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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발은 나의 발과는 달랐다.

JpxdgqMp 3 39 2
술을 좀 먹었다. 성인이 되면 여기저기 술을 마실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조금은 늦은 나이에도 아직 대학생인 나는 동아리 회식이니 친구들과의 만남이니 즐거운 술자리가 많았다. 오늘은 평소와는 다른 술자리가 생겼다. 아버지께서 조금은 갑작스레 퇴직을 하셨다. 정년의 나이가 다 차신 것도 건강상의 큰 문제가 있으신 것도 아니지만 결정을 내리셨다. 어찌됐건 큰 결정을 하셨고 자취중인 나는 주말을 핑계로 집에 왔다. 아버지께서는 식당을 하시는 어머니 가게에 동료분들과 함께 송별회를 하시는 것 같더라. 나도 오늘 아버지랑 같이 한 잔 하고 싶었는데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집에 오는 길에 산 작고 싼 양주는 결국 온전히 내 몫이 되었다. 부모님께서는 TV를 보시다가 잠에 취해 내게 발을 주물러 달라고 하셨다. 평소에도 자주 발이 쑤신다던 당신들이었지만 피곤하다는 핑계로 주무르는 시늉만 하던 나였다. 값싼 술 때문이었을까 술이 얼근하게 취한 나는 웬일인지 혼쾌히 발을 주물렀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들의 발을 자세히 보았다. 일생을 현장직에 계신 아버지와 주방일을 하신 어머니의 발은 나의 발과는 달랐다. 많이 달랐다. 무더운 날씨에 용암과도 같은 기계와 사투를 벌이는 안전화 속 아버지의 발과 불가마 앞에서 음식을 하시고 대접하는 운동화 속 어머니의 발은 에어컨을 쐬며 더위를 식히는 슬리퍼 속 나의 발과는 달랐다. 그들의 발은 나의 발과는 달랐다.

3 Comments
JpxdgqMp 2019.06.29 02:36  
새벽에 감성 터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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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8ONU1yb 2019.06.29 02:47  
효도는 셀프 ㅡ.ㅡ
알갠나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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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h42Iaq 2019.06.29 09:14  
ㅋㅋㅋ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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