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첫 200만 명 시위
홍콩의 대표적인 쇼핑몰인 퍼시픽 플레이스에서 범죄인 인도법을 반대하며 투신한 사람을 추모하는 인파가 시위에 더해져 200만 명이 넘게 홍콩섬에 쏟아져 나온 1년 전 오늘.
홍콩 MTR은 쏟아져 나오는 시민들을 도저히 수용 할 수가 없었고 무정차로 운영하기 시작해 시위장소에 가장 가까운 역인 북각에서 내려 마비가 되어버린 메인도로를 따라 빅토리아공원으로 걸어갔다.
그 곳에서 친구들과 3키로 넘는 길을 통과해 상원까지 가는데 8시간이 걸렸다.
내가 해 줄수 있는 건 태극기로 표현하는 지지표시 하나 뿐.
그가 투신한 자리는 수십만개의 꽃으로 뒤덮였고
이 미친듯한 인파가 염원을 담아 내는 한 목소리.
“살려내라”
목숨을 바쳐 자유를 갈망한 그에게 가족들, 연인들, 노인들, 아이들이 조의를 표하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딱 100년 전인 1919년의 한국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체험하면서 근현대사 시간이 배운 모든 내용들 하나하나가 다시 생각났다.
현지인들은 한글을 알아 볼 수없겠지만 가장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추모공간에 적고 집으로 향했다.
새벽에 집에 돌아왔어도 온 몸에 베인 향 냄새는 없어지지 않고 그 끝없는 생각은 잠을 설치게 했다.
과연 내가 일제강점기에 있었더라면...
과연 내가 4.19 혁명때 있었더라면...
과연 내가 부마 민주 항쟁때 있었더라면...
과연 내가 광주민주화운동때 있었더라면...
과연 내가 6월 민주 항쟁때 있었더라면...
홍콩 MTR은 쏟아져 나오는 시민들을 도저히 수용 할 수가 없었고 무정차로 운영하기 시작해 시위장소에 가장 가까운 역인 북각에서 내려 마비가 되어버린 메인도로를 따라 빅토리아공원으로 걸어갔다.
그 곳에서 친구들과 3키로 넘는 길을 통과해 상원까지 가는데 8시간이 걸렸다.
내가 해 줄수 있는 건 태극기로 표현하는 지지표시 하나 뿐.
그가 투신한 자리는 수십만개의 꽃으로 뒤덮였고
이 미친듯한 인파가 염원을 담아 내는 한 목소리.
“살려내라”
목숨을 바쳐 자유를 갈망한 그에게 가족들, 연인들, 노인들, 아이들이 조의를 표하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딱 100년 전인 1919년의 한국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체험하면서 근현대사 시간이 배운 모든 내용들 하나하나가 다시 생각났다.
현지인들은 한글을 알아 볼 수없겠지만 가장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추모공간에 적고 집으로 향했다.
새벽에 집에 돌아왔어도 온 몸에 베인 향 냄새는 없어지지 않고 그 끝없는 생각은 잠을 설치게 했다.
과연 내가 일제강점기에 있었더라면...
과연 내가 4.19 혁명때 있었더라면...
과연 내가 부마 민주 항쟁때 있었더라면...
과연 내가 광주민주화운동때 있었더라면...
과연 내가 6월 민주 항쟁때 있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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