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당대 최고의 천재들의 대결, 최단시간강하곡선 문제
1696년 6월 요한 베르누이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학술행적집>에 출제한다:
물체가 한 점에서 (바로 밑에 있지 않은) 다른 점으로 이동할 때, 어떤 경로를 따라 이동해야 가장 적은 시간이 걸리는가?
(트랙과 물체 사이의 마찰력이나 공기의 저항 같은 비보존력은 고려하지 않고, 물체는 오직 중력에 의해서만 가속된다)
이 문제를 보통 Brachistochrone 문제라고 부른다.
당시 유럽은
영국의 뉴턴,
스위스의 야곱 베르누이,
독일의 라이프니츠와 같은 위대한 천재들이 활동하고 있던 시기였다.
요한 베르누이는 자기가 이러한 천재들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 문제를 출제한 것이다.
(67세 때의 뉴턴)
사실 이때 뉴턴의 학문적 전성기는 이미 끝난 상태였다. 뉴턴은 이미 대학을 떠나 조폐국에서 감독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누가 미적분을 먼저 발견했는가를 두고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둘은 서로 상대방이 자신의 업적을 도둑질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라이프니츠 편이었던 베르누이는
내심 뉴턴은 이 문제를 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얼핏 보기에, 이 문제는 매우 쉬운 문제같아 보인다. 물리학에 무지한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당연히 최단경로인 직선을 따라 이동할 때 가장 적은 이동시간이 소요되지 않을까?"
물체의 속도가 일정하다면 그 말이 맞다. 하지만 이 상황에선, 물체는 중력에 의해 끊임없이 가속된다.
경로가 직선경로보다 더 가파르다면 물체는 중력에 의해 더 큰 가속도를 얻어 더 빠르게 운동한다.
하지만 너무 가파르다면 물체가 이동해야할 거리가 너무 늘어나서 결과적으로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 두 요소를 잘 조정해서 가장 적은 시간이 걸리는 최적의 경로를 찾아야한다.
사실 이 문제는 요한 베르누이가 문제를 출제하기 반세기도 전에 갈릴레오가 이미 풀이를 시도한 문제다.
하지만 미적분이 없었던 시절이라, 갈릴레오는 잘못된 답을 낸다.
갈릴레오의 답은 경로가 원호일 때 최단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원호를 그리고,
그 원호로 두 지점을 연결하여 물체를 미끄러트리면,
분명 직선경로일 때보다 더 적은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이것이 최단시간임을 갈릴레오는 정확히 증명하지 못했다.
최단시간이 소요되는 경로가 무엇인가? 이것이 요한 베르누이의 문제인 것이다.
정답은 사이클로이드 곡선이다.
사이클로이드란, 직선 위로 원을 굴렸을 때 원 위의 정점이 그리는 자취이다.
위 그림은 사이클로이드 곡선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위 그림은 직각삼각형 경로, 사이클로이드 경로, 직선경로를 따라 움직이는 물체의 운동을 비교하여 보여준다.
사이클로이드 경로를 따라 움직이는 물체가 가장 적은 시간을 소요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한 베르누이는 <학술행적집>에 문제를 출제하며 6개월의 시간을 준다.
약 6개월 후인 12월에 요한 베르누이는 라이프니츠로부터 이 문제를 풀었다는 편지를 받는다.
라이프니츠는 그 편지를 통해 제한 기간을 부활절(4월 16일)까지 연장하고 이 문제를 유럽 전역에 출판할 것을 요청한다.
그 때까지 뉴턴으로부터 아무 소식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뉴턴이 이 문제를 풀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승부를 확실히 내기 위해, 그들은 문제를 뉴턴에게 직접 우송하고 다음과 같은 광고를 게재하였다:
"만일 기하학자들이 보다 깊은 우물이라 할 수 있는 곳에서 끌어올린 이 문제들의 해를 신중히 조사한다면
(중략) 그들은 우리의 발견을 훨씬 더 가치 있게 평가할 것이다.
이 탁월한 문제들을 풀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후략)"
뉴턴은 1697년 1월 29일에 베르누이가 보낸 문제지를 받게 된다.
요한 베르누이와 라이프니츠의 진짜 의도가 무엇이었든간에 뉴턴이 이것을 자신을 향한 도전이라고 받아들였다.
뉴턴은 다음날인 1697년 1월 30일에 문제의 답이 적힌 편지를 쓴다.
당대 최고의 수학자들이 몇 개월에 걸쳐서 풀거나 혹은 아예 풀지 못한 것을 뉴턴은 하루만에 풀어버린 것이다!
라이프니츠의 해를 제외하고 베르누이는 두 개의 답안을 더 받았다.
하나는 프랑스의 로피탈로부터 온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국에서 익명으로 보내진 것이었다.
베르누이는 익명의 답안을 보고 "사자는 발자국만으로도 알아볼 수 있다"라고 말하며 해당 답안이 뉴턴의 풀이임을 알아보았다고 한다.
(뉴턴의 답안. 증명과정 없이 그냥 답만 있다)
한편 라이프니츠는 예상 외의 패배에 당황한 듯, 영국 왕립학회에 그 문제의 출제자는 자신이 아니었다는 편지를 보낸다.
뉴턴은 반대로 라이프니츠와 베르누이에게 자신이 만든 문제를 보낼까 했지만 결국에는 그러지 않았다고 한다.
뉴턴이 플램스티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저는 수학적인 문제로 외국인들이 저를 놀리고 괴롭히는 것을 굉장히 싫어합니다"라고 말한 것을
볼 때 뉴턴도 이러한 도전 자체를 즐긴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는 예전에는 뉴턴, 라이프니츠, 베르누이 같은 당대 최고의 천재들만이 풀 수 있는 문제였지만 오늘날에는 고작 물리학 전공 2학년이면
이 문제를 풀 수 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은 어렵지만, 남이 이미 창조해낸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