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주말 아침
DFZHOyl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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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2 11:38
오랜만에 친척들이 와서 단란하게 얘기하고 있었는데, 친척 누나가 올해에 결혼한다는 주제에서 나에게 화살이 돌아왔다.
'너도 한 1~2년 안에는 결혼해야지?'
'여자친구도 없는데 결혼 얘기부터 하세요'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친척 분은 뭔가를 납득한 건지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가 끼어들었다.
'지금이야 네가 생각이 없으니까 안 만나는 거고, 결혼할 마음만 먹으면 여자는 다 만날 수 있잖니?'
나는 거짓말 한마디 안 했는데도 등골이 오싹하고 양심에 찔렸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뭐?
오래 전 이별을 겪고 나서 한 번도 만남은 없었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다. 안 만나는 게 아니라 못 만나는 거다.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괜히 분위기만 가라앉을까봐, 씁쓸하게 슬쩍 웃고 말았다.
단란함은 계속됐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환하게 밝힌 거실 한 구석에서 벗어나 불 꺼진 방 안으로 도망쳤다.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와 문 너머로 들리는 웃음소리가 섞인다. 내 마음도 뒤섞여 어지럽다.
맹물에 말차가루를 타 넣은 듯 탁해졌다. 귓가에는 이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씁쓸함을 곱씹으며 내일 출근할 준비를 일찌감치 해두는 부스럭거림만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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