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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라면을 찾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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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수많은 라면들을 먹어오면서 모든 라면이 다 맛있고 훌륭했지만


한입 먹는 순간 바로 등짝이 찌릿해지며 감동이 밀려오는 라면은 많지 않았다


내 인생, 내 라면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라면들은 이러하다


첫번째는 군대에서 자대로 처음 배치받고 선임들에게 둘러싸인 채 환영식을 빙자한 식고문이 있던 날.


독보적인 개성으로 찢어질듯한 위장 속에서도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던 간짬뽕의 맛이었고


두번째도 역시나 군대에서, 질질 짜면서도 젓가락을 놓지않는 동기를 보며 대체 무슨 맛이길래? 하며 한입 얻어먹었던 불닭볶음면이었다.


그리고 세번째는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친구집에서 술을 꼴아박고 숙취에 쩔어있던 나에게 


한줄기 빛처럼 내려와 부글부글 끓던 위장을 구원해줬던 진짬뽕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어떤 라면을 먹어도 덤덤하게 받아들이기만 했었다. 


바로 오늘까지는.


무료한 주말. 나는 마트로 나섰고 늘상 들리던 라면코너에서 우연히 대대적인 할인행사를 벌이고 있던 칼빔면을 봤다


호기심에 한번 사보았다. 실패해도 뭐 2천원따리니까.


집으로 돌아온 뒤 하릴없이 물을 받고, 불을 올리고, 면을 끓였다. 더운 날씨에 냉면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모든 것은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었다


익은 면에 열기를 빼내고 동봉된 소스까지 뿌린 뒤 휘휘 젓고 계란을 하나 얹어 마무으리!를 하고


에어컨이 켜진 내 방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아 뒷다리를 긁으며 


한입 떠먹어본 순간. 


나는 혁명을 맞이했다


몇번이나 심심한 여름을 맞이해오던 나의 무료한 삶에 신선함을 안겨준 혁명!


어쩜 이렇게 새콤하면서도 매콤하고 찰지고 탱글탱글한 식감이 살아있는 인스턴트 라면이 존재한단 말인가??


거기가 4개에 2000원대라니...


짠맛의 농도가 옅어져 많은 실망감을 안겨줬던 농심이 이런 비장의 한 수를 준비하고 있었단 말인가!!!


아... 이래서 한길 물속은 알아도 열길 마음속은 모른다 했던가?


역시 농민의 마음 속에는 이렇게나 쿨하면서도 불같이 강렬한 열정이 남아있었단 말인가!


스스로 무너져 내려가는 라면왕조에서 자생적으로 튀어나온 라면계의 이단아라니!


이런 위대한 업적을 이뤄낸 농심에게 나는 앞으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주려한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릴지니 칼빔면이라는 뿌리가 존재하는 한


나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썩어빠진 라면계의 혁명을 일으킨 라면계의 이성계!


칼빔면의 존재감이니까


6 Comments
HQCLZ5CG 2020.07.18 18:43  
뭐가 맛있데?
너무 길어서 둘째까지 읽다 말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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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KwYJzN 2020.07.18 18:52  
[@HQCLZ5CG] 열라면이 인생라면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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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WZF4Mw 2020.07.18 18:53  
[@HQCLZ5CG] ㅈㅅ.. 너무 맛있어서 뇌절했나봄.. 칼빔면이라고 농심에서 나온 신상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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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CLZ5CG 2020.07.18 19:11  
[@03WZF4Mw] 고마웡 나도 먹어볼께!
Qa0R714x 2020.07.18 19:16  
칼빔면 나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맛인데.
걍 김치비빔국수같은 김치베이스 소스 그이상 그이하도 아니어서 호불호 많이 갈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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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R8KjcrE 2020.07.18 19:20  
믿고 주중에 함 도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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