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집에서 어릴때부터 서로 돕고 살면 우애가 좋은거 같다
나는 막내에 위로 누이가 셋있고 아버지 내가 5살때 교통사고로 돌아가가셨다 어버지는 피해자였다
학창시절 친구와 다투다 애비도 없는 놈이라는 소리도 들어봤고
용돈도 받아본적이 없으니 하교하면 애들 따라서 문방구 가서 군것질 하는거 구경하고 얻어먹고 그랬다 친구들이 착해서 거지소리까진 듣지 않았다.
소풍때나 운동회에선 엄마는 일하셔서 못오고 누나들도 학교다니니
항상 나 혼자였고 그럴때면 아빠 생각이 나서 몇시간을 걸어서 밤에 아버지 산소에 도착해서 울고 아빠 보고싶다고 타임머신있으면 5살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혼자 빈적도 여러번 있다
중3때부터 학창시절 내내 편의점 야간 알바 피시방 알바 주유소 알바하면서 내앞가림 하기 시작했고
군복무는 어린 나이에 바로 산업체로 했는데 주 80시간씩 주야 교대 하니까 정말 힘들어서 첫날엔 집에와서 울다가 잔적이 있다. 그 후로 스펠링 읽지도 못하는 영어공부 하려다 공부머리가 없다보니 혼자서는 힘글어서 이년간 산업체에서 모은 돈 털어서 해외어학연수 갔고 출국 전 엄마한테 천만원 드렸다. 그때 나이 23살이었다. 지금은 호주에 정착해서 돈도 쓰고 저축할만큼 벌고 이주전에 딸이 태어났다. 제일 먼저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우리 엄마도 참 안타깝게 홀로 사남매 키운다고 일만 하시다 몇년 전 근무중 뇌출혈로 쓰러지신 후 왼쪽 팔다리를 잘 못쓰셔서 장애등급 받으셨다 누나들이 돌아가면서 케어하고 연차내고 병원모시고 가고 나는 타지라 돈 조금씩 보내드리고있다
울 누나들도 잘 살고 나도 잘살고 있어서 엄마만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큰 걱정 없을거같다
가난한 집에서 어릴때부터 서로 돕고 살면 우애가 좋은거 같다
나는 막내에 위로 누이가 셋있고 아버지 내가 5살때 교통사고로 돌아가가셨다 어버지는 피해자였다
학창시절 친구와 다투다 애비도 없는 놈이라는 소리도 들어봤고
용돈도 받아본적이 없으니 하교하면 애들 따라서 문방구 가서 군것질 하는거 구경하고 얻어먹고 그랬다 친구들이 착해서 거지소리까진 듣지 않았다.
소풍때나 운동회에선 엄마는 일하셔서 못오고 누나들도 학교다니니
항상 나 혼자였고 그럴때면 아빠 생각이 나서 몇시간을 걸어서 밤에 아버지 산소에 도착해서 울고 아빠 보고싶다고 타임머신있으면 5살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혼자 빈적도 여러번 있다
중3때부터 학창시절 내내 편의점 야간 알바 피시방 알바 주유소 알바하면서 내앞가림 하기 시작했고
군복무는 어린 나이에 바로 산업체로 했는데 주 80시간씩 주야 교대 하니까 정말 힘들어서 첫날엔 집에와서 울다가 잔적이 있다. 그 후로 스펠링 읽지도 못하는 영어공부 하려다 공부머리가 없다보니 혼자서는 힘글어서 이년간 산업체에서 모은 돈 털어서 해외어학연수 갔고 출국 전 엄마한테 천만원 드렸다. 그때 나이 23살이었다. 지금은 호주에 정착해서 돈도 쓰고 저축할만큼 벌고 이주전에 딸이 태어났다. 제일 먼저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우리 엄마도 참 안타깝게 홀로 사남매 키운다고 일만 하시다 몇년 전 근무중 뇌출혈로 쓰러지신 후 왼쪽 팔다리를 잘 못쓰셔서 장애등급 받으셨다 누나들이 돌아가면서 케어하고 연차내고 병원모시고 가고 나는 타지라 돈 조금씩 보내드리고있다
울 누나들도 잘 살고 나도 잘살고 있어서 엄마만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큰 걱정 없을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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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집에서 어릴때부터 서로 돕고 살면 우애가 좋은거 같다
나는 막내에 위로 누이가 셋있고 아버지 내가 5살때 교통사고로 돌아가가셨다 어버지는 피해자였다
학창시절 친구와 다투다 애비도 없는 놈이라는 소리도 들어봤고
용돈도 받아본적이 없으니 하교하면 애들 따라서 문방구 가서 군것질 하는거 구경하고 얻어먹고 그랬다 친구들이 착해서 거지소리까진 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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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때부터 학창시절 내내 편의점 야간 알바 피시방 알바 주유소 알바하면서 내앞가림 하기 시작했고
군복무는 어린 나이에 바로 산업체로 했는데 주 80시간씩 주야 교대 하니까 정말 힘들어서 첫날엔 집에와서 울다가 잔적이 있다. 그 후로 스펠링 읽지도 못하는 영어공부 하려다 공부머리가 없다보니 혼자서는 힘글어서 이년간 산업체에서 모은 돈 털어서 해외어학연수 갔고 출국 전 엄마한테 천만원 드렸다. 그때 나이 23살이었다. 지금은 호주에 정착해서 돈도 쓰고 저축할만큼 벌고 이주전에 딸이 태어났다. 제일 먼저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우리 엄마도 참 안타깝게 홀로 사남매 키운다고 일만 하시다 몇년 전 근무중 뇌출혈로 쓰러지신 후 왼쪽 팔다리를 잘 못쓰셔서 장애등급 받으셨다 누나들이 돌아가면서 케어하고 연차내고 병원모시고 가고 나는 타지라 돈 조금씩 보내드리고있다
울 누나들도 잘 살고 나도 잘살고 있어서 엄마만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큰 걱정 없을거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