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악의 생체실험
불량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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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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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렇게들 표현하시더라구요
하지만 부하들도 정상은 아니였는지 이를 기회로 이시이를 따돌리고 자기들끼리 점령군과의 거래를 독점하고서는 일본 의학계의 중진으로 발돋움하여 일본 녹십자 (ミドリ十字) 사를 만들어 명예와 돈을 거머쥐고 80년대까지도 고위층으로 떵떵거리며 살았다. 그러나 녹십자사도 시작부터 임상을 진행하는 와중의 잡음으로 비난을 받았으며, 결국 1980년대에 혈우병 치료제에 AIDS 환자의 혈액을 사용하여 일본 내 혈우병 환자들 5,000여명 중 무려 40%에 달하는 2,000여명이 줄줄이 AIDS에 감염되고 에이즈 감염자 대부분이 목숨을 잃는 최악의 참사가 터지고 말았고, 1986년에 이 사실이 폭로되며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되었다.
1998년 일본 녹십자는 인수합병의 형태로 요시도미 제약이라는 회사에 합병되고 모든 기술은 요시도미 제약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렇게 하여 탄생한 기업이 웰화이드라는 기업이며 또 이 웰화이드는 후에 미쓰비시 화학의 자회사인 미스비시 도쿄제약으로 합병되는데 이리하여 탄생된 기업이 미쓰비시 웰파마다. 이후에는 다나베 제약과 합병해 미쓰비시 다나베 제약(주)가 되었다. 참고로 이 기업은 한국 지사도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731부대는 명맥을 이어가고 또 돈을 벌어 지금은 엄청난 대기업으로 발전했다. 한국 녹십자와는 혈액관련제재의 기술협력은 있었다고 한다. 다만 일본 녹십자가 망하자 협력했던 지분은 한국 녹십자가 다 챙겼다고 한다.
그에 비해 이시이는 전쟁 전에 착복한 재산과 전후 고향에서 벌인 사업으로 번 돈으로 엽관과 매수에 공을 들여 어떻게든 옛날의 영화를 누리려 했다. 그가 했던 사업이란 매음굴을 겸하는 숙박업소와 실험용 흰쥐 농장이었다. 그런데 일본 쪽 위키백과에서는 단순 매음굴이 아닌 '뭔가 다른 것을 했다'고 나와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명확한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히로히토 천황의 항복선언과 함께 전쟁이 끝난 후 이시이는 존재 자체가 일본 의학계의 흑역사였기에 옛 부하들에게 철저히 무시당했다. 이렇게 한 번 동료들에게 버림을 받고 나서는 회개를 했는지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윤락업소 경영과 병행해서 동네 주민들에게 무상 의료 행위를 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위법으로 이시이의 의사 면허는 1945년에 박탈됐으므로 걸리면 감옥에 가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가톨릭으로 개종한 후 윤락업소 경영은 모순적 행동이다.
어찌되었든 그는 결국 실의에 빠진 채 미군을 상대하는 윤락업소를 겸하는 여관 주인 노릇을 하며 살다가 67세에 식도암으로 사망했다. 어쨌든 이 자가 한 짓은 전범재판에서 무조건 사형이 선고될 중죄였기에 이렇게 천수를 누렸다는 사실 자체가 미군과의 모종의 거래, 그리고 그 대가로 이어지는 신변 보호를 증명한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꼭 즈그 와이프도 저렇게 당해보길~
꼭 즈그 야훼새끼도 원심분리기에 돌려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