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을 만들다. 몽골의 패왕 칭기즈칸 -8- 마지막
주성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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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1 12:41
점점 더 서양으로 침공하는 몽골군.
이번에는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북부를 침공하기 위해 정찰을 시행한다.
그러나
이 유럽을 공포에 물들인 이 군대는
홀연히 여기서 물러나 버린다.
현재로써 가장 유력한 이유는 오고타이 칸의 사망으로 인해 몽골로 복귀했다는 설이다.
이 몽골군이 서방원정을 마친 것은,
유럽이 막아서가 아니라,
몽골이 돌아가서 였다...ㄷㄷ
오고타이 칸이 죽지않고
몽골군이 더 서방으로 진출했다면,
세계사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이 시점 부터
서유럽과 동유럽의 문화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오고타이 칸에 이어 단명한 3대 구유크 칸.
툴루이의 맏아들 몽케가 4대 칸의 자리에 오른다.
이 몽케가 칸에 오르고, 몽골군은 또 한번 이슬람 원정을 떠난다.
몽케는 이슬람세계의 지도자 칼리프에게
먼저 항복을 권유하는 서신을 보낸다.
하지만
칼리프는
'나는 칼리프다. 내 뒤에는 알라 신이 있다.'라며
호기롭게 항복을 거절해버린다.
...........;;
몽고군은 이들을
단 5일만에 함락시키고
아바스 왕조를 무너뜨린다.
몽골군의 학살극으로 피로 물들었고
칼리프는 멍석에 말아 말들에게 짓밟혀 처형되었다.
(몽골에게는 예우에 해당하는 처형방식)
이슬람세계의 바그다드 까지 함락시킨 몽골제국.
그들이 아직 함락시키지 못한 이들이 있었으니...
살라딘 편에서 잠깐 언급했던 부족.
아사신 족이었다.
(암살자를 뜻하는 영어단어 '어쌔신'의 어원)
이들은 소리 소문없이 적에게 다가가 끝장내는
암살자들이었다.
이슬람의 분파인 아사신 족이 어떤 이들인지 알아보자.
이 아사신 족의 지도자는 '산중노인', '산의 노인'으로 불리었다.
이슬람의 종파에는 시아파와 수니파가 있는데.
시아파가 거의 항상 소수의 ,
정권에서 소외된 정통주의자들이다.
소수파인 시아파의 분파인
이스마일 파에 '하산 이 사바' 라는 설교자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이었다.
소위
'정의를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해도 괜찮다.'
라는 식의 주장을 하는 설교자였다.
'어떤 사람들이 자신의 교리를 잘받아들일까?' 를
고민하게 된 '하산 이 사바'는
2가지 특징을 찾아낸다.
첫째, 척박하고, 고립된 지역에 사는 사람들
이런 지역에 사는사람들은 단순하고 옳고 그름이 명확했다.
이들에게 이것은 정의 저것은 불의 이런식으로 단순하게 가르친다.
둘째, 대게 이런 척박하고 고립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그 국가의 소외된 자, 마이너 들이다.
즉, 이런 사람들에게는 마음에 늘 한이 많았던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가서 '너희들이 이렇게
힘들고 억울하게 사는 것은 다 쟤네들 때문이야' 라고 선동한다.
그들에게 가서 ' 우리는 약하고 부당하게 착취당하기 때문에
정당한 방법으로는 이길수 없다. 무슨짓이든 해야한다.' 라고 설교하면서
'그렇게 지역과 조직과 분파를 위해 희생하면 너는 천당에 간다.'
라고 말한다.
그렇게
'핫산 이 사바'는
표적없는 분노를 심어 과도한 폭력과 암살등을
정의를 위한 순교로 주입시킨다.
(거의 중세판 IS)
'하산 이 사바'의 주장때문에 위험한 종파로 찍힌
이스마일 파는 탄압을 받게 되고.
엘부르즈 산맥으로 옮겨가 지낸다.
이 엘부르즈 산맥은 주름진땅으로 인해
굉장한 협곡이었다.
정말 깎아지른듯한, 말그대로 수직절벽이 즐비한 산맥이었다.
'하산 이사바'는 이런 지형에 산성과 요새등 근거지를 조성해놓고
급진분파인 '아사신 파'를 창시한다.
그는 이런곳에서 탄압을 버티며
'암살단'을 양성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피다이(열성신도)'라고 칭했다.
그리고 이 피다이들이
이슬람의 세계의 가장 크고 상징적인 도시들인
이집트 카이로나 이라크 바그다드 같은 곳에 가서
대를 이어 정착해 지낸다.
지시에 따른 암살을 자행했다.
(보통은 그런곳에서 오래지내면 사람이 변화하기 마련인데,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들은 암살을 할때에도 기발한 암살수법을 쓰는것이 아니었다.
단검을 들고가 그냥 죽여버리고 자신도 자살했다.
심플해서 더 무서운 이 암살방식은
사람들에게 공포로 퍼졌다.
아사신 파는 군대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워낙 험준한 산맥에 위치한 요새와 근거지 때문에
그들을 소탕하러 군대가 가도
도저히 함락이 되질 않았다.
이들을 소탕하려고 험한 산맥으로 들어가
몇년간 포위전을 하고 있으면,
어느날
사령관이 암살당했다.
이런 상태로 여태 그 누구도 무너뜨리지 못한 아사신 족.
이들을.
몽골군이 와서 쓸어버렸다.
아쉽게도 몽골군이 너무 가혹하게 쓸어버린 나머지
이스마일 파의 도서관까지 불태워
어떻게 초토화를 시켰는지에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어케 했노 시발련아?)
가장 유력한 얘기로는 , 그들이 처음의 신비교단 같은 조직에서
하나의 왕국처럼 변질되었고,
그들도 편하게 살고 싶었던 지라, 몽골군의 도움을 받아
산밑에서 살기위해 그들중 일부가 몽골에 투항했다는 것.
몽골은 그들을 받아들이기 위한 조건으로
요새 몇개를 헐어버리라는 조건을 달고
버티는 애들은 어떻게 해서 함락을 시키고,
투항을 해온자들을 포함하여
전원 몰살한다.
보통 투항하는 자들은 살려줬던 몽골은
이번에는 전부, 후손들까지
한명도 안남기고 몰살시켰다.
정해진 패턴이 없는 몽골군의 무서움ㄷㄷ
너무 과격한 자들이라 살려두기 힘들었던 것인지,
암살자들이라서 자기편으로 두기 찝찝했던 것인지
그들의 속내는 아무도 모를일이었다.
(원래 모든 테러집단은 항상 뒤가 좋지않은 법이다)
말을 타고 갈수있는
거의 모든 곳을 정복하고
이제는 중국에 대해 고민을 시작하는 몽골.
이때 막내인 아리크부카는 원래 몽골초원에있는 족장들의 지지를 받고
중국제도와 문화를 적극 수용했던 한화정책을 썼던
쿠빌라이는 중국가까이에 있는 군벌들의 지지를 받는데,
중국문명을 받아들이자는 쿠빌라이쪽과
몽골문화를 고수하자는 아리크부카 쪽으로 나뉘게 된다.
그래서 일어난 내전.
이 둘의 내전에서 결국 승리한 쿠빌라이 칸.
이 내전 이후에
그가 우리가 알고있는 원나라를 건국한다.
칭기즈 칸에게 영토를 받고 떨어져 나가
독립한 몽골제국의 각 칸들.
이렇게 되자
거의 남의 나라 처럼 각자 도생의 길을 걷게 된다.
이들의 남은 서방원정 또한, 유럽에서 열병기의 시대
즉, 화약무기 시대의 도래로 제약이 걸리게 된다.
이렇게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했던 몽골제국은
100~200년정도의 국가를 유지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몽골제국은 누가 뭐라해도 당대 최고의 강군이었다.
세계최고의 전술
세계최고의 군사기술
세계최고의 공성능력
세계최고의 군마
세계최고의 마상능력
등등..
이들은 정복이후에
'종교에 대한 관용' , '정복한 이후 자치권인정' , '문화의 융화'를 시도 하면서
포용적인 모습도 많이 보였다.
몽골이 초원문화만 고집했다면 애초에 제국을 만들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몽골이 굉장히 빨리 망했다. 라고 하시는 분이 계실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나라 기준에서, '조선처럼 500년 정도 가야 오래간 왕조다' 라고 생각하실수 있지만,
이 쪽 지역에서는 싸움이 빈발한 세계의 중심.
지정학적 사정이 달랐던 것이다.
몽골
그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었다.
세계사에서 가장 광활한 영토.
그 과거의 영광을 잊지 않고 지내는 몽골.
그들은 국기에 그 영광의 시절의 국기를 그려넣고
오늘도 초원을 뛰어 다니고 있다.
- 인류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을 만들다. 몽골의 패왕
칭기즈 칸 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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