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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무숲

그냥 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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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비

 

사람은 누구나 감정을 배출할 창구가 필요하다. 참을 수 없이 쏟아내고 싶은 날, 속을 비워줄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어릴 적 나는 참을 수 없이 감정이 넘쳐흐를 때면 글을 쓰곤 했다. 마치 배탈이 난 것 마냥 손끝에서 감정이 삐져나와 글로 쏟아졌다. 길든 짧든 문장을 쓰지 않으면 해소되지 않았다. 그리고는 스스로 깊게 감복하곤 했다. 아직도 그 시절 써재낀 글이 남아있다. 나름대로 치열했던 삶의 흔적이다.

 

그런데 직업적으로 글을 쓰게 되면서부터 나는 글이 참 무서워졌다.

글을 업으로 삼는 직업도 아니다. 그저 일하는데 글이 필요했을 뿐이다.

 

내 생각도 아닌데 그저 보고 듣고 주문받은 바를 글로 옮기는 것이 참 불편했다. 그런 글에는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너 하기 싫으냐?” 글을 주문한 이들은 한결같이 불편하다며 질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질책하는 이가 적어졌을 즈음, 사실 그리 글재주가 있는 편도 아니었으니 숙달되었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어설픈 훈련의 결과로, 나는 더는 글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생각해 보면 원인은 그뿐이다. 

 

직업을 갖게 된 이후, 모든 일에는 핵심만이 중요했다. 문장은 가능한 한 짧고 간결해야 했다. 설명하기엔 적합하다지만, 감정의 배출구로써는 빵점이다. 속에 그득한 불편함을 토해낼 수가 없다.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병에도 걸렸다. 중요한 것만 듣고, 말한다. 상대방의 장황한(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사설은 집중력을 흩트린다. 말재주로 먹고사는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속에 돌덩이를 얹은 양 답답하다.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냐는 말이 입안에 맴돈다. 아주 경을 치를 뻔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다 배출구가 막힌 탓이다. 평소에 꾸준히 양배추도 먹고, 영양제도 먹고 소화력을 유지했어야 했다. 한바탕 게워내는 것만큼 시원한 게 또 있을까. 이제와서는 변비약도 관장약도 소용이 없다.

 

오늘도 돌덩이가 들어선 마냥, 속이 묵직하다. 

2 Comments
eYgCzXWK 2020.09.16 02:31  
ㄸㄱㅍ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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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cIMQ2RP 2020.09.16 08:46  
이렇게 써놓고도 묵직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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