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이 신분상승했는데 떨떠름하네 ㅋㅋ
체거려새테제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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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전
아빠쪽 형제가 7남매인데, 그 중 큰아빠는 항상 맏이노릇을 잘 하지 못했다
우리아빠, 작은아빠는 정이 많아서 설날때마다 돈을 두둑히 담아갔는데
큰아빠는 설날에 장사할려고 봉투에 5천원씩 담아다가 나누어 줬고
또 생색은 있는대로 내셨다.
우리가 초등학교때부터 고3이 될 때 까지도 큰아빠의 설날 봉투는 만원을 채 넘지 못했다.
제사를 한창 치르던 예전에는 아버지의 사촌형네 조상까지 해서 같이 모셨는데 그쪽 집안은 큰 사업하는 집안이고 매번 벌초 등 허드렛일 잡일 담당은 우리 아버지 형제가 다 하셨다
그러다가 우리 할아버지 돌아가시고서 그 아버지의 사촌형네는 자기들 조상 관리 및 벌초까지 같이 시켜먹으려고 할아버지 무덤을 매번 제사지내던 그 무덤들 옆에 같이 하라고 압박했더란다
당연히 아빠 형제들은 거기다가 할아버지를 묻게 되면 그 관리를 이제는 다 자기네들 아들이 물려받아 해야하니까 이전의 자신들처럼 살지 않게 하려고 극구반대를 하는데
큰아빠만은 그 돈 잘버는 사촌형 꽁무니만 쫒느라 거기 같이 모실려고 했더란다 그거 눈도장 하나 찍자고.
그때 장남이 무너지면 집안이 무너진다며 형님 말에는 단한번도 싫단 소리 안하던 화도 절대 안내시던 우리 아버지가 큰아빠한테 이야기하셨다
'형님, 좋다 거기다가 같이 모시자. 단, 벌초 등 관리할 일은 형님네 아들만 시켜는 거다. 둘쨋네 아들이 왔니 안왔니 막내 자식들 왔니 안왔니 하기 없기다. 모든 관리 모든 일은 형님네 아들만 다 도맡아서 하는거다'
하셨더니 그거는 또 싫은 지 입을 꾹 닫으시고는 같이 안모시는 걸로 정리 됐다
또 명절 때 모이면 큰엄마는 항상 누워계셨다
왜 명절때마다 그렇게나 아프신 지
우리 엄마는 당시에 안하면 부모님욕 먹이는 행동이라 생각해서
막내엄마랑 둘이서 그 7남매 부부, 자식들 음식들까지 명절 내내 아쉬운 소리 안하시며 해내셨고
한번은 우리 형이 그 어릴 때 엄마 팔에 옷깃을 잡으면서 왜 엄마만 일하냐고 그랬더란다
우리 할아버지 암으로 누워계실 때 보살펴드린 것도 우리 엄마였다
가까운 거리였던 우리 엄마가 움직이지 못하시는, 남편의 아버지지만 어찌보면 남인 할아버지를 다 샤워시키시고 똥도 닦아드리고 치워드리도 다 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이제 다들 나이먹고 하나 둘 따로 오기시작하고 명절이 예전 같은 명절이 되지 않으면서
큰엄마는 마치 처음부터 잘 모셨던 거 처럼, 지극정성이었던 것 처럼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자식들이 모아서 해준 아파트에서 사시는 할머니를 잘 모시는 척을 하신다. 보는 내 눈엔 진실하진 않았다
내 눈에 좋게만은 보이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
내가 나이가 먹어서 그런가 그동안의 행동들의 누적때문인가
돈을 그렇게나 밝히시던 사람들이라 그런가
맏이네 가족으로서 할머니 재산이 또 탐이 났는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끼며 긁어모은 돈을 아들에게 투자해서 아들은 박사학위를 땄고, 미국에서 좋은 집안 여자를 만나 결혼하게 됐다
가족들은 다 박사, 교수고 인당 식대가 25만원은 나오는 으리으리한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됐고 결혼 후에는 미국에서 지낸다고 하더라
말 그대로 신분상승 하게 된거다
부모님 두 분이 식에 다녀오셨다
나로서는 욕심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 딱히 부럽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부모된 도리로서는 보고있자니 축하하면서도 속상하셨나보다
근데 그 마음이 조금 이해가 갔다
나는 그저 그동안의 행보에 그냥 나는 떨떠름할 뿐이었다
그래도 빈말, 없는 소리 안하시는 우리 아버지가 부럽냐는 말에
"2년에 한번 한국 들어올까 말까하면 그게 가족이냐. 그래도 얼굴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게 가족이지 " 라는 그 한마디에 좀 위안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아빠, 작은아빠는 정이 많아서 설날때마다 돈을 두둑히 담아갔는데
큰아빠는 설날에 장사할려고 봉투에 5천원씩 담아다가 나누어 줬고
또 생색은 있는대로 내셨다.
우리가 초등학교때부터 고3이 될 때 까지도 큰아빠의 설날 봉투는 만원을 채 넘지 못했다.
제사를 한창 치르던 예전에는 아버지의 사촌형네 조상까지 해서 같이 모셨는데 그쪽 집안은 큰 사업하는 집안이고 매번 벌초 등 허드렛일 잡일 담당은 우리 아버지 형제가 다 하셨다
그러다가 우리 할아버지 돌아가시고서 그 아버지의 사촌형네는 자기들 조상 관리 및 벌초까지 같이 시켜먹으려고 할아버지 무덤을 매번 제사지내던 그 무덤들 옆에 같이 하라고 압박했더란다
당연히 아빠 형제들은 거기다가 할아버지를 묻게 되면 그 관리를 이제는 다 자기네들 아들이 물려받아 해야하니까 이전의 자신들처럼 살지 않게 하려고 극구반대를 하는데
큰아빠만은 그 돈 잘버는 사촌형 꽁무니만 쫒느라 거기 같이 모실려고 했더란다 그거 눈도장 하나 찍자고.
그때 장남이 무너지면 집안이 무너진다며 형님 말에는 단한번도 싫단 소리 안하던 화도 절대 안내시던 우리 아버지가 큰아빠한테 이야기하셨다
'형님, 좋다 거기다가 같이 모시자. 단, 벌초 등 관리할 일은 형님네 아들만 시켜는 거다. 둘쨋네 아들이 왔니 안왔니 막내 자식들 왔니 안왔니 하기 없기다. 모든 관리 모든 일은 형님네 아들만 다 도맡아서 하는거다'
하셨더니 그거는 또 싫은 지 입을 꾹 닫으시고는 같이 안모시는 걸로 정리 됐다
또 명절 때 모이면 큰엄마는 항상 누워계셨다
왜 명절때마다 그렇게나 아프신 지
우리 엄마는 당시에 안하면 부모님욕 먹이는 행동이라 생각해서
막내엄마랑 둘이서 그 7남매 부부, 자식들 음식들까지 명절 내내 아쉬운 소리 안하시며 해내셨고
한번은 우리 형이 그 어릴 때 엄마 팔에 옷깃을 잡으면서 왜 엄마만 일하냐고 그랬더란다
우리 할아버지 암으로 누워계실 때 보살펴드린 것도 우리 엄마였다
가까운 거리였던 우리 엄마가 움직이지 못하시는, 남편의 아버지지만 어찌보면 남인 할아버지를 다 샤워시키시고 똥도 닦아드리고 치워드리도 다 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이제 다들 나이먹고 하나 둘 따로 오기시작하고 명절이 예전 같은 명절이 되지 않으면서
큰엄마는 마치 처음부터 잘 모셨던 거 처럼, 지극정성이었던 것 처럼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자식들이 모아서 해준 아파트에서 사시는 할머니를 잘 모시는 척을 하신다. 보는 내 눈엔 진실하진 않았다
내 눈에 좋게만은 보이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
내가 나이가 먹어서 그런가 그동안의 행동들의 누적때문인가
돈을 그렇게나 밝히시던 사람들이라 그런가
맏이네 가족으로서 할머니 재산이 또 탐이 났는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끼며 긁어모은 돈을 아들에게 투자해서 아들은 박사학위를 땄고, 미국에서 좋은 집안 여자를 만나 결혼하게 됐다
가족들은 다 박사, 교수고 인당 식대가 25만원은 나오는 으리으리한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됐고 결혼 후에는 미국에서 지낸다고 하더라
말 그대로 신분상승 하게 된거다
부모님 두 분이 식에 다녀오셨다
나로서는 욕심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 딱히 부럽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부모된 도리로서는 보고있자니 축하하면서도 속상하셨나보다
근데 그 마음이 조금 이해가 갔다
나는 그저 그동안의 행보에 그냥 나는 떨떠름할 뿐이었다
그래도 빈말, 없는 소리 안하시는 우리 아버지가 부럽냐는 말에
"2년에 한번 한국 들어올까 말까하면 그게 가족이냐. 그래도 얼굴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게 가족이지 " 라는 그 한마디에 좀 위안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