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또 니가 생각나는 밤이다
나는 아직도 너와 처음 눈을 맞추고 인사하던 날을 잊지 못하고 있어
시선을 맞추며 말을 걸어오는 너와 마주한 순간
나는 동선과 대사를 잊어버린 채 뜬금없이 무대로 올라온 조연 같았고
너는 나를 주연으로 착각한 채 정해진 대사를 말하고 있는 어여쁜 여주인공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의미도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인사였을텐데
그게 뭐라고 나에게는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은 걸까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었지
그 이후로 너와 나는 다시 평행선을 그리며 나아갔고 이제는 두 선 사이에 수많은 낙서들이 쌓여
슬쩍 바라보려 해도 너의 선은 무엇이었는지 알아볼 수 없는 장래에 도착해버렸다
나는 멍청하고 븅신같이 쿨한 척까지 하는 찌질이였으니
너에게 있어 나는 그냥 그런 낙서 중 하나 였겠지?
살다보니 가끔 떠오르는 몇몇 기억들이 있어
근데 그 중에 단 하나
왜 이리 깊게 각인되어 이다지도 불쑥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는 그때의 니가 또 생각나는 밤이야
감성이 깊어지니 망상이 커지고 너를 다시 만나 꼭 말하고 싶어지는 게 있어
잘 지냈니?
그때는 입도 벙긋 못했었는데 이젠 말 몇 마디 정도는 어색하지 않게 할 수 있는 남자가 되었다고
예전에 내가 너 좋아했었던 거 같다 까지 말해보고 싶어
그렇게 한번 하고 나면 이젠 기억에서 지워버릴 수 있을 거 같아서
아니 다시 한번 너를 볼 수 있다면 이번에는 서로의 끝과 시작이 되는 원이 되어보고 싶어서가 솔직한 마음이야
잘 지내니?
너는 모르겠지만, 너는 기억조차 못할 사람이겠지만 아직까지 너를 기억하고 있는 내가 있어
괜찮아진 것 같다고 했지만 여전히 나는 븅신 찌질이인가봐
이렇게 계속 너를 기억하면서 살 것 같아
생각하면 희미하고 생각나면 그리운 너를 보낼 수가 없어
잘 지내 현실에서
반가웠어 기억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