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소설 좀 봐주십시오 신랄하고 깐깐하고 디테일한 평가 환영
일단 형식, 주제 다 자유고 약 2페이지 분량임.
시골이고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 지원임.
직무수행계획서 따로 내야돼서 구체적 근무경험이나 능력은 거기 쓰려고 뺐음.
개인정보 드러날 만한 건 ~~~로 가림
소제목 같은 거 안 달고 주루룩 써서 읽기 힘들지도 모름....
직무수행계획서에는 소제목 달아서 썼는뎅
비유도 너무 많은가 싶기도 하고......
몰겟다 나는 내가쓴거라 괜찮아보임....ㅠ
부디 잘 좀 봐주십시오,,,,,,
누구나 그렇듯 저희 어머니도 제가 천재인 줄 아셨습니다. 생일도 늦은 아이가 4살에 한글을 뗐기 때문입니다. 그 뒤에도 제법 남다른 행보를 보였습니다. 책은 항상 열댓 권씩 가져다 읽고, 컴퓨터나 TV도 마다하고 책을 읽었습니다. 궁금한 게 생기면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 해당 분야의 책을 찾았습니다. 책이 없을 땐 과자봉지라도 주워 빼곡한 글자를 읽었습니다. 그토록 읽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읽고 또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쓰는 일에도 관심이 생겼습니다. 짧은 이야기를 만들거나, 일기를 쓰거나, 수도 없이 많은 편지를 보내거나, 교내와 지역에서 대회에 나가 상도 여러 번 받았습니다. 친구들의 자기소개서며 과제도 기꺼이 첨삭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가 글 쓰는 일을 할 거라고는 꿈에도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문사에서 지낸 시간은 제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대학 생활 동안 방학은 늘 덧없이 흘러만 갔습니다. 분명 바쁜 시간들을 보냈는데도 돌아보면 남는 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며 무언가 자신의 성취를 이루는 것은 요원한 일 같았습니다. 그러던 중, 대학의 인턴십 프로그램에서 학교와는 상당히 떨어져 있는 기업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제가 사는 지역이었습니다. 오로지 그 이유 하나로, 저는 지역의 신문사에 들어갔습니다. 면접 첫 질문과 대답을 기억합니다. 신문과 전혀 관계없는 전공의 학생이 왔으니 다들 의아하셨을 것입니다. 왜 지원했느냐, 평소에 언론에 관심이 있었느냐, 아니요, 집이 가까워서 오게 됐습니다. 그 자리의 누구도, 저조차도 제가 취재기자가 되리라곤 생각지 않았습니다. 제 첫 번째 자리는 편집국이었습니다. 하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 생소한 프로그램을 다루는 것보다는 역시 읽고 쓰는 것이 제 일같이 느껴졌습니다. 편집과정을 배우면서 틈틈이 교정을 도왔습니다. 교정을 꼼꼼히 잘 보더라며 칭찬받은 것이 출근 3일 차, 그 주 신문이 발행되던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쓴 기사, 제 이름으로 신문에 실린 첫 번째 기사, 그를 위한 제 인생 첫 취재 현장도 바로 그 날이었습니다. 다른 기자님의 취재에 곁다리 동행을 할 뿐이었지만 ‘네가 진짜 기자인 것처럼’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고 기사를 써보라는 말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큰 기대를 담아 말씀하신 게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쩐지 그 때문에 더 잘 해내고 싶었습니다. 신문사에 돌아와 기사를 쓰고, 교정을 받았습니다. 온라인으로 기사를 올리는 법도 배웠습니다. 그러면서도 배우는 과정이라고만 생각했을 뿐 그 기사가 지면에 올라갈 거라고는 티끌만큼도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건 신문을 만드는 과정이었습니다. 우스운 일이지만 저는 일주일도 더 지난 뒤에, 점심을 먹다 ‘글 엄청 잘 쓰시던데요?’ 하는 말을 듣고서야 제 기사가 신문에 실려 지역 곳곳에 배달됐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
지면에 내 이름과 내 글이 실린다는 것은 너무나 놀랍고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저 혼자서 취재를 하러 다니고, 제 명함이 생기고, 지면에 쓰이는 제 이름이 ‘~~~ 인턴기자’가 아니라 ‘~~~’이 될 때쯤, 저는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아냈습니다. 바로 지역을 알아가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저는 우물 안조차 다 알지 못하면서 밖의 세상만 꿈꾸는 개구리였습니다. 지역에서 10년을 넘게 살았으면서도 자신이 사는 곳이 어떤 곳인지는 잘 몰랐습니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무엇이 자랑할 만하고 무엇은 고쳐나가야 하는지,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하는 대상을 사랑하기란 퍽 어려운 일입니다. 신문사에서의 1년 동안 이곳에서 살아온 지난 10년보다도 더 많은 곳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보다도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보고 들었습니다. 작고 좁게만 봤던 이 땅이 얼마나 넓은지, 그 모든 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사람들은 얼마나 어렵게 살아가고 그들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씨는 또 얼마나 많은지……. 지금도 속속들이 전부 알지는 못하지만, 사랑에 빠지기에는 충분하다고 느낍니다. 제가 지금 저의 우물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을 더 많이 돌아보고, 이곳의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곳을 오래도록 아끼고 싶습니다. 어느새 제 마음에는 지역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한참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학력도 자격도 능력도 경력도, 제가 가진 중에는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굴뚝 같이 솟아났던 마음은 그렇게 스러지는 듯했습니다. 그러다 며칠 전 문득, 참 오랜만에 종이신문을 들춰보았습니다. 새로운 소식들 너머로 비치는 그동안의 추억과 즐거움, 보람, 그때는 미처 닿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새삼스레 그립고 아쉬웠습니다. 넘기고, 또 넘기다 채용공고가 있는 곳까지 넘어갔을 때 무언가가 제 눈에 탁 들어왔습니다. 소식지 제작·발간 분야의 임용시험 재공고였습니다. 비로소 지역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것입니다. 도시의 불빛은 화려하지만 별빛을 모두 잡아먹어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1지 못해도 별들은 늘 그 자리를 가만 지키며 빛나고 있습니다. 어쩌면 저도 그렇습니다. 기억하지도 못할 어느 순간부터 꿈이랄 만한 것은 찾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제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에서 막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리고 가장 밝게 빛나고 있는 별, 가까운 곳에 있었던 제 꿈을 향해서 한 발짝을 내디뎠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걸음도 같은 방향으로 똑바르게 갈 수 있기를, 저의 가치와 능력을 제가 사랑하는 곳에 온전히 쏟아부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