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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는 과연 미국에게 속아서 핵을 포기했을까?.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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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크라이나는 왜 핵을 포기했는가?


흔히들 하는 오해가,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감언이설 (핵우산, 경제지원)에 속아서


잘 써먹을 수도 있는 핵을 홀라당 포기해 이 꼴이 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핵을 가지고 있어도 써먹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첫째. 핵 발사 코드는 모스크바에 있었다.


엄밀히 따져서 우크라이나에 배치된 핵은 우크라이나의 것이라고 확실히 주장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왜냐? 만든 국가도, 그걸 쏘기 위해 준비를 해둔 국가도 소련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가 핵 발사코드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가 핵을 쏘려면 그 코드부터 해석하거나 탈취해야 했다.

그런데 러시아가 그 꼴을 두고봤을까?

체첸이 깝지차 단번에 밀어버린 러시아다.

핵 발사코드 탈취는 결코 좌시할 리 없고, 그걸 은밀히 빼낸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모스크바의 관제센터가 24시간 동안 핵 발사 코드를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우크라이나의 핵은 사용기한이 있었다.


핵폭탄은 만들어둔다고 관리 없이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폭탄이 아니다.

당시 핵 포기 선언을 한 당사자,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말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했던 배경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다. “우크라이나가 당시 핵탄두를 165기 보유했다. 이 핵무기는 러시아가 생산한 것이었다. 1998년이면 핵탄두를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교체하려고 하다 보니 러시아제여서 우크라이나가 단독으로 할 수 없다는 현실적 고민이 있었다. 결국 우크라이나가 핵은 갖고 있었으나, 그건 우크라이나의 것이 아니었다.”] 


사용기한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핵관련시설을 짓는 방법 밖에는 없었는데, 문제는 우크라이나의 독립이 1991년도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즉, 우크라이나가 핵을 보유하고 제대로 써먹기 위해서는


러시아와 서방 모두의 경제적 제재와 군사적 견제를 뚫고


신생국 체급에선 감당 못할 수십 억 달러의 비용을 들여 핵 처리 시설을 지어야 했으며


이 모든 과정을 '7년 내로' 해내야 했다.


한 마디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뜻이다.



셋째. 우크라이나는 결코 러시아와의 '단절'을 바라지 않았다.


단절과 독립은 다르다.

우크라이나는 폴란드와 달리, 러시아로부터 독립했을지언정 교류는 계속 이어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단적으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협조와 교류가 없으면 당장 핵무기가 아니라 원전의 유지보수마저 걱정해야 할 판국이었다.


그리고 당시 우크라이나의 대 러시아 에너지 종속도는 심각한 편으로,

석유의 90%를 러시아로부터 의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서방세력과의 친교도 맺어지지 않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핵포기 압력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넷째. 러시아, 미국 : 포기 안 하면 어쩔건데?


위의 조건들을 잘 읽어봤다면 이제 알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가진 핵은 허울뿐인 핵이지, 무기로서의 가치는 0에 수렴했다.

하지만 고작 6~7년 유통기한의 무기를 지키기 위해 우크라이나가 감수해야 할 대가는 무지막지하게 컸다.


모든 강대국은 결코 신생국가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해줄 생각이 없었다.

미영프독과 러시아, 심지어 중국까지 우크라이나에게 핵 포기를 요구했다.

더군다나 '정상국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전세계적 차원에서 쏟아지는 '핵'에 대한 우려를 종식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는 강대국의 감시를 뚫고 핵을 기어이 보유한 몇몇 국가와는 명백히 상황이 다른데,

저때 동유럽 지역은 지금의 동북아 그 이상의 화약고였다.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에 대한 영향력을 아예 상실하길 원하진 않았던 러시아. 

신생국들의 핵보유를 바라지 않았던 미국.

이 둘의 니즈가 2차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바로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신생국들의 핵 폐기였다.


러시아는 소국들이 핵 보유로 인해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미국은 핵보유국의 증가를 막아 미국의 패권이 완벽해지길 바랐다.


따라서 러시아도 미국도 소련에서 떨어져나간 나라들의 핵보유를 인정할 생각이 결코 없었다.

여차하면 서로 손을 잡아서 함께 줘패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2. 부다페스트 각서



이런 배경 하에서 문제의 그 '각서'가 쓰이게 된다.


하지만 이 각서는 서방세력이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보증해줄 수 있는 '구속력'이 없었다.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자. 이 각서는 서방세력이 우크라이나를 도와주기 위해 작성한 게 아니다.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끼어 있던 우크라이나가, 어차피 써먹지도 못할 핵을 포기함으로서 얻어갈 걸 얻어간 '빅딜'이었다.



첫째. 우크라이나는 모든 당사국으로부터 주권을 인정 받고 싶어했다. 


당시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돌아가던 상황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서방세력은 '만에 하나' 우크라이나가 핵탄두를 포기하지 않을시, 핵공격의 최우선 대상으로 설정해두고 있었다.

이는 당시 우크라이나에서 핵 포기의 장단점에 대해 작성한 내부문건에서 몇 번이나 확인되는 사안이다.

즉, 소련 붕괴 이후 절대패권을 구축하고 있던 미국은 '결코' 친러 신생국가의 핵보유를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인정하면서도,

우크라이나가 최소한 친러국가로서 완충지대 역할을 해주길 바랐고, 가능하다면 다시 흡수통일을 바라고 있었다.

이는 크림반도를 둘러싼 당시 우크라이나-러시아 와의 신경전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로서는 친러국가로 남을지언정, 다시 러시아에 흡수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이러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나온 게 바로 '부다페스트 각서'다.


한 마디로, 우크라이나는 어차피 못 써먹을 핵 폐기하고 모든 강대국으로부터 주권을 인정받고 경제적 도움을 받아낸 것이다.




둘째. 안전보장의 문제


엄밀한 외교적 용어로서, 안전 보장과 안전 보증은 차이가 있다.


안전 보장(Assurance)은 현재 상태를 인정해주는 것.


안전 보증(Guarantee)은 미래에도 그 상태가 이어질 수 있도록 구체적인 행동을 약속하는 것이다.


부다페스트 각서에서 우크라이나가 받아낸 것은 '안전 보장'이었다.


심지어 그 안전 보장은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우크라이나를 지켜주는데 있는 게 아니었다.


걸프전, 보스니아 전쟁, 대북 선제 타격 등등 유일한 패권국으로서 부상한 미국의 군사적개입을 '심각히 우려'한 우크라이나가


미국에게서 '핵포기 하는 대신 우리 때리지 마라', '만약에 문제 생기면 대화로 풀어나가자'는 당장의 확답을 얻어낸 것에 가까우며.


나아가 저 '안전 보장'을 명시한 강대국들(심지어 중국도 포함되어 있다)로부터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인정 받은 것이다.


겸사겸사 러시아의 대 우크라이나 압박이 줄어드는 것도 덤이고.


즉, 흔히들 착각하는 것처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완전히 친서방 국가로 돌아선(그리고 서방국가가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증한) 각서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한 마디로, 지금의 군사적 긴장과 위기에서 '부다페스트 각서'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


이에 대해서는 2014년 이전 우크라이나도 확실히 자각하고 있던 문제로,


The only specific obligation that the three nuclear states – the US, Russia, and the UK – took was that they “will consult in the event a situation arises which raises a question concerning these commitments.” This means that the aforesaid nuclear states must take part in these consultations at Ukraine’s demand. However, the Memorandum has no clauses that set out the procedure of convening and conducting such consultations, making and implementing decisions, or explain the nature of sanctions against the potential offender. The documents in which China and France gave Ukraine security assurances do not call for an institution of mandatory consultations. The Chinese declaration only says about the government’s inclination to a “peaceful settlement of differences and disputes by way of fair consultations.” The declaration of France does not mention consultations at all.


미국, 러시아, 영국 등 3개의 핵 보유국이 취한 유일한 구체적인 의무는 “이러한 약속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협의할 것”이었습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핵보유국들이 우크라이나의 요구에 따라 이러한 협의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각서에는 그러한 협의를 소집 및 수행하는 절차, 결정을 내리고 실행하는 절차 또는 잠재적 범죄자에 대한 제재의 성격을 설명하는 조항이 없습니다. 중국과 프랑스가 우크라이나에 안전 보장을 제공한 문서는 의무적 협의 기관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중국 선언문에는 “공정한 협의를 통해 이견과 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하려는 정부의 성향만 나와 있다. 프랑스 선언에는 협의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나토에 주재하던 우크라이나 대표는 안전 보장과 안전 보증의 차이, 그로 인한 서방세력 비 개입의 가능성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부다페스트 각서의 가치가 아예 없지는 않다.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부다페스트 각서는 적어도 약 30년 동안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확실히 '보장'하고는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우크라이나는 진작 체첸 공화국처럼 강제로 흡수합병 당해 역사속으로 사라졌을 지도 모른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부다페스트 각서의 가치는 '서방세력의 보호'를 얻어 내는 게 아니다.
'서방세력과 러시아로부터 우크라이나 독립과 그 주권의 인정'을 받아낸 것이다.



3. 핵우산


흔히들 이번 사태를 '미국 핵우산의 무용론'으로 연결짓는 경우를 많이 봤다.


핵우산이 무용한지 유용한지는 제각각 입장이 다를 수 있겠으나


엄밀히 따져 이번 사태는 미국의 핵우산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첫째. 우크라이나는 핵우산에 들어갔는가? 


들어갔다.


중국의 핵우산에.


그 어떤 조약, 각서, 합의에서도 우크라이나가 나토 및 미국의 핵우산 아래 들어갔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더군다나 00년대~10년대 초 우크라이나의 외교기조는 좋게 말하면 얌체고 나쁘게 말하면 박쥐에 가까웠다.


군사적으로는 소련제 항공모함을 비롯한 다양한 군사 기술을 중국에 팔아치웠으며.


무역에 있어서는 러시아와 밀접해 있었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미국과 전략적 파트너쉽을 체결한다(지금 미국이 우크라이나 문제에 각을 세울 수 있는 이유는 부다페스트 각서가 아니라 바로 이 08년도에 체결된 전략적 파트너쉽에 의거한다)


그리고 이때 중국에게 팔아먹은 기술로 우크라이나-중국의 관계는 상당히 밀접해 있었고,


그 결과 중국이 본격적으로 패권국 자리를 노리기 시작한 13년도가 되자, 중국은 은근슬쩍 우크라이나를 핵우산에 넣어줌으로서 외교적 위상이 올라갔음을 공표한다.





4. 결론



첫째. 우크라이나는 핵을 유지할수도, 쓸 수도, 지켜낼 수도 없었다.


둘째. 부다페스트 각서는 우크라이나가 서방세력의 보호를 받는다는 내용이 아니다.


셋째.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서, 우크라이나의 핵 포기는 '최선'이었고 '필연'이었다.


넷째. 우크라이나는 서방세력의 감언이설에 속아서 핵을 포기한 게 아니다.

Best Comment

BEST 1 Paludarium  
내가 근래 본 글중에 내가 아는선에선 제일 정확한 글이네  우크레인이 핵포기 안했다고해도 일어날 전쟁이었음..
BEST 2 애버라스  
우크라이나랑 러시아는 애초에 뿌리부터 다른국가이고
소련에 강제 합병당했을때 우크라이나의 비옥한 농토에서 나오는 곡물들 소련으로 다 빼가서 우크라이나에서
수많은 아사자가 나오게됨

우크라이나 내 반러감정은 마치 한국사람들이
일본생각하는 수준이라고생각함
그러니 자연스럽게 반러시아 정치인들이 정권을잡고
러시아의 영향에서 벗어나 나토나 EU가입하려는 등의
움직임을 보여줌

동독이해체되고 소련이 독일에서 발을뺄때
자유진영은 동독 그이상을 넘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가 들어서자
통일독일을 넘어서 소련의 위성국까지 나토나
EU에 끌어들이면서 러시아를 압박했고
러시아의 마지노선이 우크라이나 인거임

물론 핵이 모든걸 막을순없었겠지
지구상 어떤나라도 첫번째 공격옵션으로
핵미사일을 사용하지 않으니까

지형적으로는 러시아의 강력한 영향 아래있지만
나토나 EU에 가입하고싶은
약소국의 우크라이나의 불쌍한 현실임
유럽연합은 절대 우크라이나를 위해 싸워주지않음
BEST 3 고양이인간  
[@애버라스] 선생님 글 잘보았습니다. 모든 부분 동의하는데, 제가 알기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뿌리가 같습니다. 두나라 다 키예프공국을 기원으로 삼고 있습니다
14 Comments
Paludarium 2022.02.23 22:52  
내가 근래 본 글중에 내가 아는선에선 제일 정확한 글이네  우크레인이 핵포기 안했다고해도 일어날 전쟁이었음..

럭키포인트 17,483 개이득

정거정 2022.02.23 23:22  
나라가 강하고봐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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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카닥땜에가입함 2022.02.24 09:15  
사실 다 알면서도 ㅈㄹ떨면서 핵무장해야겠다고 소리쳐야 됨

우리 명분위해서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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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버라스 2022.02.24 10:52  
우크라이나랑 러시아는 애초에 뿌리부터 다른국가이고
소련에 강제 합병당했을때 우크라이나의 비옥한 농토에서 나오는 곡물들 소련으로 다 빼가서 우크라이나에서
수많은 아사자가 나오게됨

우크라이나 내 반러감정은 마치 한국사람들이
일본생각하는 수준이라고생각함
그러니 자연스럽게 반러시아 정치인들이 정권을잡고
러시아의 영향에서 벗어나 나토나 EU가입하려는 등의
움직임을 보여줌

동독이해체되고 소련이 독일에서 발을뺄때
자유진영은 동독 그이상을 넘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가 들어서자
통일독일을 넘어서 소련의 위성국까지 나토나
EU에 끌어들이면서 러시아를 압박했고
러시아의 마지노선이 우크라이나 인거임

물론 핵이 모든걸 막을순없었겠지
지구상 어떤나라도 첫번째 공격옵션으로
핵미사일을 사용하지 않으니까

지형적으로는 러시아의 강력한 영향 아래있지만
나토나 EU에 가입하고싶은
약소국의 우크라이나의 불쌍한 현실임
유럽연합은 절대 우크라이나를 위해 싸워주지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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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고구마빌런 2022.02.24 11:52  
[@애버라스] 윗글에 추가로 더배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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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2022.02.24 14:51  
[@애버라스] eu의 무능은 코소보 사태때 이미..널리 알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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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완치기도8년차 2022.02.24 16:04  
[@애버라스] 근데 결국 돈때문아님?

천연가스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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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인간 2022.02.24 16:39  
[@애버라스] 선생님 글 잘보았습니다. 모든 부분 동의하는데, 제가 알기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뿌리가 같습니다. 두나라 다 키예프공국을 기원으로 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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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버라스 2022.02.24 19:06  
[@고양이인간] 맞습니다 ㅠ 제가 잘못알고있었네요.
젠틀맨 2022.02.24 11:41  
배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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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가우습죠 2022.02.24 14:35  
호오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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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이시마리나 2022.02.24 15:59  
많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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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fge 2022.02.24 22:28  
러시아 대통령이 푸틴 이라서 이건 뭐 불가피 였네.. 블러핑 해봤자 자기 평생 대통령 자리 보장 안되는거 아니까 걍 바로 때려버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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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빵존맛 2022.02.26 09:33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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