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자 손석희 앵커브리핑...김주혁 추모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합니다.
30년쯤 전, 11월의 쌀쌀해진 날씨 속 저는 야근 중이었습니다.
대개 방송사의 야근이라는 것은 일이 있건, 없건 눈 붙이기는 쉽지 않아서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새벽녘이 되었을 때 갑작스러운 제보가 하나가 들어왔지요.
올림픽대로 동작대교 부근에 봉고차가 하나 뒤집어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급히 달려나가 보니 차량의 앞쪽은 거의 완파돼 있었고, 운전자는 현장에서 그만 사망한 뒤였습니다.
때가 김장철이어서 그런지 봉고차와 부딪힌 1톤 트럭에 실려 있던 배추가 사방으로 흩어져 더욱 정신이 산란했던 그 새벽…
문제는 사망한 운전자의 신원을 알아내야 기사를 쓸 터인데 아무리 뒤져봐도 그 상황에서 그를 알아낼 단서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망설임 끝에 그의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면허증을 찾던 순간,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가슴은 아직도 따뜻했기 때문입니다.
주소지가 은평구 수색동으로 돼 있던 그는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가슴이 따뜻하게 뛰던 누군가의 가족…
삶과 죽음의 경계는 그렇게 찰나인 것이어서 허망하기도 하고 또한 두렵기도 한 것…
저는 다른 이의 그 엄숙한 경계선에 서서 단지 기껏 그의 신원을 알아내려고만 온갖 방도를 찾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오늘 한 사람의 배우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마침 얼마 전에는 저널리즘을 다룬 드라마에 출연해서 그 나름의 철학이 있는 연기를 보여주어서 비록 그것이 드라마이고 또 연기였다고는 해도 저희 같은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연대감도 생겼던 터….
그의 안타까운 죽음을 놓고 겨우 몇 번째 순서에 얼마큼 보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착잡한 오늘….
굳이 그의 신원을 알기 위해서 안주머니에 손을 넣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그의 가슴이 따뜻하리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 수 있는 오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