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의 박찬호
1998년 12월에는 방콕 아시안게임에도 참가하여 병역면제의 혜택도 받게 된 박찬호, 하지만 야구선수로서는 비시즌에 해당하는 12월에도 전력투구한 것이 이듬해인 1999년의 성적에 영향을 끼치게 될 줄은 그 당시로서는 몰랐었습니다.
4월 첫 등판에서 타선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승리를 따내지 못하더니 두번째 등판인 4월 13일 애리조나 전에서 mlb 데뷔 첫 만루홈런을 허용하며 패배를 기록하며 좋지 않은 조짐을 보인 1999년의 박찬호
4번째 선발등판일인 1999년 4월 23일 (한국시간으로 1999년 4월 24일 토요일 오전 11시) 세인트루이스와의 경기에 선발등판한 박찬호
3회초 세인트루이스가 다저스에게 0 대 2로 지고 있는 가운데 무사만루의 공격찬스, 타석에는 당시 세인트루이스의 유망주 타자 페르난도 타티스
박찬호가 던진 브레이킹 볼이 가운데로 몰린 실투를 놓치지 않고 만루홈런으로 연결시키는 페르난도 타티스, 순식간에 점수는 4 대 2로 세인트루이스가 역전...
불의의 만루홈런을 허용한 박찬호,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으니 이어진 수비에서 일라이 머레로에게 솔로홈런을 허용하고 볼넷 2개를 내준 가운데 연이은 실책과 감독의 퇴장으로 분위기가 뒤숭숭해진 가운데 다시 타티스 앞에 만루위기를 자초하게 됩니다.
좌중간 담장 밖으로 날아간 공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백년이 넘는 MLB 역사상 처음으로 나온 한이닝 한타자 만루홈런 2방의 대기록을 작성하는 페르난도 타티스 (1890년 피츠버그의 빌 필립스라는 투수가 한만두의 치욕을 당했었지만 같은 타자에게 허용하지는 않음)
결국 이날 1999년 4월 23일 경기는 다저스가 세인트루이스에게 5대 12로 패합니다. 박찬호는 2와 3분의 2이닝동안 11실점이라는 한이닝 최다실점의 굴욕도 떠안게 되지만 자책점은 6점으로 팀동료들의 실책이 발목을 잡게 된 것입니다.
'한만두'라는 굴욕을 받고 난 이후 박찬호는 심기일전하여 6월 전까지 4승 3패 4.68의 성적을 기록하게 되는데요, 6월 5일 애너하임 에인절스 (현 LA 에인절스) 와의 인터리그 경기에서 또 하나의 사건이 터지고 맙니다.
안전하게 1루측으로 희생번트를 대고 자신은 아웃이 되는 박찬호
그런데 그 순간 양팀 선수들이 1루측으로 황급히 달려오게 하는 일이 터지고 맙니다.
박찬호가 애너하임 투수 팀 벨처와 언쟁 끝에 서로 뒤엉켜 난투극이 벌어지고 만 것입니다. 한순간에 벤치 클리어링으로 아수라장이 되는 다저 스타디움
상황은 이렇습니다. 박찬호가 1루측 희생번트를 댄 가운데 애너하임 투수 팀 벨처가 그냥 가볍게 태그하면 될 것을 공으로 박찬호의 가슴을 밀듯이 태그하고 팔로 꽉 껴안은 것이 박찬호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네요.
벤치클리어링 때 나온 박찬호의 이단옆차기는 국내 뿐만 아니라 미국 현지에서도 큰 화제를 불렀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MLB에서의 일반적인 벤치클리어링이라 하면은 손으로 밀치거나 주먹을 쓰는 것이 많은데 박찬호는 팀 벨처에게 팔꿈치로 턱을 가격한 이후 이단옆차기를 시도한 기이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죠.
결국 1999년의 박찬호는 13승 11패, 방어율 5.23의 앞선 두해보다는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해 194와 3분의 1이닝을 던졌고 1999년이 한국야구도 그렇지만 MLB 에서도 역대급 타고투저 시즌이었기에 (물론 맥과이어와 소사를 비롯한 약쟁이들이 넘쳐났었지만) 한편으로는 대약물의 시대에 정정당당히 맞서 싸운 거에 의의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