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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무숲

퇴근 전 노가리3

stMZjk40 1 82 2

예상치 않은 환대와 반응에 감사드립니다.


보잘것 없는, 어리숙했던 개인의 옛일을 기다려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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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골이 송연해짐을 느낀 소년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지금보다 더 어린 시절 횡단보도의 하얀 페인트만 밟으며 건너던 시절처럼 지금 소년을 비추는 이 주황빛을 벗어나면 당장이고 큰 일이 날 것 같았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반쯤 열려있는 안방 문이 흔들릴때마다 새어나오는 붉은 빛이 어두운 거실을 연신 수놓으며 그를 유혹하고 있었지만


새어나오는 화장실 불빛 가운데 위태로이 자리잡은 소년의 그림자는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저 안방의 불빛을 보며 숨죽일 뿐.


'나왔니?'


그녀의 다급한 목소리가 소년의 귀를 때렸다


'네...? 네!'


안방문 옆으로 빼꼼 얼굴을 내민 아주머니는 어두운 거실의 쇼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에 앉아 있으렴! 화장실 불은 끄구~ 애도 아니구 무섭거나 그런건 아니지? 금방 나가니까 어두워도 조금만 참아'


'...알겠습니다'


소년은 사고 회로가 정지되어 고장난 로봇마냥 어기적어기적 몸을 옮겨 쇼파에 앉았다.


문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알 턱이 없던 소년은 그저 제멋대로 세간살이를 훑는 안방 불빛이 허락하는 만큼 거실을 둘러볼 뿐이었다.



일렁.


거실 벽에 붙은 가족 사진이 보인다.


아주머니 부부와 태권도 도복을 입은 채 웃고 있는 딸.


언뜻 행복해 보이는 한 가족의 모습이었지만, 일렁이는 빛을 따라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일렁.


자전거, 등산 스틱, 테니스 라켓... 다양한 운동기구들이 놓인 베란다.


이 아주머니가 주말마다 집을 비웠던 것은 운동을 좋아했기 때문인가.


불현듯 매주 토요일 밤마다 어두웠던 402호의 거실이 떠올랐다.




일렁.


유리로 된 거실장이 빛을 받아 반짝인다.


1층과 2층엔 유치원, 초등학교 입학 등 소소한 기억이 담긴 액자들과 메달들, 조약한 그림이 채워져있었고


맨 윗 칸에 가장 큰 액자는 왜인지 바닥을 보고 누워있었다.


'어쩌면....내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오래 기다렸지?'


밖에서 맡았던 향.


훨씬 더 농밀해진 후라지아 향이 소년의 코에 닿기도 전에 들려온 목소리에 놀라 소리를 좇아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거기엔


붉은빛이 도는 전등 빛 사이로.


요상하리만큼 짧고, 민망하리만큼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은 아주머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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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은 내일....

1 Comments
O8LKmMfq 2020.06.15 20:20  
오늘은 짧네? 그런데 이거 실화맞지 형?ㅋㅋㅋ 글쏨씨가 문학적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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