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사가 교실에서 자살했다. 나도 초등교사다. 올해까지만.
https://gezip.net/bbs/board.php?bo_table=humor2&wr_id=7220507&page=2
우리 집안은 초등교사 집안이다.
우리 엄마 아빠도, 사촌들이나 친척 어른들 절반 정도가 교사거나 교육계에 종사한다.
내가 임용 합격하고 정교사 자격증을 받은 날이 떠오른다. 누구 하나 빠짐없이 모여서, 내가 무슨 가업이라도 물려받은 것마냥 우리 집에 선물 사들고 모여서 밤새 아이들을 더 사랑하는 방법, 다루는 방법, 교장 교감에게 잘 보이는 방법 등등을 전수하면서 웃고 떠들었던 날이.
그런데 이제 입시에 뛰어드는 10대 조카들에게 어르신들 누구도 교대 입학이나 교사의 길을 추천하지 않는다.. 나는 말할 것도 없고.
항상 개집이나 눈팅하는 커뮤니티에 초등교사 관련 글이 올라오면 열심히 댓글 달거나, 추천이라도 누르면서 우리도 힘들다고 그랬다. 알아달라고 떼썼다. 이러다가 내가 내 직업을 싫어하게 될까봐. 혼자 힘든척 하지 말라고, 아무리 힘들어도 4시반 퇴근에 방학 개꿀인데 비틱질하지 말라는 비아냥에도 열심히 댓글 달았다.. 내가 못 버틸 것 같아서.
근데 이제 더이상은 못하겠다.. 6학년, 13살.. 내 나이의 반에도 까마득히 못 미치는 우리반 그 애. 그 아이가 새로운 사고칠 거리를 발견하고 웃는 눈을 볼 때마다 나는 공포에 질린다. 교사 아닌 이들에게는 '동심'이나 '장난기'라고 읽히는 그 눈빛 너머에 아른거리는 그 애 엄마와의 통화가 미리 보인다.
본인 자식이 친구 목에 커터칼을 들이밀어도, 집에서 손도끼를 가져와 짝꿍 사물함에 박아놓고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려도, 저녁에 학교 문을 따고 들어와 다른 아이 교과서에 불을 붙여도 어미는 자식이 사랑스럽나보다.
"우리 아이가 왜 그랬는지는 생각해 보셨나요?" 그게 재밌었대요. 장난이었대요.
"그래서 저한테 사과라도 받고 싶으신건가요?" 아니요.. 저도 눈 감고 모른척 하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돈받고 하는 일이 이거잖아요..
"아이 아빠가 화가 많이 났어요." 네.. 차라리 학교로 찾아오셔서 죽도록 저를 패주세요. 그럼 제가 병가를 내도 아무도 뭐라고 못 하겠지요..
"담임선생님에 대한 컴플레인은 교장실로 하나요, 교육청으로 하나요?" ...
"교육청 전화번호좀 알려주세요." ...
"선생님은 애 키워보신 적 있으세요? 네. 참 똑~부러지게 크겠네요~"
나에게도 기대하는 가족이 있다. 나도 보란듯이 우뚝 선 교사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이번 소식과 함께 나도 같이 무너졌다. 아니.. 이미 무너져 있던 걸 오늘 발견한 건지도 모르겠다.
자살한 신규선생님을, 고인이 된 2000년생 어린 선생님을 조롱하는 댓글을 봤다.
"MZ세대 교사가 곱게 자라서 애새끼 하나 못이겨먹고 빌빌거리다 제 분에 못 이겨서 복수하려고" 교실에서 죽었단다. 전에는 이런 글을 보면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그런데 오늘은 화가 나지 않았다. 그냥.. 이딴 것도 직업이라고 자랑스러워했던, 선생님이란 호칭에 가슴 벅차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사람들은 이딴 식으로 생각하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일했던 내 부모님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저번에 댓글로 누가 나한테 그러더라. 꼬우면 관두라고. 그래. 내가 관둘게.
그런데, 무슨 이유 때문이건 담임교사가 학기중에 그만두면 그 자리를 새로운 담임 교사가 채우게 된다. 학급이 해체되고 문제 아동이 격리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완벽히 새로운 희생자 하나만 추가된다. 이번에 돌아가신 선생님도 담임교체로 인한 그 '새로운 희생자'였다.
나는 그 새로운 담임은 도저히 못 만들겠다. 이번 학년도까지만 마치고 나는 관둔다. 내가 할 수 있는 반항은 딱 거기까지다. 이후 뭘 할지는 모르겠다.
그 아이와 부모는 중학교에 올라가서 새 선생님을 만나겠지.
오늘 그 아이의 생활 통지표를 다 작성해서 프린트했다. 교육부 지침에 따라, 절대 부정적인 표현은 사용할 수 없다.
나를 새벽 2시가 넘어도 수면유도제나 술 없이는 잠들 수 없게 만든 그 아이의 이번 학기 행동발달특성 특기사항은 다음과 같다.
<매사에 활발하고 웃음기 넘치는 분위기가 매력적임.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개성을 표출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으며, 학급 내 대부분의 활동에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참여함. 놀이 활동을 할 때 자신만의 규칙을 세워 다른 친구들에게 설명하고 새로운 놀이를 만드는 모습에서 리더십이 엿보임.>
Best Comment
이 사건이 여론의 관심을 받고, 그 아이와 학부모가 누군지 밝혀지며, 그 학부모에 대한 세상의 지탄이 쏟아지고, 그 초등교사에 대한 소위 '추모'가 크게 일어도,
돌아가신 분은 돌아오지 않으시며,
이 사건으로 형님처럼 소진되어버린 사람 또한 다시 타오르지 않을 것이며,
설령 교권추락에 대한 담론이 다시 형성되며 예전처럼 '애들을 패야 한다'는 문화가 다시 형성되면,
그 또한 악영향을 줄것이며,
지금 이 사건에 대해서도 '하 예전처럼 줘 패야 말을 듣지'라고 한다 한들,
물론 패면 말은 듣지만 그건 또다른 악을 만드는 것이 될테고,
적당한 체벌이면 좋겠지만 다같이 부족한 인간끼리 부대끼며 사는 사회에서 적당함이란 헛된 망상에 불과할것이고,
형님 고생 너무 많으셨습니다 ....
형님이 어떤 선생님인지는 모르겠지만 형님의 글에서 어렴풋하게 '이런 선생님이 많아야할텐데'같은 생각이 드네요 ...
부디 이런 사건이 단순한 재해인 것이고 .. 그 재해가 형님을 피해갔음 좋겠네여 .. 그렇게 오래 교사 하시면서 좋은 선생님이 되셨으면 좋을텐데 ...
형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조차 없네요 .........