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 노래 나오고 꼭 제가 불러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왜냐하면 저는 평생 이등병이거든요. 6개월 다녀왔습니다. (웃음) 남들은 뭐 다들 잘 갔다 오고 그러는데 왜 저만 못가나 싶기도... 하지는 않았어요. (웃음) 왜냐하면, 어. 큰 형님이 군에서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제가 혜택을 받게 됐는데 늘 이 노래 부르기 전에, 부르고 그러면 형님 처음,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형님이 처음 군에 가셨었는데 훈련소에서 누런 봉투에 입고 갔던 옷 싸가지고 집으로 집으로 보내주더군요. 그거 보시면서 우시던 어머님도 생각나고 그럽니다. (하략)"
28사단에서 군 복무를 하던 김광석의 큰 형님 김광동 대위가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던 것은 김광석이 대광고등학교 1학년 때였던 1980년 10월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병역법에는 아버지나 아들 형제 중 한 사람이 군 복무중 전사하거나 전·공상을 입었을 경우 형제 중 한 사람을 현역복무 대신 보충역에 편입시켜 6개월간 방위병으로 근무케 했습니다. 그에 따라 김광석은 짧은 군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이죠.
"제가 이 노래 나오고 꼭 제가 불러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왜냐하면 저는 평생 이등병이거든요. 6개월 다녀왔습니다. (웃음) 남들은 뭐 다들 잘 갔다 오고 그러는데 왜 저만 못가나 싶기도... 하지는 않았어요. (웃음) 왜냐하면, 어. 큰 형님이 군에서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제가 혜택을 받게 됐는데 늘 이 노래 부르기 전에, 부르고 그러면 형님 처음,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형님이 처음 군에 가셨었는데 훈련소에서 누런 봉투에 입고 갔던 옷 싸가지고 집으로 집으로 보내주더군요. 그거 보시면서 우시던 어머님도 생각나고 그럽니다. (하략)"
28사단에서 군 복무를 하던 김광석의 큰 형님 김광동 대위가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던 것은 김광석이 대광고등학교 1학년 때였던 1980년 10월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병역법에는 아버지나 아들 형제 중 한 사람이 군 복무중 전사하거나 전·공상을 입었을 경우 형제 중 한 사람을 현역복무 대신 보충역에 편입시켜 6개월간 방위병으로 근무케 했습니다. 그에 따라 김광석은 짧은 군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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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사단에서 군 복무를 하던 김광석의 큰 형님 김광동 대위가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던 것은 김광석이 대광고등학교 1학년 때였던 1980년 10월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병역법에는 아버지나 아들 형제 중 한 사람이 군 복무중 전사하거나 전·공상을 입었을 경우 형제 중 한 사람을 현역복무 대신 보충역에 편입시켜 6개월간 방위병으로 근무케 했습니다. 그에 따라 김광석은 짧은 군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이죠.
위로되고 먹먹하고
진심으로 눈물 짤거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