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항쟁이 승리할 수 있었던 뒷배경
신군부는 본래 경찰병력만으로 사태를 컨트롤 할수 없을 땐 5.18과 마찬가지고 군대를 동원한 유혈진압을 계획했음.
하지만 먼저 첩보를 입수한 CIA가 주한미군에게서 전차 5대를 징발하여 수방사와 특전사 정문 앞에서 무력시위를 함.
제14대 주한미국대사 제임스 릴리(James Roderick Lilley)는 6월항쟁 당시 군부가 계엄령 선포를 검토하자, 그는 미 국무부에 연락하여 레이건 대통령의 친서를 보내달라고 요청함. 릴리 대사는 계엄령에 반대하는 레이건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청와대를 찾았으나, 군부 측에서 눈치를 채고 접견 요청을 거절함.
그러자 릴리 대사는 “지금 동맹국의 친서를 무시하는 겁니까? 계엄을 선포하면 한·미 동맹이 끝장날 각오를 해야 할 것입니다”이라고 돌직구를 날림. (참고로 릴리 대사는 CIA 30년 경력의 베테랑이었는데도 저때 스스로도 엄청 쫄렸다고 함. 원래 레이건은 확실한 협박을 위해 2인자이자 부통령인 부시를 보내려고 했는데 측근들이 필사적으로 말림.)
이와 더불어 미 상하원에서도 '대한민국 민주화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등 다방면으로 군부를 압박하는 적극적 행정조치들을 시행함.
(이때 참여하신 분중 한분이 바로 지금의 바이든 대통령)
결국 군부는 무력진압을 포기했고 6월 항쟁은 시민들의 승리로 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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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덕에 625 참전군인들이 죽도록 지켜냈던 한반도에 자유주의가 남았고
미국덕에 민주화 열사들이 그토록 울부짖던 민주화가 왔는데
그때마다 정부는 뭐하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