨습니까?
그러던 와중 일선 지휘관으로 김영옥 소위가 이 부대로 배정되는데
김영옥은 한국계였지만, 일선 실무자들은 동양계에 대한 기본 지식조차 없었고
뒤늦게나마 이를 알게된 대대장은 그를 다른 부대로 보내주려고 했지만
김영옥은 위의 간지나는 발언을 통해 부대에 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피식민국인 한국계와 식민국인 일본계간의 불편한 부분이 있긴 했다.
다만 김영옥은 매우 터프한 인물이었고, 카리스마로 부대원들을 휘어잡으면서
동시에 한국계, 일본계를 떠나 모두 미국인이라는 것을 상기시키고
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였다
그러기에 점점 많은 부대원들이 한국계인 김영옥을 믿기 시작한다
그런 와중 이들은 미 육군 제 5야전군에 배속되어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된다
우왕 내 일생 8년에서
심지어 민간인들조차 이질적인 외모의 이들을 보고 놀라거나 은근히 차별했다
뭐 근데 이건 당시 이들이 상륙한 이탈리아 남부는 깡촌중의 깡촌이라
진짜 동양인을 처음 보는 이탈리아 농민들이 많았다
그래서 놀라기는 했지만
물자가 풍부한 미군이라 포도주 같은 것으로 물물교환도 했다고 한다
나치깃발을 노획한 니세이 부대원들
그러나 이들은 다른 백인 병사들보다 더 투지있게 싸웠고
부상병만 받는 훈장인 퍼플하트만 받는 부대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격렬하게 싸웠다
또한 이들은 특이하게도 육탄돌격을 매우 선호하여
방어하는 독일군의 기를 죽이기도 했다
그렇게 그들은 이탈리아를 넘어 프랑스의 비퐁텐느로 향하는데
실제로 독일군도 몰래 통신교란을 일으키려고 시도했는데
이들은 암호 대신에 일본어로 교신해서, 그냥 바로 들켰다고 한다
이런 사소한 찐빠가 있는 와중, 주력 부대인 텍사스 연대가 비퐁텐트 지역에서 독일군에게 고립된다
그렇기에 해당 지역 사령관은
깡좋고 빠른 니세이 부대를 그들의 구원부대로 보내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이들은 사실상 주력인 텍사스 연대조차 탈출 못한
겹겹이 싸인 독일군의 포위를 뚫어야 하는 것이었고
상부의 지원이나 엄호는 없었다.
즉 이들은 맨몸뚱이로 주력부대도 못 빠져나가는
독일군 포위망을 뚫어야 했다는 것이다
독도법을 이용해 빠르게 우회하면서도, 우회가 불가능한 독일군 진지를 격파했고
그들은 Go for broke, 싸우다 뒤지자를 외치며 진지로 돌격한다
그렇게 텍사스 연대와 지척인 부분까지 접근했지만, 너무 많은 부대원들이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러기에 소대장이었던 김영옥이 직접 수류탄을 들고 기관총 진지로 접근한다
(살금살금)
미군이 더 오기 전에 재장전해라
근데 저기 달려오는 쟤네는 뭐냐??
Fucking BANZAI!!!!!!!!!!!!!!!!!!!!!
소대장인 김영옥이 직접 돌격하다 쓰러진 것을 본 니세이 부대원들은
이에 분개하여 직접 총검을 M-1 그랜드 소총에 꽂고 반자이 어택을 시전한다
당연히 기관총 앞에 총검 꽂고 돌격하는 걸 처음 본 독일군은 굉장히 당황했고
그틈을 타서 총상을 입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던 김영옥이 기어가서
그 독일군 진지에 수류탄을 까넣었고, 돌격은 성공하게 된다
이 돌격은 유럽 전선에서 실행된 유일한 반자이 돌격으로 기록되었다
다만 연속된 돌격으로 부대원 대다수가 부상을 입거나 사망했다
그러나 기관총의 폭음에 절망하여 주저 앉은 텍사스 연대 앞으로
피투성이가 되어 뛰어오는 니세이 부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끝내 포위망을 뚫어버리고 주력인 텍사스 연대 구출에 성공하게 된다
Thank you for your Service!!!!
많은 백인 부대들에게 차별 받던 니세이 부대는
매우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까지
텍사스 연대를 구출하자
텍사스 연대와 많은 백인 장병들은 그들을 인정하게 된다
이러한 성과를 본 군부도 그들에 대한 의심을 버리고
이를 벤치마킹한 제 2, 제 3의 니세이 부대를 창설하기 이른다
부상을 입은 김영옥는 로마로 후송되었는데, 거기서 전공을 보고받은
미 육군 중장 마크 클라크는 자기의 전속부관의 대위 계급장을 떼서
즉석에서 진급시키고, 은성무공훈장을 수여한다
그러나 총상이 악화되어 그는 로스엔젤러스로 후송되어 전쟁 종료 때까지 휴양 생활을 한다
참고로 그에게 계급장과 무공 훈장을 수여한
마크 클라크는 훗날 한국전쟁 당시 UN군 최고사령관이 된다
또한 니세이 부대의 전공으로
유럽으로만 배치하던 일본계 중 일본어를 할 줄 아는 병사를 차출해
태평양 전선으로 보내서 미군으로서 일본군과 싸우게 된다
웃긴건 오키나와나 일본 본토 상륙 때
처음으로 일본땅을 밟아 본 일본계도 많았다
니세이 부대원들을 만나는 트루먼 대통령
몇 년후 대전쟁이 끝나고 수용소는 해체되어 이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사회에서는 아직도 동양인과 일본계 차별이 만연했다
이들은 큰 희생을 치뤘음에도,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고
단순히 아버지, 할아버지가 일본인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그동안 모은 재산을 잃어버리고, 더 나아가 그들의 아들, 딸들도 사망한 것이었다
생존 니세이 부대원들을 만난 오바마 대통령
그러나 미일관계가 동맹국으로 발전하면서
일본계를 강제 수용했던 행정명령 9066호 역시 거센 비판을 받게되었고
최종적으로 1988년 레이건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이 사건에 대해 사과하게 된다
또한 일본계 의원인 마이크 혼다의 노력으로
오바마 정부에 의해 공식적인 참전용사로 인정받고
이 사건을 미국 교과서에 정식 등재 시키는데 성공한다
참고로 마이크 혼다 하원의원은 일본계이지만
대한민국 위안부 문제를 전세계에 알리는 데 도와준 인물이다
현재 일본계 커뮤니티에서 니세이 부대원들은 큰어르신으로 존경을 받고 있고
많은 수의 니세이 부대원들이 사망했지만
미국 사회는 그들을 더이상 잽스가 아닌 워 히어로, 전쟁 영웅으로 부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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