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에 대해 알아보자
김재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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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96
2021.08.18 12:20
빨갱이란 단지 공산주의 이념의 소지자를 지칭하는 낱말이 아니었다. 빨갱이란 용어는 도덕적으로 파탄난 비인간적 존재, 짐승만도 못한 존재, 국민과 민족을 배신한 존재를 천하게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해방후 이승만이 친일들을 대거 고위직에 올리고 친일세력의 권한이 막대해졌다 1946년 친일경찰의 악행과 각종 사회문제 때문에 대구에서 시작된 10월 인민항쟁은 전국을 휩쓸었다. 항쟁을 진압한 뒤 미군과 경찰은 항쟁을 주도했던 세력들을 체포·구속하였다. 이러한 탄압에 맞서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조직이 ‘야산대(野山隊)’라는 이름으로 조직되었다. 본격적인 빨치산의 시작은 남한만의 단독선거·단독정부수립에 맞선 제주4.3항쟁에서부터였다.
4.3항쟁은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무산시켰고, 이에 대해 미군정은 초토화전술을 대표하는 가혹한 탄압으로 일관하였다. 내륙의 빨치산은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지 2달여 만에 발생한 여순사건에서 본격화 되었다.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1953년에 휴전이 되었음에도 1955년까지 지리산을 중심으로 빨치산이 남부군의 이름으로 게릴라전을 수행했다. 이후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이승만과 반공을 국시로 했던 박정희를 거치면서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대한민국에서는 좌익 계통을 통틀어 비하하고 적대감을 조성하는 용어로 ‘빨갱이’가 널리 쓰이게 되었다.
빨치산의 유래
빨치산은 일제시기부터 있었다. 국내에서는 일제 말기 징병·징용을 피해서 산으로 들어갔던 젊은이들은 일제에 대항하기 위해 조직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조직은 적은 규모이며 조직적인 것도 아니었다. 국외에서는 보다 더 조직적이며 많은 규모의 항일빨치산이 만들어졌다. 조선의용군·동북항일연군으로 불린 세력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일제에 치열하게 저항하였고, 때로는 국내 진공작전까지 시도하였다.
일제는 독립군을 ‘비적(匪賊)’으로, 독립운동가를 ‘사상범’으로 몰아 탄압했다. 여기서 ‘빨갱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한반도에서 빨갱이의 어원은 일경(日警)에 그 뿌리를 두었다. 일본 경찰은 독립운동가를 가두고 사상 전향을 강요했다. 그 과정에서 체포자 명부의 독립운동가들 이름에 빨간 점을 찍어 놓고 ‘아카’라고 불렀다. ‘아카(あか)’는 빨갛다는 의미이며 빨갱이는 일제가 독립운동가들을 매도한 최초의 단어였던 셈이다.
요약
1. 빨갱이라는 말은 일본과 친일파들이 독립운동자를 일컫는 말이었음
2. 우리는 빨갱이를 아무렇치 않게 쓰고있으면서 해방운동에 목숨까지 바친 독립투사자를 비하하고 욕보이고 있음
코인판 보다가 퍼옴.
해방후 이승만이 친일들을 대거 고위직에 올리고 친일세력의 권한이 막대해졌다 1946년 친일경찰의 악행과 각종 사회문제 때문에 대구에서 시작된 10월 인민항쟁은 전국을 휩쓸었다. 항쟁을 진압한 뒤 미군과 경찰은 항쟁을 주도했던 세력들을 체포·구속하였다. 이러한 탄압에 맞서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조직이 ‘야산대(野山隊)’라는 이름으로 조직되었다. 본격적인 빨치산의 시작은 남한만의 단독선거·단독정부수립에 맞선 제주4.3항쟁에서부터였다.
4.3항쟁은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무산시켰고, 이에 대해 미군정은 초토화전술을 대표하는 가혹한 탄압으로 일관하였다. 내륙의 빨치산은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지 2달여 만에 발생한 여순사건에서 본격화 되었다.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1953년에 휴전이 되었음에도 1955년까지 지리산을 중심으로 빨치산이 남부군의 이름으로 게릴라전을 수행했다. 이후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이승만과 반공을 국시로 했던 박정희를 거치면서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대한민국에서는 좌익 계통을 통틀어 비하하고 적대감을 조성하는 용어로 ‘빨갱이’가 널리 쓰이게 되었다.
빨치산의 유래
빨치산은 일제시기부터 있었다. 국내에서는 일제 말기 징병·징용을 피해서 산으로 들어갔던 젊은이들은 일제에 대항하기 위해 조직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조직은 적은 규모이며 조직적인 것도 아니었다. 국외에서는 보다 더 조직적이며 많은 규모의 항일빨치산이 만들어졌다. 조선의용군·동북항일연군으로 불린 세력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일제에 치열하게 저항하였고, 때로는 국내 진공작전까지 시도하였다.
일제는 독립군을 ‘비적(匪賊)’으로, 독립운동가를 ‘사상범’으로 몰아 탄압했다. 여기서 ‘빨갱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한반도에서 빨갱이의 어원은 일경(日警)에 그 뿌리를 두었다. 일본 경찰은 독립운동가를 가두고 사상 전향을 강요했다. 그 과정에서 체포자 명부의 독립운동가들 이름에 빨간 점을 찍어 놓고 ‘아카’라고 불렀다. ‘아카(あか)’는 빨갛다는 의미이며 빨갱이는 일제가 독립운동가들을 매도한 최초의 단어였던 셈이다.
요약
1. 빨갱이라는 말은 일본과 친일파들이 독립운동자를 일컫는 말이었음
2. 우리는 빨갱이를 아무렇치 않게 쓰고있으면서 해방운동에 목숨까지 바친 독립투사자를 비하하고 욕보이고 있음
코인판 보다가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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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을 했다해서 공산주의 추종이 잘못이 아닌게 아니고 빨갱이면 빨갱이로 불려야됨
우선 빨갱이라는 말이 악의적으로 한건지도 불분명한거 아니냐?
빨갱이라는 말이 진짜 악의적으로 한건지 아니면 파르치산인가 그 외래어를 빨치산으로 바꾸고
그리고 625때 빨간 색이 상대의 상징색이 되니까 공산당 자체를 빨갱이라고 이미 불렀을지도 모르는건데
지금에 와서 그 특색을 가진 놈들이 그렇게 얘기하면서 나오면 이게 그냥 받아들여짐?
내가 볼땐 물밑 작업하는거 같은데
그리고 사상범을 표시하던 빨간 점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독립운동 3대 노선(외교론은 그냥 이승만씨가 독립운동 하는척 하려고 주장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뺌) 중 무장 투쟁론은 공산주의자인 이동휘 선생이 강하게 주장하셨기 때문에 무장독립운동 단체는 상대적으로 좌익세력이 강했고 일본 내에서도 공산주의자들의 사보타지와 반전운동으로 사상범=공산주의자 였기 때문에 사상범을 빨갱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